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네거티브 선거전략’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존재감 상실’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박 후보는 시도 때도 없이 ‘내곡동 땅’ 의혹을 부풀리는 데 전력투구 중이다.

박영선, 인물과 정책은 실종되고 오세훈만 부각되는 ‘부메랑’ 맞아

그로 인해 내곡동 땅이 서울시장 보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싸움의 양상이 ‘박영선 대 오세훈’이 아니라 ‘민주당 대 오세훈’으로 변질되고 있다. 박 후보의 친정인 민주당조차도 박 후보를 제쳐두고 오세훈과 정면대결을 펼치고 있다.

일반 여론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도 박 후보의 인물과 정책에 대한 관심 자체가 실종되고 있다. 박 후보로서는 예기치 못했던 내곡동 땅의 ‘부메랑 효과’이다.

따라서 오 후보에 대해 오차범위 밖으로 열세를 보였던 박 후보가 그 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결과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의 효용을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영선은 마지막 TV토론에서도 ‘내곡동 땅’ 의혹제기에 집중...오세훈 정책엔 무관심

5일 오후 2시에 진행된 마지막 TV 토론회에서도 박 후보는 줄곧 오 후보의 내곡동 문제만 파고들었다. 토론 후반부 자유토론의 두 번째 주제인 ‘민생 일반’ 토론에서도 오직 내곡동 문제만 거론하자, 오 후보로부터 “내곡동 문제가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막무가내였다. “아, 관련 있습니다”라면서 공격을 이어갔다. 내곡동 문제에 대해 오 후보가 설명을 하려 해도 “30초가 지났습니다. 그만하시죠”라고 답변을 가로막았다. 애초부터 답을 들을 자세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확인되지 않은, 증거도 없는 공세만 이어갔다.

오로지 시청자들에게 내곡동 문제만을 각인시키려는 태도였다. 1,2차 토론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박 후보의 초조하고 떨리는 목소리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는 점이다.

초조하고 떨리는 목소리의 박 후보와 달리, 오세훈 후보는 안정적이고 차분한 태도로 토론에 임했다.

오세훈은 박영선의 ‘21분 도시와 수직정원’의 실현 불가능성 추궁

오 후보는 박 후보의 정책에 대해서 날선 질문을 했다. ‘21분 도시와 수직정원’에 대해서는 실현불가능성을 지적하며 “철회할 생각은 없으십니까?”라고 평가했다.

박 후보는 내곡동에 관한 질문을 계속하며 “오 후보께서는 계속해서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한다”라고 공격하자, 오 후보가 드디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렇게 따지면 박 후보의 존재 자체가 거짓말이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당헌 당규를 바꾸면서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낸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존재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자유토론이 끝나고 각 후보에게 2분간의 지지호소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박 후보는 “저 박영선이 서울시도 바꾸고, 민주당도 확 바꾸겠습니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진심이 거짓을 이기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마무리했다. 하지만 박 후보가 민주당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인 진성준, “내곡동 땅과 관련 중대결심 할 것” 공언

민주당 내 박영선 후보 캠프 내에서 박영선 후보의 존재감은 이미 미미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문제가 박 후보의 의견과 관계없이 당 차원에서 발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인 진성준 의원은 박 후보 선대위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 후보의 '내곡동 처가 땅 개발' 의혹과 관련해 "상황에 따라 중대한 결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진 의원은 '중대결심'의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끼며 "두고보라"고만 했다. 이 때문에 '중대결심'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야권에서는 '지지율 격차가 예상외로 크게 벌어지자, 부담을 느낀 박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에서 사퇴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이에 진 의원은 지난 3일 페이스북서 "저는 전략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며 "오 후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대한 구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영선 후보 사퇴설을 내뱉는 발상의 황당무계함과 후안무치함을 명확히 지적한다"며 "중대결심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오세훈 후보의 입장 표명"이라고 밝혔다.

박영선 측, “진 의원의 중대결심 발언은 사전논의된 바 없어”

하지만 진 의원이 이런 발언과 중대결심에 대해 박 후보는 "사전에 논의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일 박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캠프 내에서 소통이 없느냐'는 질문에 "소통은 있다"며 "의원단이 결정해서 발표할 문제"라고 했다. 박 후보 자신의 '중대결심'이 아니라, 선대위 의원단의 '결심'이라며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오 후보가 생태탕 주인·아들의 증언, 처남 사진이 나온 이후 관련한 이야기를 안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진 본부장의 얘기”라고 설명했다.

진 의원의 ‘중대결심’을 놓고 박 후보가 엇갈린 입장을 보이는 것이다. 박 후보는 “진 의원이 오 후보의 답을 기다리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진 의원은 5일 오후 민주당 소속 시의원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다고 밝히면서 중대결심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서는 진 의원이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을 기자회견에 동행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됐을 경우 오 후보에 대한 비토(거부)권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정도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서울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 소속인 것을 강조하며 '오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더라도 싸우느라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협박성 발언을 해 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 “네거티브는 야당 몫, 인물과 공약을 내세우지 못한 건 잘못된 전략”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은 실체 없는 네거티브를 그만하고 ‘원칙 있는 패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네거티브 전략만 구사하는 박 후보 캠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내에선 “후보의 장점을 당이 100%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이 주도하는 네거티브 전략에 박 후보가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부터 일부 의원들까지 내곡동 땅 투기 의혹에 총공세를 펴면서, 정작 인물과 정책을 부각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 역시 “네거티브는 원래 야당이 주도하는 건데, 인물과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다는 점이 잘못된 전략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 입장에서도 답답하고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박 후보는 최근 민주당 지도부를 상대로 몇 차례 이러한 문제점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박 후보는 “매일 2%씩 따박따박 지지율을 올리겠다”고 장담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한국 정치에서 네거티브 선거전략의 실효성이 판가름난다는 점이 이번 보궐선거의 각별한 의미인 셈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