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선거 패배로 큰 충격에 빠진 더불어민주당이 격렬한 내홍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도부 총사퇴, 한시적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재정비에 나섰지만, 친문세력이 당내 권력을 재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당내 반발이 불거지고 있다.

내로남불,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론 대두...친문 인사들은 일제히 조롱

일부 인사들이 그동안의 ‘내로남불’ 행태,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서 진정어린 반성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친문세력은 이같은 주장을 ‘반개혁’으로 규정하는 전략을 드러내고 있다. 분노하는 민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공감능력도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중도층이 외면했던 검찰·언론 개혁 등 개혁 노선에 대해서도 강행 기조와 속도조절론이 맞부딪히고 있다.

“민주당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라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신호탄은 대표적인 강경 친문 인사로 꼽히는 도종환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됐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8일 지도부 총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포함하는 쇄신안을 일사천리로 발표했다.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기까지의 1주일 동안 도종환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역할을 맡는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4.7 재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했다. 

도종환 비대위원장부터 유력 원내대표 및 당대표 주자들 모두 친문 강성 인사로 포진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 저희의 부족함으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드렸다"며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도종환 카드는 이번 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요구를 능멸하면서 짓밟고 가겠다는 선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6일 이뤄질 신임 원내대표 선출과 5월 2일 새로운 당대표 선출도 친문세력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에 패배했지만 ‘혁신’보다는 ‘기득권 강화’로 대응하겠다는 기류가 읽혀진다. 친문인사들이 당을 더 확고하게 장악함으로써 비판적 목소리를 잠재울 것이라는 전망이 당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전에는 4선인 윤호중·박완주 의원 그리고 3선인 김경협 의원 등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윤 의원은 당내 86의 리더급으로 친문 강경인사 중 한 명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개정안과 임대차 3법 등의 문제 법안의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이번 보선기간 중에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쓰레기’라고 비난하는 수준 이하의 정치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당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홍영표·송영길·우원식 의원 등 친문 인사 일색이다.

‘친문 퇴진론’ 폭발할 가능성 주목돼

하지만 원내대표와 당대표 선출과정에서 ‘친문 퇴진론’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내 소장파인 조응천 의원은 “우리 당의 잘못인 '무능과 위선, 오만과 독선'에 대해 상당한 책임이 있는 분이 아무런 고백과 반성 없이 원내대표와 당 대표로 당선됐을 경우 국민이 우리 당의 변화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 두렵다”면서 “우리 당이 받는 부정적 평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가급적 이번 당내 선거 출마를 자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내 일각의 합리적 인사들에 의한 ‘쇄신론’과 이를 조롱하는 김어준 등 친문 강경파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① 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 “아직도 국민을 바보로 보는 거 아닌가” 지적

지난 8일 민주당은 온라인 의원총회에 이어,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는 김태년 대행의 사퇴에 따라 비대위원장 선출이 논의되었다. 노웅래·양향자·김종민·박성민·염태영·신동근·박홍배 최고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게 쇄신이냐?”라는 고성이 회의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민주주의4.0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도종환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다는 비난을 염려한 노웅래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은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당시 상황에 대해 “벼랑 끝에 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비대위원장을 뽑는데, 당내 특정 세력의 눈높이로 뽑는다면 쇄신의 진정성이 생길 수 있느냐”는 차원의 발언이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4.0연구원은 친문 핵심 의원이 모인 ‘부엉이 모임’을 계승한 것이고, 도 의원은 그 연구원의 이사장으로 핵심 친문이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이에 대해 “벼랑 끝에 서서 쇄신을 해야 되는 마당에 쇄신의 얼굴로 당 내 특정 세력의 대표를 내세운다면,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 될 거다”며 “국민들이 ‘아 이 사람들이 아직도 국민을 졸로, 바보로 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판단이라고 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문 위주의 비대위체제에 대해 '쇄신 의지'가 있는지를 우려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문 위주의 비대위체제에 대해 '쇄신 의지'가 있는지를 우려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② 민주당 의원총회 “최대 패착은 이번 보선에 후보 낸 것” VS 친문 김종민 최고위원 “이번 선거에선 (언론이) 더 심했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민주당이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자성론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잘못으로 보궐선거를 치르는데, 당헌·당규까지 바꿔서 후보를 낸 것이 잘한 것이냐”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종 개혁 과정에서 생긴 파열음으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졌고, 민생 개혁이 미진했다는 반성도 많았다. 그러나 다른 쪽에선 적폐청산, 검찰 개혁 등 지지층 요구를 완수하지 못해서 졌다는 주장도 여전했다.

