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을 표방해온 문재인 정부가 전대미문의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한국의 20대 청년층이 최대 비판세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건국 이래 20대는 진보세력의 지지층 기반이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인 현상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보수화한다는 것은 오래된 통념이다.

[리얼미터]

문재인 정권, 건국 이래 처음으로 ‘20대의 분노’에 직면한 진보정권

그러나 ‘실정(失政)의 늪’에 빠져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세대별 지지율 조사를 보면, 20대 민심이 가장 싸늘하다. 청년층이 등을 돌린 진보세력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때문에 한국정치사에서 진보 세력은 종말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9일 공개된 리얼미터 3월 4주차 주간집계(YTN 의뢰)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는 62.5%에 달했다. 긍정평가는 34.4%에 그쳤다. 이 같은 몰락을 초래한 최대 변수는 20대의 이탈이다. 20대의 긍정평가는 30.2%에 그쳤다. 전 연령대 중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장 보권선거 지지율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대의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3배에 육박한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4일 서울 거주 18세 이상 806명에게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55.0%가 오 후보, 36.5%가 박 후보라고 대답했다. 특히 20대에서 오세훈 후보 지지율은 60.1%, 박영선 후보는 21.1%로 나타났다. (두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20대 표심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친문세력은 20대의 분노를 ‘역사의식 결핍’과 ‘게으름’ 탓으로 규정

그렇다면 20대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왜 분노하는 것일까. 친문세력의 원인분석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20대의 역사의식 결핍과 게으름 등을 화근으로 꼽는다. 한 마디로 ‘네 탓’이다.

박영선 후보는 지난 26일 "20대의 경우 40대와 50대보다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경험치가 낮아서 그런 것 같다"고 발언해 논란을 키웠다. 20대가 문재인 정권이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20대의 ‘역사의식 결핍’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문재인 정권)는 완벽한데 너희들(20대)이 부족하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박 후보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더불어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당시 설훈 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 하락 배경을 질문받고 “이 분들이 학교 교육을 받았을 때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는데,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라고 논평했다. 20대가 교육을 제대로 못받아서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주장이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지난 2018년 12월 한 출판사 주최 특강에서 20대 남성의 문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과 관련, “20대들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측면이 있다”면서 “남자들은 군대도 가야 하는데 또래집단에서 보면 여자애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밝혔다. 전혀 설득력이 없는 궤변이었다. 20대 남성들이 병역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 주장대로라면 역대 모든 정권은 낮은 20대 남성 지지율을 겪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대 남성들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남자들은 축구도 보고 온라인 롤게임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롤도 축구도 안하고 공부만 하니 모든 면에서 남자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할 것)”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선대위 뉴미디어본부장의 페이스북은 시민참여 유세 신청 창구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선대위 뉴미디어본부장의 페이스북은 시민참여 유세 신청 창구이다.

오세훈 등 야당 인사와 지지자들은 20대의 분노를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로 규정

야당 인사들은 이 같은 친문 세력의 아전인수식 인식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박 후보의 20대 폄하 발언에 대해 “절망한 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다”면서 “ ”(20대의 분노는) '역사적 경험치 부족'이 아니라 '불공정에 대한 분노'다“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상 최악의 부동산 참사와 일자리 참사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20~30대 청년들이다. 문재인 정권 실정의 최대 피해자이자,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높은 20~30대 청년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야당 지지자들도 같은 입장이다. 지난 28일 오세훈 후보의 코엑스 앞 광장에서 개최된 유세현장에서도 오 후보 지지세가 뚜렷한 20대와 30대 청년 유권자들이 유세차에 올라 여권을 향한 비판을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21학번이라는 손준하씨는 “이 선거가 왜 열리게 됐는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며 “성추문을 일으킨 정당이 어디인가? 당헌을 개정하면서 후보를 내는 당이 어디 있나?”라고 되물었다. 손씨는 “이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선거에서 결코 1번을 찍지 못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취업준비생이라고 밝힌 20대 양준우씨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한 뒤 “문재인 정권 4년의 결과, 그게 바로 20대가 기호 1번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2030 세대의 유세 동참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유세 차량에 2030 청년들을 연사로 올려 발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2030 시민참여유세'다. 발언 기회를 받은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분노를 가감없이 표출했다.

