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이행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말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턱없이 낮은 목표치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유엔은 ‘더 상향된 감축 목표를 다시 내라’고 촉구했지만, 환경부는 구체적인 목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본질 외면하고 행사에 치중하는 탁현민식 쇼맨십 정치가 주요 정부 부처에 만연

기업은 기업대로 탄소배출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출 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탄소배출권 구매’에 써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기후위기나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의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나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보여주기식 행보’만 거듭하고 있다. 부실화 핵심정책을 바로잡기보다는 쇼맨십을 통해 면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쇼맨십 정치가 주요 정부 부처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할당된 탄소배출량을 초과해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에게 실질적으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현장형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유엔의 감축목표에 부응하는 계획안을 다시 제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와 정책간담회를 열고 2050 탄소중립 업무협약식을 맺었다.

탄소감축 ‘번지수’ 못 찾는 한정애 환경부 장관...학교방문 등 엉뚱한 행보

탄소중립 정책의 주무부처 수장인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어디서 탄소감축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여주기식 행사에만 치중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가 요구하는 탄소감축 계획안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탄소중립의 실현을 위한 당면과제와는 무관한 학교탄소 중립에 힘을 쏟는 것은 ‘번지수’를 못찾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 장관은 지난 13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교육부·해양수산부·농림축산식품부·산림청·기상청 등 5개 관계부처와 함께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6개 관계부처는 기후위기 대응·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학교 환경교육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고, 학생·학부모·교원 대상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키로 했다.

체험·과학관 등 협약기관의 관계 기관·단체 등을 활용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후위기·환경생태 관련 체험교육도 지원한다. 탄소중립 시범·중점학교(가칭)를 운영하는 등 학교 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사업모델도 발굴한다.

한 장관은 "탄소중립 정책의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며 "학교환경교육 제도개선, 탄소중립 콘텐츠 개발 등 기후·환경교육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의 학생들이 2050년에 탄소중립을 실천할 세대로 성장한다. 따라서 학생시절부터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탄소중립 정책의 주무부처인 환경부 장관으로서는 유엔이 제출을 요구하는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은 ‘미사여구’만 쏟아내고 행동하지 않는 5개 국가 중 하나로 지목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가입한 전체 197개 회원국 중에서 지난해 말까지 75개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했다. 지난 2월 26일 기후변화협약은 이 목표치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75개 나라가 목표로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136억7천톤이다. 파리협정 때 제출했던 감축 목표보다 2.8%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이 목표대로라면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은 2010년 대비 0.5%, 2017년 대비 2.1%만 줄어든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아르헨티나, 칠레, 노르웨이, 케냐, 우크라이나 등은 2015년보다 크게 상향한 목표를 제출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러시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원래 감축 목표량을 그대로 제출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2030년 배출 목표치를 2017년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 7억910만톤 대비 24.4% 감축으로 제출했지만, 산정 방식만 바꿨을 뿐 기존 목표치와 동일한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셈이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파리협정에 서명한 모든 국가가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감축 목표를 상향해 다시 제출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 싱크탱크 ‘파워 시프트 아프리카’의 모하메드 아도우 대표는 “각국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미사여구만 보면 세계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보고서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뉴질랜드 등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사여구’만 쏟아내는 5개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이 지목된 것이다.

이런 지적을 받았음에도 환경부는 수정된 목표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유엔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다시 제출하라고 한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엔측에 리포트를 제출하면서 향후 상향된 목표치를 다시 제출하겠다고 명시했다”면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공공부문과 건물부문 등을 포함하는 목표치를 세우는 중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로드맵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 탄소감축 핵심인 산업 현장 외면...시민단체, 지자체 행사 위주

한정애 장관은 지난 1월 22일 취임하면서 "탄소중립은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 탄소중립 이행기반 구축, 환경정책 성과, 포용적 환경서비스를 제시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등을 역임하면서 환경 분야 전문성과 현안조정 능력을 충분히 검증받은 인사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장관은 취임사에서 "2021년은 탄소중립 선언을 행동으로 만드는 첫 해이고,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이 국민 모두의 목표가 되도록 필요성과 비전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자체 역할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언급한 대로 한 장관은 국민과 비전을 공유하고 지자체 역할이 강화되도록 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탄소중립에 대한 비전을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한 장관은 지난 9일 시민단체에 ‘2050 탄소중립’ 이행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환경부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50 탄소중립 열린소통포럼'을 개최한 자리에서다.

포럼은 탄소 중립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올해 새롭게 출범한 환경부-시민사회 간 소통 창구이다. 환경부는 이날 포럼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 미래를 준비하는 탄소 중립 비전 실행을 위한 탄소 중립 이행 기반 마련 ▲그린뉴딜 체감 성과 창출 ▲국민 안심 환경안전망 구축 등의 핵심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한 장관은 "탄소 중립 실천을 위해 시민의 협조가 절대적인 만큼 오늘 시민사회 대표와 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포럼에서 제안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정책에 잘 반영해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 중립 이행을 차질없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 장관은 지난달 31일 대전 서구청에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와 정책간담회를 열고 2050 탄소중립 업무협약식을 맺었다. 그 자리에서 한 장관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며 “오늘 이 협약을 계기로 지방정부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050 탄소중립 업무협약’은 기후변화 대응 조례 제정 및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조속히 수립하고, 지역 특화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적극 발굴하며, 지역 단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적극적인 협력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실천적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제시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장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실천을 독려해야 하는 주무부처 장관이 보여주기식 행보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조업체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환경부는 산업현장에 집중해야

실질적인 탄소배출권거래제의 당사자인 기업들은 올해부터 이 제도가 대폭 강화되면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내 제조업체

현대제철의 작년 영업이익은 730억 원이지만, 탄소배출권 구매 금액은 그 두 배에 달하는 1571억 원이다.
현대제철의 작년 영업이익은 730억 원이지만, 탄소배출권 구매 금액은 그 두 배에 달하는 1571억 원이다.

를 중심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탄소배출에 따른 재무 부담이 기업 실적까지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은 탄소배출권 제도가 강화되면서 재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2019년 1143억원의 온실가스 배출부채를 쌓았던 현대제철은 지난해 1571억원까지 부채 규모가 늘었다. 작년 영업이익(730억원)의 두 배를 지급하고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아 역시 지난해 처음으로 1520 억원의 온실가스 배출부채를 회사 재무재표에 반영했다.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 중 연비 규제를 충족하지 못한 물량이 많아지면서 비용을 미리 예상해 부채로 잡았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부채로 잡은 만큼의 탄소배출권을 미국 시장에서 사와야 한다는 뜻이다.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면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구매로 딜레마를 겪게 된다. ‘가동률 상승→탄소배출량 증가→배출권 구매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공장 가동률을 70%대까지 줄여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적었던 정유 업체가 향후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3개 업종에서만 탄소 중립 비용으로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탄소배출권 문제가 제조업체의 생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탄소배출량을 줄이기가 어렵다. 각 업체별로 할당된 탄소배출량 한도 내에서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강구되어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의 재무 부담이 한층 더 커질 것이다”면서 “환경부가 절감 방안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지적했다. 환경부 장관이 보여주기식 행보를 줄이고, 기업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대책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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