"이기겠다"라든지, "극복하겠다" 등의 공허한 구호보다, 우리보다 나은 이웃과 가까이 지내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배우는 친일(親日)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처리수 해양 방류 결정과 관련해 "중국과 한국 따위로부터는 (비판을) 듣고 싶지 않다"고 발언한데 대해, 국내에서 격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아소 부총리의 강경한 언사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이에 대한 국내 반응도 적절한지 따져보고 싶다.

지난 15일 국민의힘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제국주의적 오만한 태도"라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경제력과 관계 없이 영원히 이등(二等) 국가를 면(免)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 대표는 또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 길은 국력을 키워서 감히 무시하지 못하도록 압도적 우위에 서는 길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같은 발언에 '애국적'이라는 평가를 내릴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알맹이 없는 레퍼토리'의 반복일 뿐이다. 우리가 미워하는 일본이니 무조건 이겨야 하고, 이를 위해 힘을 키우자는 말만큼 공허한 것은 없다. 일본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한국인은 조건반사적으로 '극일'(克日)이란 말을 한다. 또 '극일'이란 단어와 함께 다소 온화한 표현으로 '지일'(知日)이란 표현도 사용한다. 물론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부정적인 것 일색(一色)이고, 일본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부족하다. 행여 이웃 국가로서 잘 지내면서 서로 '윈윈'(Win-Win)하자고 하면 자칫 '매국노'라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니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사람을 '친일'(親日)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에서 극도의 멸칭(蔑稱)이 된지 오래다. 아직도 조선의 사고방식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등한 자주독립국가의 국민이라고 하면 친일에 대한 콤플렉스는 이제 떨쳐 버려야 한다.

한국인들 가운데에는 일본을 아직도 '제국주의, 전범(戰犯) 국가'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국주의 일본은 1945년에 패망했고, 지금의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아직도 '전범국가'로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죄(原罪) 때문에 공세적인 무력은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일본국 헌법(소위 '평화헌법') 제9조에 묶여 있어 군대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는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제국주의 일본과 싸워 패퇴시킨 교전국도 아닌 터라, 그들을 전범으로 규정할 근거나 명분도 없다. 과거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이 일본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동맹국으로 받아들여 서로 협조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을 전범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 동맹에서도 빠진 상태다. 아시아의 전체주의 중국 공산당에 맞서고 있는 미국·호주·인도가 '전범'인 일본과 손을 잡은 것인지 반문(反問)하고 싶다. 일본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이에 집착하는 태도는 병적(病的)인 것이다. '빛살무늬'만 보면 한국인들은 '욱일기'(旭日旗)와 유사하다고 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친한·반일 논조로 유명한 아사히(朝日)신문의 사기(社旗)가 욱일 문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한국 일각에서 소위 '전범기'로 규정한 그 깃발을 휘날리며,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미국·호주·인도는 물론이고 영국·프랑스 등과도 연합훈련을 실시한 사례도 많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이를 문제삼은 적이 없다.

국제 무대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위상에 대해 한국인은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친일이다. 일본이 독일, 이태리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쟁의 참화를 불러오긴 했지만, 피아(彼我)가 끊임없이 바뀌는 국제질서의 속성상, 오늘날에는 일본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욱일기'로 알려진 이 깃발의 정식 명칭인 일본 해상자위대기 또는 자위함기(自衛艦旗)다.
'욱일기'로 알려진 이 깃발의 정식 명칭인 일본 해상자위대기 또는 자위함기(自衛艦旗)다.(사진=로이터)

기본적으로 미국이 현재 일본과 굳건한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영국도 과거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맺은 영일동맹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메이지(明治) 시절 일본이 해군력을 건설할 때 벤치마킹 한 국가가 영국으로 현재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경항모 이즈모(出雲)의 함명(艦名)도 과거 영국제 순양함의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한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郞) 제독도 영국 유학파로, 넬슨 제독의 함대 운용을 학습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고 제독이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한 것에 열광했던 당시 러시아의 숙적 터키 역시 둘도 없는 친일 국가다. 한국이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지만, 터키에게 있어 진짜 형제의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오스만투르크제국 시절인 1890년 터키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나라다. 오스만제국 사절단이 메이지 천황을 방문하고 돌아가던 길에 해난 사고를 당하자 전력을 다해 그 선원들을 구조해주고 성금까지 전달한 역사가 있다. 일러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 때문에 당시 러시아와 적대시했던 나라들은 지금까지도 모두 친일 국가로 남아있다. 핀란드는 물론이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과 폴란드가 일본에 대해 지금도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폴란드의 겅우 메이지 일본이 폴란드 국부 피우스즈키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인연이 있어 동구권 최고의 친일 국가로 남아있다.

프랑스 역시 일본과의 역사가 깊다. 메이지 일본 초기의 군제와 경찰제도는 프랑스의 것을 이식했다. 일본 자위대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연주되는 일본 육군행진곡 발도대(拔刀隊)도, 당시 일본에 와 있었던 프랑스 군사고문이 작곡한 것이다. 민법도 나폴레옹 시기의 것을 그대로 번역해 도입한 역사가 있다. 현재 프랑스도 일본과 함께 대중(對中) 포위망에 합세하고 있다. 오는 5월 일본 본토에서 일본 육상자위대, 미군과 함께 연합 훈련도 실시할 예정이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독일 역시 일본과 역사적으로 관계가 밀접하다. 유럽에서 보불전쟁이 발발해 프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되자 메이지 일본은 군제를 프랑스식에서 프러시아식으로 전환한다. 메이지 일본의 많은 군사 엘리트들이 프러시아에 유학해 몰트케와 클라우제비츠를 학습했다.

특히 클라우제비츠를 번역 연구한 것은 러일전쟁 기간동안 만주의 여러 결정적인 회전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제국 헌법도 비스마르크 시기 프러시아 헌법을 모델로 한 것이다.

세계의 친일 국가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정도로 많다. 앞서 열거한 나라들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상당한 친일 국가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주(駐)리투아니아 일본 영사였던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가 유럽을 탈출하기 위해 몰려든 유태인 난민에게 비자를 내줘 6천여명의 생명을 구해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판 쉰들러 리스트로 불리는 스기하라의 휴머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한참 후에나 알려졌다. 스기하라의 비자로 극적으로 생존한 소년이 커서 주일 이스라엘 대사관 외교관으로 부임해 1981년에 스기하라와 극적으로 만나면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극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 가운데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한국에서 극히 드물다. 한국인에게 일본인의 이미지는 천편일률적인 악한(惡漢)으로만 오랫동안 세뇌돼 있다. 타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내가 다른 음흉한 그리고 콧수염을 기르고 칼을 찬 헌병의 이미지로 정형화돼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도 일본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지만, 한국에는 못 미친다. 일본은 경제규모로 보나 과학기술력으로 보나, 객관적인 지표로 한국과는 체급이 다른 나라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소행성에 탐사선 하야부사을 착륙시킨 것이나, 초저궤도 위성으로 지구 표면 어디든 정밀하게 감시할 수 있는 과학기술력은 미국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유니클로와 일본산 맥주, 자동차 불매운동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행태나 반일 감정의 눈치를 보는 여·야 정치권을 보면, 극일(克日)은 광년(光年)의 거리만큼이나 먼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기겠다"라든지, "극복하겠다" 등의 공허한 구호보다, 우리보다 나은 이웃과 가까이 지내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배우는 친일(親日)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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