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섭 칼럼] 공영방송 정상화, 노영방송 청산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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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4.05 10:58:51
  • 최종수정 2021.04.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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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KBS 이사)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KBS 이사)

공영방송 문제, 노영방송 청산 논의가 선행되어야

최근 방송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이사회 구성 등 거버넌스(governance) 개선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방송법 개정 논의는 소위 ‘노영방송’ 청산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노영방송(勞營放送)은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방송경영에 개입하여 정상적인 방송경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상태를 비꼬는 용어이다. 최근 노조가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막강한 행위자(player)로 등장하였다. 특히,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공영방송 노조는 노사협약과 노사협의를 통해 인사권, 편성권, 공정방송 등 경영권에 개입한다. 이러한 행태는 공영방송의 정상적인 경영을 왜곡, 공영방송이 그 설립목적을 올바로 수행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공영방송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을 위한 방송을 하는 철학적 소명(召命)에 그 존재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노영방송 행태를 살펴보고 진단하여 공영방송 경영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공영방송의 경영과 노조 거버넌스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다양한 주체들이 권한과 책임 그리고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의 운영원리에 의해 최적화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영방송 노조는 종사자 대부분이 가입되어 있는 법적 기구이다.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은 취업규칙에 앞서기 때문에 공영방송 경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제 공영방송 경영진이 다수노조의 협력 없이는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 현실(paramount reality)로 인식되었다.

공영방송에서 노조와 경영진의 거버넌스 관계는 대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경우와 동형체적인 경우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예컨대 다수노조가 경영진과 대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경우에는 파업을 통해 경영진을 무력화시키고, 동체적인 경우에는 조직의 주요 보직이 전략적 협력관계 노조출신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공영방송의 다수노조는 집권여당과 같은 ‘집권노조’로 불릴만하다. 정의사회와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공영방송 경영진을 비판ㆍ견제하던 집단이 직장의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경영진과 기능적 동형체가 되어 침묵하거나 방관한다.

문제는 공영방송 노조가 경영행위에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경영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감시 혹은 견제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영방송 경영의 비정상성을 방증하고 있다. 만약 공영방송 거버넌스 행위자로서 노조에 권한을 부여한다면 책임을 지게 해야 하고, 견제에 의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 운영 시스템이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공정방송위원회: 정치적 중립성과 내적 다원성을 확보해야

먼저 노조의 공영방송 경영개입 사례 중에서 방송 공정성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KBS의 공정방송 문제를 협의하는 공정방송위원회는 사측과 노조가 동수로 구성ㆍ운영된다. 사실상 교섭대표 노조가 공정방송 논의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복수노조시대 공영방송 노조는 다양한 정치적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 공정성은 정치적 중립성을 전제로 한다. 노조가 공정성을 요구하려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노조가 공영방송 종사자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내적 다원성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 ‘KBS판 검언유착 의혹보도 사건’, ‘김모 아나운서 뉴스삭제 편파방송 사건’ 등에 대처하는 KBS노조, 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민노총노조), KBS공영노조의 입장이 달랐다. 교섭대표 노조의 경향성에 따라 방송 공정성 잣대가 달라진다면 방송 공정성 해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방송 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노사간 합의라는 비인과적인 방법에 의존해서는 안되고, 저널리즘 원칙을 지켜 공정보도를 고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노사가 동수로 운영되는 공정방송위원회는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하여, 정치적 중립성과 내적 다원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재설계되어야 한다.

노조의 영향력 확대: 노사협약, 편성규약, 시청자위원회...

다음으로 <방송법>에 따라 제정된 <KBS방송편성규약>에 의거하여 노사 동수로 구성된 편성위원회가 운영된다. 편성규약에 따라 경영권의 핵심 중의 하나인 편성에 대해 노조가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취재ㆍ제작부서의 국장 임명시 종사자들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2018년 9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자위원회 정상화방안’을 발표했다. 시청자위원회 구성에서 경영진과 노조가 동수로 선정위원회을 구성하여 합의하도록 권고하는 안이다. 다음으로 2018년 9월 KBSㆍMBCㆍSBSㆍEBS 지상파방송 4사는 민노총 언론노조와 노사협약을 체결했다. 민노총 언론노조는 편성ㆍ제작의 공정성과 자율성 침해시 심사ㆍ시정 요구권, 경영진 출석 및 자료제출 요구권, 공정방송 저해 구성원에 대한 징계심의 요구권 등을 가지고 있다. 민노총 언론노조가 보도ㆍ제작ㆍ편성뿐만 아니라 인사에도 영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그 외에도 노조가 방송사와 새로운 단체협약이나 규약 등을 제정하면서 방송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확대하고 있다.