AOA 출신 권민아가 드러낸 20대 분노의 실체, ‘만연한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이 원인

여성 아이돌그룹 AOA 출신 권민아(28) 씨가 최근 연이어 정부 여당을 향해 쏟아낸 비판 속에 ‘20대 분노의 실체’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씨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자행되온 ‘불공정성’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은 진보정권이 아니다. 양극화와 불공정성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집단이익을 추구한, 역사퇴행적 정치집단에 불과하다.

권씨는 지난 28일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과 위안부 기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정조준했다.

권씨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1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조두순 관련 기사 포털사이트 댓글을 캡쳐한 사진을 올리고 “조두순이 출소해서 국민들 세금으로 생활하는 것과 피해자의 두려움, 윤미향 국회의원. 자리에 있으신 게, 그리고 기타 등등 모든 게 마땅하고 잘 이해가 되시나”라고 적었다. 조두순에 대한 정부의 과잉보호와 ‘위안부 장사’의혹이 드러난 더불어민주당 윤 의원의 비례대표 의원직 유지등이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권씨는 전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국민들이 아무리 열을 내어도 이 나라가 지금은 신경 하나 안 쓸테니 흘러가는대로 사는 수밖에. 다들 살기 힘든 나라지만 열내지 마시고 그냥 힘내세요. 지나면 많이 바뀌고 회복되겠지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 친정부 성향인 네티즌이 비난 댓글을 달자, 조두순과 윤미향을 거론하며 반박에 나선 것이다.

지난 28일 권민아씨는 자신의 SNS에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과 위안부 기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정조준했다. [권민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28일 권민아씨는 자신의 SNS에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과 위안부 기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정조준했다. [권민아 인스타그램 캡처]

권씨는 반박 글에서 친문세력의 댓글 테러에 대한 두려움도 드러냈다. 권씨는 “저는 너무 황당하고 이런 상황들이 마땅하다 생각지 않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생각과 표현. 저도 자유를 누린 거다”라며 “제 생각을 너무 공개적으로 표현했다고들 하니 무서워서 자유도 못 누리겠다”고 했다. 이어 “여러분들 말대로 생각 표현은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비공개로만 쓸게요. 대신 당신들도 꼭 그렇게 하시길”이라고 적었다.

권씨의 이런 의견에 지지 댓글이 잇달았다. “민아 말이 백번 천번 옳다” “권민아를 국회로” “하나 틀린 말이 없다” “언니 제대로 말 잘 하시네요”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권씨는 이달 초에도 인스타그램에 “집값도 너무 오르고,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집값을 올려가지고. 우리나라는 잘 돌아가는 건가요”라며 “(코로나) 백신 맞아야 되는데, 백신 맞고 잘못되는 경우가 많아서 무서워서 맞지 못했다. 대통령(이 백신을) 맞으면 맞겠다”는 글을 써 극성 친여 지지자들의 집단 공격에 시달린 바 있다.

권씨는 지난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과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만나 셀카를 찍었다. 그 당시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AOA 그룹을 알아봐줘서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권씨가 문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공개 저격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권민아 씨는 지난 2017년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셀카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권민아 인스타그램 캡처]
권민아 씨는 지난 2017년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셀카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권민아 인스타그램 캡처]

그러던 권씨가 집중적으로 문 대통령 비판에 나선 계기는 명료하다. 지난 7일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 권씨는 "대통령이 집값을 너무 올려놨다"라며 "우리나라는 지금 잘 돌아가는 건가"라는 비판을 했다.

그러면서 "공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말"이라며 "과거 한참 정치에 관심이 생겨 기사를 많이 봤다. 국민들이 분노해 적은 댓글들도 봤고, 나도 공감했다"고 말했다.

즉 권씨의 분노는 문 대통령이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집값에서 시작됐다. 그 분노는 조두순에 대한 과잉보호, 윤미향의 뻔뻔함 등을 향해 확산되고 있다. 또 이 같은 분노를 억압하려는 친문 세력의 행태에 대해서도 분노한 것이다. 이러한 권씨의 분노는 20대 민심의 현주소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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