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여성계와 대깨문의 결투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정치 사기꾼'이다. 양립할 수 없는 세력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 작태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계와 대깨문은 자신의 신실한 신념을 서로에 대한 '가열찬 투쟁'을 통해 보여주길 바란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박원순은 누구보다 성평등을 강조해왔던 남성 정치인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눈물을 흘렸으며, 스스로를 '여성'으로 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위선(僞善)이 만천하에 드러날 처지에 놓였다. 박원순은 비서에게 “이 파고를 못 넘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북악산을 올랐다.

만일, 박원순이 아닌, 다른 정치인이 이같은 사건을 일으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법적 절차를 떠나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었을 것이다. 예컨대 안희정 전(前) 충청남도지사,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와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됐을 가능성이 높다. 즉, 제명(除名)이다.

그러나 박원순 사건에서 민주당의 일 처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민주당은 우선 7월14일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여기서 재발방지 대책으로 고위 공직자의 젠더교육도 강화를 들고 나왔다. 성 비위 사건은 박원순과 오거돈이 일으켰는데, 죄인 취급은 공직자가 받으라는 식이었다.

민주당은 나아가 자당(自黨)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성인지감수성 강화 교육, 당직자 성평등 교육의 연(年) 1회 이상 의무화, 성폭력 가해자 또는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공천에서 원천 배제, 국회의원 보좌진 직급별 여성 채용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러 기관의 젠더교육은 여성계 '꿀알바'(짭짤한 돈벌이 수단)다. 여기에 '여성채용'을 깨알처럼 포함시켜 놨다. 여성계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가해자 박원순과 오거돈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 빈자리를 자기 밥그릇으로 채웠다.

민주당 여성의원 개개인의 발언 내용은 더 문제였다. 권인숙은 사죄의 의미로 민주당에서 여성 서울시장후보를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남인순은 민주당 지도부가 여성 최고위원 비율을 30%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위원 30%를 여성으로 할당할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원순의 성추행과 여성후보, 여성할당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나. 유일한 상관관계는 성 비위 사건을 권력 확대의 기회로 삼겠다는 여성 정치인들의 욕망뿐이었다. 스스로 외쳤던 페미니즘 원칙을 어기면서, 다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권력을 추구한 것이다.

여성계의 이같은 이율배반은 오랫동안 내부적으로 곪아온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의 '미투(#MeToo) 운동'은 2018년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그러나 좌파 내부에서 기같은 움직임은 이전부터 길게 지속돼 왔다.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좌파 진영 내부 성범죄에 대한 폭로는 여러가지 의도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지탄받아야 할 성범죄 사건도 물론 있었지만, 상대 정파를 제압하려고 성문제를 끌어들이는 정치적 술책이라든지 개인적 원한, 인정투쟁 욕구의 발로에 기인한 폭로 등, 좌파 진영에서 터져나온 성범죄 폭로들이 반드시 순수한 의도에서 이뤄졌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 않은가. 또한 문제가 터진 이후 정파에 따라 공론화와 처벌 수위가 달라진 적도 있었다.

좌파 단체 내부에서 성범죄 고백이 정치적으로 변질된 이유는 성범죄 이슈가 갖는 파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성폭력 가해자로 특정되면 정치생명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2차 가해, 백래시(backlash,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라는 뜻의 페미니즘 용어), 피해자중심주의의 엄포 앞에 어떠한 항변도 멈출 수밖에 없다. 가치판단을 떠나 성 문제는 정파투쟁의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소재 모 호텔에서 열린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범죄 피해 여성의 기자회견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소재 모 호텔에서 열린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범죄 피해 여성의 기자회견 모습.(사진=연합뉴스)

최근 회자된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는 좌파 내부에서 개발된 용어다. 이것은 좌파 스스로 미투의 정치적 위험을 인식한 결과물이다. 성범죄 피해를 알린 사람은 우선 '피해호소인'으로, 피해사실이 인정되면 '피해자'로 특정됐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장치를 좌파 내부에만 적용하고 있었을 뿐, 공론화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박원순 사건은 성범죄 의혹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고무줄 잣대로 재단해 온 좌파의 고질병이 공론장으로 올라온 계기였다. 우선 여성단체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백래시와 같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내려놓았다. 몇몇은, '피해호소인'이라는, 자신들의 알량한 발명품으로 박원순을 가려주고자 했다. 나아가 성폭력 사건을 빌미로 자리와 예산을 요구했다. 앞서 보았듯이 민주당 여성정치인이 이를 주도했다.

여성계 입장에서 박원순은 정치적 '키다리 아저씨'였다. 이들은 서울시장 박원순으로부터 권력과 돈을 수급받았다. 따라서 박 시장을 날서게 비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자리와 예산을 보장받기 위한 명분은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포기하면 차후에 정치적 이익이 반감될 위험이 있었다. 말하자면 딜레마에 처한 셈이었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박원순을 옹호하느냐, 겉으로나마 페미니즘의 제스처를 취하느냐 사이에서 정치적 곡예를 타기 시작했다. 일단 입으로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손으로는 여성계로 돌아갈 자리와 예산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인순, 진선미, 고민정은 박영선 서울시장 캠프에 제 발로 들어갔다. 윤미향도 박영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80년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핏발선 눈으로 비판하면서 지금 당장 위력에 의한 성추행 문제 앞에서는 눈을 감았다. 남인순은 여성의 날에 "여성인권은 우리 모두의 인권입니다"라는 현수막을 자신의 지역구 곳곳에 걸었다. 둘 다 '입페미'(실로는 실천하지 않으면서 떠들기만 하는 페미니스트)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이들은 입으로는 페미니스트지만, 손발로는 '흉자'(남성의 편에 선 여성을 말하는 페미니즘 용어), '명자'('명예남성'의 약어. 여성이지만 스스로를 남성의 지위에 올려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페미니즘 용어) 노릇을 했던 것이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처신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를 위로하고 싶다면서 '피해호소인' 발언으로 유명한 고민정 의원을 캠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안철수 후보가 '피해호소인 3인방'(남인순·진선미·고민정)을 캠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하자, 박영선 후보는 "쫓아내"라는 표현을 문제삼아 "남성 우위 가부장적, 여성비하 발언"이라고 응수했다. 페미니즘의 언어로 '백래시'를 한 것이다. 급기야 고 대변인이 사퇴하자 "통증이 훅 가슴 한쪽을 뚫고 지나간다"며 자아도취적 감성 충만한 글을 쓰기도 했다.

