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tv에서 [시장경제 공부합시다]를 진행하고 있는 연세대 김정호 교수님 (이하 김정호 교수 또는 래퍼 김정호)이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힙합 그룹의 리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유튜브를 검색하던 중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발견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4tZeca9dDA

위 노래에서 래퍼 김정호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독일, 프랑스 수준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하며 (2분 44초) 빠른 시일 내에 세계 5대 강국에 들어야 한다 (2분 52초) 라고 온몸을 던지며 열창하고 있다. 가사에서 세계 5대 강국 중 독일과 프랑스를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가 독일과 프랑스 중 한 나라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이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과 같은 수준의 국력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경제학 박사인 김정호 교수의 의견이 내 주관적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 근처 공립 도서관에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인 아이들이 빌려온 도서들을 반납하러 갔을 때 독일과 프랑스에 대하여 몇 가지 책들을 살펴 보았다.

간단히 조사를 해 보니 1900년 통계에 의하면 독일과 프랑스의 문맹률은 각각 0.1%와 4%, 2006년 통계에 의하면 독일인과 프랑스인의 평균지능지수는 각각 107과 94, 동일한 통계에 의하면 독일을 포함한 중북부 유럽인들과 프랑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인들의 뇌의 크기는 각각 1,320cm3와 1,312cm3로 인적 자원 (human resources)의 측면에서 독일이 프랑스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자 김정호 교수가 언급한 두 나라들 중 프랑스보다는 독일에 대하여 관심이 생겼는데 그 중에서도 독일인들의 문화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자료들의 출처인 Peter Watson의 The German Genius라는 책을 대출하여 끝까지 읽어보기로 결심하였다.

한 달 동안 The German Genius를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어 보니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나라들 - 현재의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 사이에는 공통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문화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독일어 사용국가들의 문화를 독일 문화로 해당 국가들의 독일어를 이해하는 주민들을 모두 독일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독일 문화의 중심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빈 -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 체코의 프라하를 축으로 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이었으나 프로이센이 주도한 독일 통일 이후에는 빈 - 뮌헨 - 베를린으로 문화의 중심지가 다원화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오스트리아의 해체에 따라 빈이 아닌 베를린이 독일 문화권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망명함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두뇌 유출이 발생한 결과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요 국가들이 그들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21세기 현재에도 독일 문화권은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하지 못 하고 있다.

독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기억해야 할 점은 - <김박사와 시인들>의 리더 김정호 교수가 그랜드 피아노와 연미복이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음악적으로 힙합 래퍼 김정호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 독일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독일의 정체성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서 독일을 보는 시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보여지는 독일은 강력한 군대와 우수한 과학기술을 보유한 경제대국인 반면 독일인들에게 독일은 수많은 지성인들이 거주하는 형이상학과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문화대국이다. 독일인들에게 그들의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영국, 무질서한 개인주의 국가인 프랑스와 차르 등의 독재자들이 지배하는 전제주의 국가인 러시아에게 포위되어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문명국 독일의 영토와 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하에서 경건주의, 대학, 역사주의, 생물학, 고대 그리스 선호, 음악, 관념론, 내향성, 비더마이어 (Biedermeier), 존더베크 (Sonderweg), 정신분석학 등 1700년 이후 독일의 문화가 유럽의 중심을 자부하는 프랑스의 문화와 차별화하게 된 요인들 - 독일인들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문화가 프랑스 문화를 능가하게 만든 요인들 - 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국제전쟁이었던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의 독일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개혁을 외치던 루터파 교회마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자 개신교 내에서 교리보다 내면의 빛, 머리가 아닌 가슴, 학문적 논쟁보다 실천적인 자선을 강조하는 개혁운동인 경건주의가 세력을 얻어가게 되었다.

당시 북부 독일 지역에서 급성장하던 프로이센은 상대적으로 약한 조직을 가진 교회이면서 신도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던 경건주의를 국가적으로 후원하기로 하고 경건파 목사들을 국가 내 교육사업에 동원하는 정책을 채택한다.

