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 심각성 정치권만 모르나
통일부 친북기조 속 여야 재단출범 노력도 견제도 '깜깜'

2016년 3월 여야 합의로 11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2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북한인권증진 기능을 수행할 법정 필수기관인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오리무중이다.

2017년 한 해 '김정남 독살'과 '오청성 귀순 및 기생충 파문' 등 북한 인권 참상을 보여줄 대사건이 잇따랐고 최근 3년간 귀순 인원과 빈도 모두 크게 늘었음에도, 국가 차원의 북한인권증진 활동은 여전히 제동이 걸려 있다. 재단 이사진 구성을 둘러싼 여야 대립에서 진전이 없는 탓에, 민간 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에서 북한인권증진 활동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의 제1 원인은 정치권의 '상식의 영역을 넘어선' 무관심과 요지부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현 집권여당은 법안 제정 과정에서부터 북한인권 가해 사례 기록과 처벌에 이른바 '프로 불편러' 기질을 보였으며, 야당 시절 재단 이사진 12명 중 상근이사(2명) 1명 몫을 요구하면서 시간을 끈 바 있다. 제19대 대선 공약으로 재단 '조기 출범'을 공약(公約)했으나 집권 이후 공약(空約)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2018년도 예산안에 북한인권재단 관련 예산도 편성하지 않았고, 북한을 옆집 드나들듯한 좌파 인사 일색으로 이른바 정책혁신위원회를 꾸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5·24 조치와 개성공단 중단 당위성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해 도마위에 올랐다.

북핵 위기와 체제붕괴 가능성이 동시에 고조되는 시점에 북한인권법 '종주자'격인 보수야당도 재단 출범을 위한 실질적 행동이나 여론전조차 나서지 않아 책임이 적지 않다. 특히 북한인권법 소관 국회 상임위인 외교통일위 위원들조차 제대로 된 문제제기에 나선 바가 없다. 내부에서는 "차라리 욕을 해달라"는 자조마저 나오고 있다.

●북한 인권 참상 보여줄 이슈 연발…北 붕괴 가능성도 고조

국회 국방위 소속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귀순 현황(2017년 12월21일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군·주민 귀순 건수는 9건으로 2016년 3건의 3배다. 귀순 인원도 5명(군인 1·주민 4)에서 15명(군인 4·주민 11)으로 3배로 늘었다. 2015년에는 총 5건의 귀순 사건이 있었고 주민 7명과 군인 2명이 자유를 찾아 남하했다.

올해 귀순 사건 중 11월13일 오청성씨가 총격까지 감수하고 JSA를 통해 귀순, 포복을 통해 접근한 국군이 이를 구조하는 '영화같은 탈출극'이 가장 큰 조명을 받았다. JSA 귀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국군의 대처능력 등을 둘러싼 논란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특히 총격으로 빈사상태에 이르렀던 오씨를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집도의를 맡아 기적적으로 살려내는 과정에서, 소화기관 내 대량의 기생충이 발견돼 관심도는 폭증했다. 오씨의 건강을 좀먹던 기생충 발견 공개를 두고 군사전문가를 자처하는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인격 테러"로 규정하며 '북한과 대한민국이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폈다가, 이 교수에 대한 상식 이하의 공세라는 공분과 함께 종북 의혹을 사는 파문이 일었다.

아주대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오씨는 12월15일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된 뒤 귀순 의사를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는  12월20일 북한 남성 2명이 동해상으로 귀순했고, 21일 중서부 전선 최전방 감시초소에서 북한군 1명이 추가 귀순해 북한 인권참상을 가늠할 더욱 확실한 계기가 됐다.

합참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귀순자는 모두 '북한에 대한 체제 불만과 한국사회 동경'을 귀순 동기로 밝혔다. 2015년 이전에는 '생활고'를 배경으로 꼽은 귀순자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귀순 연령대도 최근 3년간, 확인을 마친 24명 중 10대(2명)와 20대(13명)가 15명에 달한다. 특히 20대 귀순자는 2017년에만 9명으로 15·16년 각각 2명씩 귀순한 것에 비해 급증했다. 북한 내 한국에 대한 정보 습득이 전보다 늘고 다양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선군정치 유지를 위한 '공포정치' 강화도 탈북·귀순 증가세를 견인하는 변수로 지목된다. 김정은은 지난 2013년 12월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포 총살하고, 2015년 5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같은 수단으로 처형하는 등 끔찍한 내부 숙청을 벌였다. 자신의 이복형인 김정남마저 암살을 지시해, 2017년 2월13일 백주대낮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VX 신경작용제 화학가스로 살해했다. 199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대량살상무기(WMD)로 분류된 VX를 사용, '공개 테러'나 다름없는 이 사건은 전 세계적에 충격을 안겼다.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은 북한 측 추적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지난해 9월 6차에 이른 핵실험 반복으로 주민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의심되는 '귀신병'을 앓고 있는 것도 또다른 인권 참상으로 거론된다. 사실상 정부 차원의 규탄도 대책 마련도 없는 현실이다. 북한인권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려는 움직임은 민간 단체 수준에 그치고 있다. NKDB는 지난해 9월 600쪽이 넘는 '2017년 북한인권백서'를 발간, 2002년부터 탈북민 1만597명을 조사해 1인당 6건의 인권 유린 사례를 겪었다고 고발했다.