종사자들의 실질적 정치활동, 방송 공정성 훼손 우려

<KBS취업규칙>에서는 종사자들의 ‘정치참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고, <KBS방송강령>에는 “우리는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며, 정치나 정치조직을 위한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 밖의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방송은 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KBS민노총노조 상급단체는 정치위원회를 두고 있고, 진보진영을 지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민노총 언론노조가 2012년 총선에는 통합진보당, 2020년 총선에는 더불어민주당ㆍ정의당ㆍ민중당ㆍ녹색당ㆍ노동당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유의선(2020)은 미디어연대 정책토론회에서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민노총 언론노조는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주요 행위자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KBS와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 다수노조가 방송사 내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이 아니라, 민노총 언론노조의 산하에서 방송사별 본부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KBS민노총노조 조합원들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영방송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공영방송 종사자에 의해 방송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보도ㆍ시사프로그램 종사자는 정치지향 노조활동 유보를 검토해야

공영방송에서 보도ㆍ시사프로그램 종사자들은 특정 정치를 지향하는 노조활동을 유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백선기(2003)는 “보도ㆍ시사프로그램은 지배적인 집단이나 권력을 지닌 집단이 뉴스 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특정 의미를 크게 부각시키고 다른 의미들은 배제하거나 회피함으로써, 특정 이데올로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공영방송의 보도ㆍ시사프로그램 종사자들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안에 대한 보도 여부 및 내용을 조정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왜곡된 저널리즘을 재생산하는 데 가담하는 셈이다. 이는 공영방송이 공적책무를 수행하는 데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지난 해 10월 민노총 언론노조의 ‘독감 백신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보도-방송 지침’ 하달 등을 목격한 바 있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을 견지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보도ㆍ시사프로그램 종사자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노조에 참여하여 활동하는 것을 유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안에 대한 KBS 경영진의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주요 답변내용은 다음과 같다.

『언론노조가 규약상의 추진사업으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사업’을 규정하고 있고, 일부 정당과 정책협약을 맺은 바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언론노조의 노조성이 부정되거나 언론노조의 정치활동에 대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상급단체가 정치활동에 관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그 지부인 하위 노조에 가입하여 있음을 이유로 해당 직원(조합원)의 보도ㆍ시사프로그램의 제작ㆍ기획 등에의 참여를 제한한다거나 보도ㆍ시사프로그램 종사시 해당 노조활동을 유보 또는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의 근로3권 및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금지규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 독립성에 대해 KBS 경영진의 태도는 매우 미온적이다. 현재의 공영방송 경영진에게 주어진 책무는 좁은 의미의 경영 개선보다 저널리즘 정신의 구현이 더 중요할 것이다. 특별법인 <방송법>과 <노동관계법>이 공영방송 현장에서 충돌하고 있다면, <헌법>에 비추어 더 면밀한 법적ㆍ학술적 검토를 통해 공영방송 거버넌스 행위자들의 행위준칙(예 관련법, 협약, 규범)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은 소명, 실천적 규범주의를 실천해야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는 경영진의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고, 종사자 모두가 자기의 역할을 올바로 수행할 때 비로소 달성할 수 있다. 결국 공영방송의 희망은 공영방송인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우선적으로 공영방송인들은 내ㆍ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공영방송 체제라는 틀을 유지하고 가능하게 하는 규범(規範)을 성실하게 준수해야 한다. 다음으로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사회적 책무성, 소명의식,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가 강화되어야 한다. 공영방송인들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바른 태도로 실력을 쌓고 경험과 통찰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공영방송인 스스로 참 방송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를 다하기 위해 요청된 문제에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토대가 마련되면 공영방송인들은 <방송강령>이나 <윤리강령> 같은 형식적인 규범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천적 규범주의(practicable normativism)를 통해 공영방송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천성을 갖게 될 것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행위자들의 행위준칙이 마련되어야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행위자들(players)에 대한 실체파악과 역할 부여 그리고 행위자들에 대한 행위준칙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황근(2020)은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통제 정책을 “외형적으로 정치 독립성을 표방하고 내부적으로 정권과 유착된 노조가 전유하고 후견인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현재 공영방송 노조가 경영에 개입하고 있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공영방송 조직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느냐의 판단은 그 조직에서 작동되는 과도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준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100인 이사추천위원회” 등의 그러싸한 슬로건이나 방송법안 내용도 외형적으로는 방송 독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허구의 민주적 공영방송일 수 있다. 따라서 면밀한 검토를 거지치 않은 공영방송 시스템 개선의 결과는 공영방송의 정상화보다 노영방송의 고착화를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다.

공영방송의 정상화, 노영방송의 청산이 으뜸가는 과제

정상 경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공영방송은 사회의 공기(公器)가 아니라 흉기(凶器)가 될 수 있다. 현재의 노영방송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역대 공영방송 경영진들이 노조와 대립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우려하여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행위준칙을 준수하지 않고, 노조와 타협하면서 노조에 경영권을 조금씩 양보한 탓이 크다. 2020 총선과 2021 보궐선거 기간에 KBS MBC TBS 방송내용을 팩트체크한 결과, 보도ㆍ시사 프로그램의 친정권 편향성이 두드러졌다. 공교롭게도 이들 공영방송사 사장들이 모두 민노총 언론노조 혹은 산하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리더였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의 노조 거버넌스는 시급히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현재 상태의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 수준의 처방이 필요하다. 우리시대에 공영방송이 여전히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동의한다면, 공영방송 본래의 목적을 온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경영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노영방송 청산이다.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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