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의혹으로 촉발된 부동산 투기의혹 수사가 ‘기획부동산’을 겨냥한 수사로 변질되는 조짐이다. 정부는 수사범위 확대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상 방향 선회라는 분석이다.

초기에는 LH 직원과 공직자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도높게 주문하고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이 적극적으로 거들면서 경찰, 국수본에 이어 뒤늦게 수사에 투입된 검찰마저 기획부동산 쪽으로 수사 방향을 돌리고 있다.

시민단체는 하루 만에 LH 투기 직원 13명 적발...수천명 수사인력 동원한 경찰 실적 0명

정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H 직원 3기 신도시 투기의혹 사건이 터져나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사 실적은 초라하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달 2일 LH 직원 13명의 투기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보를 받아서 하루 동안 조사한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정부는 한 달 동안 수천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수사를 펼쳤지만 투기의혹이 있는 LH 직원을 추가로 발견한 것도 없다. 참여연대 등이 적발한 13명의 직원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입장만 정리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소급 처벌’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공수표’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문 대통령과 정 총리 그리고 여권 고위인사들이 그토록 생난리를 피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면피용 수사’가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에서 케케묵은 이슈인 ‘기획부동산’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뜬금없는 기획부동산 수사...문 대통령이 북 치고, 변창흠이 뒤에서 장고 쳐

검경의 수사 방향이 ‘기획부동산’으로 향하게 된 건 문 대통령이 지난 29일 주재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 이후부터다. 당시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기획부동산 문제를 두 차례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처리하는 한편 부동산 부패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야단 맞을 것은 맞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주기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대통령의 언급 이후, 토론 과정에서 기획부동산 문제가 집중 거론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LH 사태로 인한 부동산 투기 수사는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문제, 내부 정보 유출문제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경질 대상인 변창흠 장관이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기획부동산 피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수사의 방향이 바뀐 것으로 분석된다.

변 장관은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이어 “기획부동산의 피해자는 노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기획부동산은 상습 투기세력이 있고 만성적이다. 이번을 계기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여기에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기획부동산이 만악의 근원이 확실하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전주가 땅을 사는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정보를 빼내서 악용할 수 있다. 이것이 부동산 적폐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김창룡 경찰청장 역시 기획부동산까지 수사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발언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LH 수사 강요받은 검찰도 빠져나갈 구멍 생겨

검찰의 입장에서도 기획부동산 수사는 고육지책인 상황이다. 검찰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부동산 투기 수사와 관련, 최근 5년간 기획부동산 등 과거 사건을 재검토해 필요 시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 LH 투기 사건은 이미 경찰 국가수사본부 주도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가 수사 중이기 때문에,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직접 수사가 가능한 다른 사건 단서를 찾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대검찰청은 기획부동산 수사를 포함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총력 대응 방안’을 지난달 30일 전국 43개 지검·지청에 지시했다.

대검의 이같은 지시는 29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LH 투기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500명 이상의 검사·수사관을 투입하라”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다. 정세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7자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 직후 브리핑에서 “수사 인력을 2000명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사범을 철저히 색출하겠다”며 대규모 검찰 투입 계획을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이런 수사 방향에 대해 예견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기처분한 과거 사건을 살펴보는 것이 검찰이 LH 사태 수사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현재로서는 검찰이 LH 수사 본류에 참여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31일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를 열고 각 검찰청 전담 수사팀 구성 현황 및 대응 사례, 2기 신도시 투기 사범 단속 사례 등을 검토해 추가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 회의에서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중대한 부동산 투기 범죄는 기본적으로 공적 정보와 민간 투기세력의 자본이 결합하는 구조로 이루어지며 이 부패 고리를 끊을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기획부동산 등 투기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LH에 대한 수사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직접 수사하기는 어렵다. 뭐라도 해야 하다 보니 기획부동산도 들여다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LH 수사 실패한 경찰, 문 대통령 지시가 고마울 따름

LH 수사 실적을 못 올린 경찰로서는 기획부동산 수사를 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고마울 따름이다. ‘면피용 수사’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 차원에서도 기획부동산에 대한 수사 의지는 확고하다. 반부패정책협의회 다음날인 3월 30일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내부정보를 이용하거나, 차명거래 등을 통한 부동산 투기뿐 아니라 기획부동산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해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자세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획부동산 자체가 국민들 투기심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고, 그 과정에서 사기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그 부분까지 들여다 보려고 한다. 그런 차원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등 야권, "수사 대상을 공직자에서 부동산업자 쪽으로 전환시키려는 것"

정치권에서는 이런 기조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는 분위기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정부와 검경은 수사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수사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수사의 대상을 공직자에서 부동산업자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사 과정에서 공직자나 여당 관계자가 적발되면 정권 차원의 비리로 국민들에게 각인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기획부동산 쪽으로 수사 방향을 트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획부동산 쪽으로 수사를 하게 되면 ‘부동산 투기 업자의 농간에 일부 공직자가 결탁한 정도로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관계자 역시 “기획부동산이 부동산 투기의 오래된 뿌리이기 때문에, 기획부동산을 수사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고위 공직자나 여당의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흐려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까지 수사를 흐지부지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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