●"재단 상근이사 달라" 공수교대…여야 '말로만 인권정당'?

북한인권법 12조 1항에 따르면 북한인권재단은 이사장을 포함한 12명의 이사로 구성하되 이사 2명은 통일부장관이 추천하고 나머지 10명은 집권당과 야당이 5명씩 동수로 추천하도록 돼 있다. 이사진 구성이 정치권의 발목잡기로 무기한 늦춰진 탓에, 2016년 10월부터 서울 마포구 재단 사무실 임대료만 매달 6200만원씩 연체되는 통에 건물주 측은 속만 태우고 있다고 한다.

임대료 지불 의무는 결국 정부가 지게 돼, 이로 인해 야기되는 엄청난 '세금 누수' 외에도 문제는 더 있다. 북한인권 조사·연구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지원 업무도 맡아야 할 재단 출범과 예산(2017년도 118억원 배정) 집행이 '올스탑' 되자,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은 '고사 직전'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일단 출범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사진 구성은 2016년 제정 이후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상근이사 자리 1개를 요구하며 이사 추천을 거부하면서 공전했다. 민주당은 앞서 입법 과정에서도 북한인권 기록·가해자 처벌과 무관한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도 노력' 문구를 삽입하자며, 북한인권기록센터도 원안대로 법무부가 아닌 통일부에 설치하자며 논의를 지연시킨 바 있다. 결국 두 가지를 관철시키고도 이사 추천을 수수방관하며 추가로 시간을 끈 것이다.

민주당은 2017년 5월 집권여당으로 지위가 격상된 뒤에도 이사 추천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최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여당 추천 이사 5명 명단을 통일부에 보냈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몫 2명을 이미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통일부는 '북한인권'이 없는 2018년도 예산안을 짰고, '남북협력기금' 출연금 늘리기에 골몰했다. 2017년 12월 27일에는 길주군 출신 탈북민이 1만8825명에 이르는데도, 폭발위력이 작은 1~3차 핵실험 이후 탈북민 고작 30명을 검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귀신병이) 핵실험 영향인지는 단정지을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29일에는 친북인사 일색의 정책혁신위를 앞세워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통치행위'인 5·24조치와 개성공단 중단을 부정하는 친북적 발표를 내놓는 등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2005년 당시 김문수 의원이 최초로 대표 발의하고, 2016년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려 입법을 마친 자유한국당은 무관심과 상식 밖의 '태세 전환'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2012년 '탈북자 북송 반대'를 주장하며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 천막을 치고 열흘 넘는 단식투쟁을 벌이던 박선영 당시 국회의원 만한 결기를 보이는 이가 없다.

한국당은 앞서 여당 시절 민주당의 상근이사직 요구를 일축하며 추천을 거듭 요구하면서 시간만 끌다가 '빈손'으로 정권을 내줬다. 정권교체 이후에는 북한인권 관련 국제사회 소식에 일부 반응을 보였을 뿐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 핑계를 대기에도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외통위 소속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과 정책을 일부 문제삼는 수준에 그쳤지, 북한인권재단 출범 지연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2017년 2월 여당일 때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을 채근한 게 마지막이었다. 한국당 외통위원은 재선급인 간사 윤영석 의원, 윤상현·정양석 의원을 제외하면 서청원(8선), 김무성(6선), 이주영·원유철(5선), 유기준·최경환·홍문종(4선) 등 다선 의원이 포진하고도 자리만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야당에게 상근이사 1명 몫을 달라'던 민주당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기행까지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한국당 외통위원 측 관계자는 당내에서 이런 이야기가 2017년 8~9월 무렵 나왔다고 PenN 기자에게 전한 뒤 "일단 (재단을) 발족시켜야 뭘 하든 하지 않느냐"며 "우리가 욕했던 것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상임위 차원의 '무관심' 지적을 거듭하면서 "우릴 욕좀 해달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 체제가 안착한 뒤 신(新)보수주의 이념 노선을 천명하면서도 북한인권증진 대책에 중대한 관심을 보이는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대북원칙론과 북한인권을 무기 삼아온 정당답지 않은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입법 과정에서도 북한주민 '지원'을 강조하던 민주당이 여당이 된 채 출범하면 북한인권재단 운영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일단 발족해야 감시 대상이라도 될 수 있다. 올해 2월 평창올림픽과 6월 지방선거라는 대형 관심사에 묻혀 북한인권 문제가 사장되는 것을 정치권이 수수방관한다면, 인권법을 제정해놓고 스스로 발목잡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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