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교수.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한국 정치사상 최악의 선거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쌍팔년도에 활개치던 고무신·막걸리 선거가 다시 부활하고,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대중선동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보궐선거는 ‘오세훈 대 생태탕’ 선거라는 비아냥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까맣게 잊혀졌던 이런 삼류 선거행태들이 내년 대선 때까지 이어지게 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준은 50년 이전으로 후퇴할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후진국 선거행태의 시동을 걸고 액셀레이터를 밟은 것은 정부와 여당이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정부는 4차 재난지원금과 코로나19 극복 이후 위로금을 꺼내놓았다. 그러자 여당 서울시장 후보는 1인당 10만원 지원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끊임없이 이어진 정책실패, 무능과 부패, 내로남불 퍼레이드로 판세가 불리해진 정부·여당이 작년 총선에서 솔찬히 재미봤던 ‘돈 뿌리기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급기야 선거운동 말미에는 여당의 부산시장 후보까지 재난지원금 공약을 내놓았다.

이렇게 진화된(?) 현대판 고무신·막걸리 공약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지 않자 급기야 여당 측에서 야당 후보의 내곡동 셀프보상 의혹을 제기하기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선거전략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별 효과가 없자 야당 후보의 거짓말 문제 즉, 전형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에 올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3차에 걸친 TV토론내내 ‘기승전 내곡동’을 반복하면서, 생태탕과 백바지에 페라가모 로퍼가 다른 모든 선거 이슈를 덮어버렸다.

이전투구 정도가 아니라 유치한 애들싸움판처럼 되어 버렸다. 국민들이 통치자나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정치가 ‘자해산업(self harm industry)’이 될 위험성이 있다. 경쟁적으로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게되면 유권자들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를 만연시킬 수 있다. 이는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을 확산시키고 참여 의지를 저해해 결국 강한 응집력을 가진 정파가 권력을 독식·유지하는 토대가 된다. 혹시 이른바 ‘대깨문’이라는 광적 지지집단을 가진 현 정권이 그것을 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네거티브 선거전 아니 여당의 자해산업 전략을 주도한 에이전트가 TBS의 ‘김어준의 뉴스공장’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생태탕집 주인과 아들을 출연시켜 선거판을 진실공방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수많은 공정성 문제들이 지적되어왔고 김어준 씨의 고액 출연료도 논란이 되었다. 특히 교통방송이라는 목적에 걸맞지않는 정권 호위방송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실제 정부와 여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노골적으로 정권을 비호하고 야당을 공격하는데 앞장서 왔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김어준의 편향적 정치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통방송 그것도 서울특별시가 직접 소유·운영하는 특정 목적의 전문방송이라는데 있다. 교통방송은 ‘교통 관련 전문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허가받은 라디오방송이다. 케이블TV나 인터넷방송도 하고 있지만 본질은 방송전용 무선주파수를 사용하는 지상파라디오방송이다. 교통정보 제공을 위해 희소한 자원인 무선주파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파성 문제를 떠나 시사·보도·정치 프로그램 자체가 허가목적에서 벗어난 불법 혹은 위법 행위라 할 수 있다. 방송법상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별도의 허가나 승인받은 방송사나 채널만 가능하다. 즉, 몇 개 지상파방송들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들만 뉴스 편성을 허용하고 있다. 또 이들 방송은 엄격한 인·허가 절차와 소유규제 같은 진입장벽도 상대적으로 높다. 높은 강도의 재승인 심사도 받아야 한다.

특히 현 정부는 종편·보도채널들에 대한 재승인 심사에서 보도공정성을 매우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방송은 편파적인 그리고 가짜뉴스에 가까운 의혹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보도공정성 같은 엄격한 심사를 거의 받지 않는다. 규제공백 상태에서 불법적 보도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방송을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1995년 교통방송 출범 당시 교통안전공단 같은 비정치적 기구들이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심지어 후보 시절 교통방송을 내놓겠다고 했던 조순 시장조차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은 기본적으로 특정 정당을 배경으로 선출된 권력이다. 그런 지방자치단체가 뉴스가 편성된 방송을 직접 소유한다는 것은 특정 정파를 떠나 항상 정치적 편파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상파라디오와 유사한 지역공동체라디오 방송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 정권 어떤 시장도 교통방송을 정치적 홍보수단으로 악용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불문율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각종 정부 부처 혹은 산하기관들이 운영하는 전문채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지만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물론 과도하게 늘어난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공공·공익 채널들은 분명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들 채널들이 교통방송을 벤치마킹해 거의 규제받지 않는 편파적인 시사·보도 보도프로그램이 창궐하게 된다면 인터넷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한 민주주의 근본을 훼손하는 사회악이 될 것이다. 이게 부러워서였는지  최근 경기도의회에서 직영 라디오 방송 설립 조례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현 경기도지사가 가장 유력한 여권의 대권후보다. 걱정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자칫 현 정권이 적폐라고 공격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들보다 더 심각한 적폐 중의 적폐가 될 수 있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몰락이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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