이에 따라 독일 내에 경건주의 목사들이 주도하는 대학들이 계속 설립되게 되는데 두 가지 커다란 성과를 유럽 사회에 가져오게 된다. 우선적으로 대학 내 신학부의 전통적인 검열 권한 -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육과정을 폐쇄할 수 있는 권리 - 을 제한한 것인데 그 결과 신학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롭게 설립된 대학들이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더하여 연구방법론을 전수해 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 독일의 학문 수준이 급속도로 상승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보급에 따른 독서인구의 증가에 따라 구약성서가 애초에 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가 아닌 당시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적혀 있었다는 충격적 사실 - 그렇다면 십계명은 모세가 신의 말씀을 직접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후대에 유대교 성직자들이 정리한 것이 된다 - 을 일반 대중들이 알게 되었다. 나아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의 천문학 및 물리학 연구의 성과에 따라 성서의 내용에 상당한 오류가 있다는 인식이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제 독일인들은 성서의 기록에 의존하는 신학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자연과학을 보다 신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물리학 지식이 생명체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독일 문화권에서는 중세시대로부터 내려온 신학을 대신하여 역사학과 생물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제 독일인들은 (인간의 이해를 위하여) 과거의 사례들을 연구하여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의 이해를 위하여) 기본적으로 뉴턴의 법칙을 통하여 자연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동시에 생명체는 기계적 법칙의 적용이 아닌 개별적인 관찰을 통하여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생물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잠시 유럽의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럽 대륙은 거의 1,000년간 암흑의 시대에 있었으나 스페인에서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도들과의 전쟁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랍어 번역본을 접하게 되면서 12세기에 최초의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이후 흑사병 등의 영향으로 다시 침체기에 접어 들었던 유럽은 15세기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플라톤의 저술이 이탈리아에 전해지면서 제2의 르네상스 (통상적으로 말하는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된다. 18세기에 들어서 유럽은 다시 한번 문예부흥 - 제3의 르네상스 - 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독일인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수백 개의 분열된 작은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던 신성로마제국 하의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고대 그리스인들과 동일시하였는데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싸웠던 아테네, 스파르타 등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태양왕 루이 14세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독일 사이에는 자유인들이 거주하는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선호 경향에 더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과 눈에 보이는 형상을 분리하고 본질을 형상보다 중요시하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독일인들은 미술보다는 음악이, 경험론보다는 관념론이 우월하다는 잠재의식 속에 음악과 철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한 기존의 문화대국들인 이탈리아, 프랑스와 차별화된 독일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제2의 문예부흥의 주역이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인공들은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미술가들인데 반하여 제3의 문예부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르네상스에서는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음악가들이 역사책 속에서 가장 큰 장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시기 독일 관념철학을 간단히 살펴보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각각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인간의 행위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름다움의 법칙은 무엇인가를 논하며 진(眞), 선(善), 미(美)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헤겔은 인간의 역사를 자유를 그 본질로 하는 절대정신의 실현과정으로 해석하면서 변증법으로 그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영국, 프랑스 등 여러 차례의 유혈 혁명을 경험하였던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30년 전쟁 이후에는 대규모의 내란과 폭동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 주요 원인으로 독일인들에게는 위험한 현실 정치의 세계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으로 도피하는 특유의 내향적인 성향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비더마이어 (Biedermeier), 존더베크 (Sonderweg) 등의 개념을 통하여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비더마이어는 1815년 빈 회의부터 1848년의 3월 혁명까지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도하던 현상유지 우선의 시대에 나타났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독일어 사용 국가들의 문화 풍조이다. 프랑스 대혁명에 따른 대혼란을 겪은 유럽국가들은 상당한 정도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억누르려 하는데 이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프랑스인들과 달리 독일인들은 정치적 관심과 열정을 개인의 교양과 문화의 방면으로 전환하여 가구, 회화, 문학, 음악 등에서 중산층의 취향에 맞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생활양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이 시대의 빈 시민들은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보다는 자신의 집에 피아노를 놓을 수 있느냐의 문제에 보다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존더베크는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 국가들과는 다른 독일의 특수한 발전경로 -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혁신을 거듭하는 독일 제국 - 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즉, 독일의 권위주의적 행정국가 체제가 영국, 프랑스의 천박한 민주주의나 러시아의 전제주의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하에 독일만의 독자적인 제3의 길의 우월성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예전에는 독일인의 내향적 성향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역사적 발전과정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으나 현대 독일에서는 이러한 독일인들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향이 대공황 이후 히틀러의 집권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점차 회의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용하면서 경제 개발에 주력하는 개발도상국을 위한 국가발전전략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하는 정신분석학도 독일 문화를 대표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인격을 본능 (id), 자아 (ego), 초자아 (super ego)의 세가지로 분석하였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및 독일 관념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사상을 의학에 적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신분석학이야말로 독일인들은 사물의 이해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형상의 관찰보다는 보이지 않는 본질의 연구에 몰두한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독일인들은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하고 경제보다는 정치에 몰두하는 한국인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며 외국인들의 눈에는 힘이 세고 늠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내성적이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영국계와 독일계 주민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 한국인들의 성공 사례가 그다지 많지 않은 근본적 이유가 언어나 인종 문제가 아닌 문화적 차이에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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