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의 핵심인 ‘공공재개발’ 사업에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1월 1차 후보지 선정에 이어 2차 후보지가 선정됐지만, 주민 동의를 위한 사업설명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공급확대를 통해 폭등한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대책이 또 다시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29일 국토부와 서울시는 서울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 16곳을 선정·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들은 주로 역세권의 5만㎡ 이상 대규모 노후 주거지이다.

노원, 종로, 강동, 송파 등 2만 4902가구 공급계획 차질 빚나...집값 잡기는 또 ‘공수표’?

한강 이북에서는 ▲노원구 상계3 ▲성동구 금호23 ▲종로구 숭인동 1169 ▲서대문구 홍은1 ▲서대문구 충정로1 ▲서대문구 연희동 721의 6 ▲동대문구 전농9 ▲중랑구 중화122 ▲성북구 성북1 ▲성북구 장위8 ▲성북구 장위9 등이다.

한강 이남은 ▲강동구 천호A1-1 ▲동작구 본동 ▲양천구 신월7동-2 ▲송파구 거여새마을 ▲영등포구 신길1 등이다. 16개 후보지에서 총 2만여 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비교적 입지가 좋은 한남1과 성북4 등 4곳은 주민 반대 등으로 후보지에서 제외됐다.

앞서 지난 1월, 정부는 공공재개발 1차 시범사업 후보지로 8곳을 선정했다. ▲동작구 흑석2 ▲영등포구 양평13·14 ▲동대문구 용두1-6·신설1 ▲관악구 봉천13 ▲종로구 신문로2-12 ▲강북구 강북5 등이다.

정부는 1차에서 발표된 8곳 물량 4700가구를 포함해, 모두 2만4902가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애초 목표로 했던 2만 가구보다 5000여 가구가 많은 물량이다. LH 땅 투기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공공재개발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2차 후보지 16곳의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30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분양 권리 산정기준일은 공모 공고일인 지난해 9월 21일로 고시하고, 이날 이후 필지분할 등 지분 쪼개기 행위로 취득한 지분에 대해서는 조합원 분양권을 인정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진다.

지난 1월 선정했던 1차 후보지 8곳에 대해서도 연내 공공시행자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계획 수정이 끝나면 내달부터 후보지 주민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열고, 공공시행자 지정 동의를 얻을 계획이다.

공공재개발은 LH, SH 등 공공 기관이 참여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법정 상한 용적률의 120%까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의 20~50%를 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공공기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분양가 상한제 미적용, 인허가 절차 간소화, 사업비 지원, 이주비 융자 등 각종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① LH 투기의혹 여파로 LH 주도 개발 정책에 대한 불신감 팽배

무엇보다도 LH 사태로 공공주도 개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때문이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공공재개발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LH 땅 투기 의혹이 워낙 광범위하고, 수사가 언제 마무리될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라 주민들의 불신감을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서울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로 선정된 관악구 봉천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공공재개발로 낙후된 지역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지만, LH 사태 이후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주민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투기 재발 방지를 위해 온갖 대책들을 내놓으며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2·4 공급 대책을 설계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사실상 경질된 데다, 실무 작업을 총괄할 LH 사장이 석 달째 공석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② 누가 서울시장 되도 민간 재개발 활성화...돈 안되는 공공재개발은 외면?

4.7 보궐선거에서 누가 서울시장으로 선출되느냐에 따라 공공재개발의 방향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주민들의 기대감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공공재개발을 하려면 주민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데, 새로 선출되는 시장이 민간재개발에 힘을 실어 주면 공공재개발을 택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입지가 좋은 곳으로 평가받는 한남1구역, 고덕2-1구역, 고덕2-2구역, 성북4구역 등은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최종 후보지에서 빠졌다. 그 지역의 한 주민은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내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공공재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그 지역의 주민들은 대부분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보고 사업 방식을 정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다른 주민 역시 “입지가 좋고 사업성이 좋다는 한남1구역 주민들이 왜 공공재개발을 반대하겠느냐”며 “민간재개발 사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행정절차가 간소해지면 공공재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주민이 많아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렇게 될 경우 공공주도 재개발이 민간 개발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③ LH 못 믿겠다는 주민들은 ‘감시권’마저 요구해

지역 주민들 간 복잡한 이해관계 역시 공공재개발 사업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지난 1차 발표 이후 2개월이 지났지만, 사업설명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13구역이 유일하게 사업설명회를 진행했다. 다른 지역에서 사업설명회가 번번이 연기되는 것도 주민들의 반대가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공공재개발 말고는 낙후된 생활환경을 개선할 방법이 없는데도, LH 사태 이후 주민들 여론이 나빠지면서 시행사를 바꿔달라는 조합원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가구의 절반을 공공임대 등으로 기부 채납하는 방식보다 민간재개발 방식으로 돌아서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어, 이해관계가 복잡한 지역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공공재개발의 주체인 LH에 대한 불신감에 주민들에게 감시권을 달라는 요구도 나오는 상황이다. 영등포구 신길1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박종덕 위원장(전국공공재개발사업협의회 회장)은 “LH투기 사건으로 공공의 신뢰가 떨어진 만큼,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자치기구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업 대상지 주민들이 LH 등 사업 주체를 감시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도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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