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과정에 문제 있다는 사실 알고도 아무 처분 안 했다면 사후 입학취소 처분 부당하다" 판례
2014년 2월 '학사 학위' 미소지 이유로 전남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입학취소' 처분한
전남대 로스쿨, 관련 소송에서 패소...광주高法 "결격 사유 알고도 아무 조치 않은 학교에 문제"
장달영 변호사, "설사 '입학취소' 처분 있더라도 행정소송에서 결과 뒤바뀔 가능성 배제 못 해"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등 입시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의 장녀 조민 씨에 대한 교육 당국의 사실조사와 그에 따른 처분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입학 과정상에 문제가 있음을 입학 초기에 인지하고도 문제가 있는 학생에 대해 대학 당국이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았다면 추후에 입학을 취소하는 처분을 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례(광주고등법원 2014누6226)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교육부가 이같은 판례가 있음을 알고 조 씨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시간 끌기 작전’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고등법원.(사진=연합뉴스)
광주고등법원.(사진=연합뉴스)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법학전문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A씨에게 2014년 2월27일 ‘학사학위 미취득’을 이유로 합격 취소 처분을 할 예정이라는 취지의 ‘합격취소 처분 사전통지’를 했다. 2011년 2월26일 전남대학교 법학대학을 수료한 A씨는 2011학년도 전남대 로스쿨 석사과정 일반전형에 지원해 2011년 2월11일 ‘정시모집 일반전형 5차 추가합격자 발표’를 통해 동(同) 로스쿨에 입학, 2014년 1학기까지의 등록금 총 3천600여만원을 납부한 상태였다.

2003년 3월 전남대 법학과에 입학한 사건 당사자 A씨는 2009년도 동계학기까지 8학점을 이수하면서 졸업학점(140학점)을 초과하는 151학점을 취득, 성적 평균평점(GPA)은 3.14로, 졸업 자격인정 영어시험에도 합격해 전공 영역과 외국어 영역에서 졸업자격을 모두 충족한 상태에서 학사 취득 예정자 자격으로 동(同) 대학 로스쿨에 진학한 것이었다. 다만 A씨는 워드프로세서 관련 자격을 제출하지 않아 당해년도 졸업사정에서 졸업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A씨는 2011년 2월4일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취득해 놓고도 행정절차의 부지(不知)로 인해 해당 자격증을 학교에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로스쿨 측의 ‘합격취소 처분 사전통지’를 받은 A씨는 곧바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1심은 로스쿨 측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을 심리한 광주고등법원은 이 사건 합격처분을 취소함으로써 실현되는 대학원 입학시험의 형평성, 대학원 입학제도의 공정한 운영의 이익, 대학원의 자율성 등의 공익보다는 그같은 처분으로 말미암아 침해되는 원고 A씨의 법익이 훨씬 중대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2심 재판부는 로스쿨 측이 A씨가 학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음을 A씨의 로스쿨 입학 단계에서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고 있다가 A씨의 로스쿨 입학으로부터 2년 10개월여가 지난 시점이 돼서야 비로소 A씨에게 ‘합격취소 처분 사전통지’를 한 것을 문제 삼았다. 전남대 법학과가 2011년 1월27일 졸업사정을 시행, 같은 해 2월9일 A씨가 졸업대상자가 되지 못했음을 전남대 로스쿨 측에 통지했음에도 전남대 로스쿨이 아무 문제도 삼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전남대학교.(사진=연합뉴스)
전남대학교.(사진=연합뉴스)

재판부는 또 A씨가 학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이유가 부수적인 사유에 기인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다른 조건은 모두 충족한 상태에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당시 로스쿨 신입생 모집전형에 함께 응시한 다른 응시자들에게 합격의 기회를 박탈할 정도로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당해 행정처분으로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해당 행정처분은 언제나 취소됨이 마땅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당해 행정처분으로 불이익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같은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한 공익상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해당 행정처분이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대법원 76누30)를 인용했다.

◇조국 딸 조민, 부산대가 설사 ‘입학취소’ 처분하더라도 소송 벌일 가능성…“승산 없는 것 아니다”

전남대 로스쿨 A씨의 사례에서 법원은 로스쿨 입학 초기에 A씨에게 하자가 있음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A씨의 졸업이 임박한 시점에 이르러서야 A씨에게 합격 취소 처분을 하려 한 대학 당국에 제동을 걸었다.

A씨의 사례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조국 전(前) 장관의 장녀 조민 씨의 사례와도 일견 비슷한 면이 있다. 조 씨는 2015년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했는데, 조 씨에 관한 이야기는 2017년 조국 당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될 즈음부터 나오다가 2019년 8월 조 교수가 법무부 장관 후보에 오른 뒤에 관련 의혹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왔다. 교육 당국이나 부산대 측이 조 씨의 부정입학 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조치를 할 시간이 4~5년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교육 당국과 부산대 측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조 씨는 의전원을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까지 치러 현재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 소재 한일병원에서 수련의(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사진=연합뉴스)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사진=연합뉴스)

물론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A씨의 사례와 조 씨의 사례는 다른 점도 있다. A씨의 사례에서는 A씨가 학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이유가 행정절차의 부지 때문에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유에 기인한 것으로써 입학 전형상 다른 수험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 씨의 경우에는 의전원 입학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허위 자료를 제출했고 조 씨가 제출한 허위 자료는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고합927).

부산대가 조 씨에 대해 입학취소 처분을 내릴 경우 조 씨는 행정심판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남대 로스쿨 A씨의 사례 등을 참조하면 조 씨에 대한 입학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시각이다. 부정입학 사실을 알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채 상당한 시일이 지나도록 내버려 둔 부산대 측의 잘못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지적한 자유법치센터 대표 장달영 변호사는 “부산대가 조 씨에 대해 마지못해 입학취소 처분을 하더라도 실제 소송에서 그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며 “지연된 정의(正義)는 정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 변호사는 “교육부와 부산대가 해당 판결 내용을 알고서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하면 조 씨에 대한 입학 취소를 안 하는 방향으로, 설사 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끄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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