일부는 재보선 참패를 언론 탓으로 돌렸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언론이) 좀 더 심했다고 본다"면서 언론의 야(野)편향을 주장했다.

강성 친문인 김 최고위원은 그 근거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의 내곡동 땅 의혹을 거론하며 "지금 여러 가지 증거들을 보면 알고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증언들이 많이 있다"며 "이런 점들은 언론이 꼼꼼하게 따져줘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했다. “서울시민들이 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생태탕만 기억할 정도로 언론이 보도를 많이 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의 언론탓 기사를 보도한 댓글에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언론탓 하는 거 보니까, 아직도 민주당이 정신을 못차렸네요” “개혁 대신 개악, 진보 대신 퇴보. 남탓하는 민주당 지겹다” “자기 반성은 못하고 남탓만 해대는 걸 보니, 아직도 멀었다”라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③ 김해영 전 최고위원, 조국 및 추미애 사태 비판 VS 친문 상왕 김어준, “김해영은 공감대 없는 사람” 조롱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재보궐선거에서의 패인으로 조국 사태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문제 등을 꼽았다. 그는 “조국 한 사람을 수호하기 위해서 국민을 갈라치고 갈등을 조장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거친 언행과 절차를 지키지 않는 막무가내식 장관직 수행을 당에서 제지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조금박해’의 멤버였다. '조금박해'는 민주당 내 소신파로 분류됐던 조응천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최고위원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딴 호칭이다.

김 전 의원의 이런 지적은 친문 상왕인 김어준에 의해서 폄하됐다. 김어준은 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 의원에 대해 “선거에서 지고나면 대체로 그 선거에 가장 도움이 안 됐던 사람들이 가장 도움이 안 될 말을 가장 먼저 나서서 한다”며 “이런 부류를 소신파라고 띄워주는데, 김해영 전 의원은 소신파가 아니라, 공감대가 없어서 혼자가 된 사람이다”고 규정했다.

김어준은 '조국 사태'가 4.7 보궐선거 패배의 출발점이라는김해영 전 최고위원의 인식에 대해 조롱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캡처]
김어준은 '조국 사태'가 4.7 보궐선거 패배의 출발점이라는 김해영 전 최고위원의 인식에 대해 조롱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캡처]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 “정동영은 권노갑 퇴진시켰는데, 친문은 딴 판”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쓴소리를 했다. “김해영 전 의원의 비판이 그나마 일부 반성하는 소신파의 목소리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당시 정동영 의원의 항명을 예로 들었다.

당시 총선에서 야당에 패배한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막 재선이 된 천정배·신기남 의원과 함께 정풍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정동영 의원은 12월 2일 청와대 만찬에서 “당이 대통령 특정 측근 중심의 비선으로 움직인다”며 김대중 대통령 면전에서 ‘권노갑 2선 후퇴’를 요구했다. 송영길·이재정·정범구 의원 등 초선들도 청와대에 당정쇄신 건의서를 내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보름 만인 17일 권노갑 최고위원이 사퇴했다. 민주당은 상향식 대선후보 경선을 도입했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을 창출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계속 남탓만 한다면, 내년 대선까지도 야당을 쭈욱 도와주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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