박원순 사건에 대한 여성계의 태도는 상당히 미온적이다. 예컨대 소위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 남성에게 입장을 묻겠다는 해시태그를 달며,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N번방'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대다수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던가? 박원순, 오거돈 뿐만 아니라 아내를 골프채로 때려죽이거나, 행사에서 만난 여성을 성추행한 기초의원들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야말로 성범죄의 산실인 민주당을 향해 여성계가 한번이라도 비토를 놓았던 적이 있었냐는 질문이다.

여성단체는 결국 자기 편 권력자의 성범죄에는 눈을 감아주고, 성범죄를 예방한답시고 남성일반을 규율과 계도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를 위해 자리와 예산을 받아 권력을 쌓아가는 집단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사진=연합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성계는 또 하나의 악재를 만났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가 박원순 사건을 재구성한 《비극의 탄생》이다. 책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하나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며 박원순의 억울함에 공감한다. 다른 하나는 책을 '2차 가해'로 평가한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입장이다. 첫째, 미투운동에 비판적이라 할지라도 폭력을 가리키는 명백한 증거는 인정해야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실로 인정한 부분만 보자. 박 시장이 피해 여성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들 가운데에는 "너네 집에 갈까", "혼자 있냐", "향기 좋아, 킁킁" 등 민망한 내용들이 다수 있었고, 박 시장은 심지어 속옷 차림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을 피해 여성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건 성추행이 맞는다. 똑같은 행동을 우리 회사 김 부장이, 우리 대학 박 교수가, 우리 동네 최 씨 아저씨가 했다고 해도 성추행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박원순은 피소 사실을 인지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둘째, '대깨문'의 전형적 서사를 갖고 있다. 이들은,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너희 편 잘못은 확증편향, 우리 편 잘못은 불가지론'이라는 식의 인식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탄압으로 조작하여 언더도그마를 선점한 후, 죄인을 핍박받는 성자로 바꿔치기한다. '대깨문'들에게 조국, 윤미향, 한명숙, 박원순은 동일한 서사의 반복이다.

조기숙 교수는 《비극의 탄생》 추천사에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회의(懷疑·의심을 품는 일)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회의는 중요하다. 문제는 회의의 방식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위해 '방법론적 회의'를 했다. 반면 우리의 수많은 '대깨르트'는 확실한 방어를 위해 '목적론적 회의'를 하는 중이다.

이들은 '억울한 박원순'이라는 결론을 전제한 다음 사실을 해석한다. 예컨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의 맥락을 보라고 말한다. 도대체 그 맥락이 뭘까. 피해자가 박 시장에게 모종의 '여지'를 주었다는 뜻 아니겠나. 또한 피해자가 서울시 직원에게 지난해 4월 성폭행을 당한 이후 그 처리 과정에 불만을 품었다고 강조한다. 목적론적 회의론자의 뇌내 망상 속에서 성추행 사건은 '복수를 위한 치정극'으로 자가발전했다.

이같은 목적론적 회의는 김어준, 김용민 등 친문(親文) 스피커를 통해 공론장에서 퍼지고 있으며 그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여권(與圈) 지지자가 피해자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까지 했다.

여성계는 미투운동 이후 줄기차게 '백래시'와 '2차 가해'를 경고해왔다. 바로 지금이 그 반동(反動·백래시)의 순간이 아닌가. 그럼에도 여성계 상당수, 특히 민주당 여성정치인들은 이 현상을 침묵한다.

지금 사태의 본질은 '여성'을 팔아먹는 여성계와 음모를 팔아먹는 언론계의 마주침이다. 박원순 사건은 오랫동안 곪아온 여성계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노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언론이 증폭시킨 대깨문의 우악스러운 음모론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이제 여성계와 대깨문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어야 한다. 여성계는 백래시를 일삼고 있는 대깨문과 민주당내 '흉자'와 '명자', 그리고 '한남('한국남자'의 약. 남성을 비하해 일컫는 페미니즘 용어) 본거지' 민주당을 심판해 페미니즘의 대의를 드높여야한다. 반면 대깨문은 감히 박시장의 명예를 욕보인 여성계를 징치해야 한다. '페미니즘이냐, 민주당이냐'라는 질문 앞에 여성계는 페미니즘을, 대깨문은 민주당을 택할 수밖에 없다.

혹시 여성계와 대깨문의 결투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정치 사기꾼'이다. 양립할 수 없는 세력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 작태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계와 대깨문은 자신의 신실한 신념을 서로에 대한 '가열찬 투쟁'을 통해 보여주길 바란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싸워라!”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