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수도권 3기 신도시 땅 투기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조롱했던 LH 직원의 실체는 끝내 밝히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직원은 “아니꼬우면 이직하라”, “열폭해라, 우린 계속 차명으로 투기할 것” 등의 글을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려 더 큰 분노를 일으켰다.

흉흉한 여론을 의식한 경찰은 지난 17일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한국지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려고 출동했으나, 사무실을 찾지 못해 실패하는 ‘희대의 촌극’을 벌였다.

경찰이 사무실 못 찾는 ‘희대의 촌극’ 벌여...경찰의 블라인드 압수수색 ‘포기’ 관측 많아

한국 경찰이 사무실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검경수사권 분리 정책으로 사실상 수사권을 독점하게 된 경찰이 공교롭게도 ‘부끄러운 실패’를 선보인 것이다.

경찰은 뒤늦게 블라인드 한국지사 사무실 위치를 파악해 다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겠다고는 입장을 밝혔으나 22일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블라인드 사무실을 뒤져봐야 LH 직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 블라인드 압수수색을 포기한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찰의 부끄러운 실패가 보도된 직후부터 블라인드에는 “블라인드 털리면 탈퇴할 것임”, “경찰에게 털릴까 봐 주식인증 글은 삭제했음” 등과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다른 기업 재직자들은 “LH 잠잠해졌네, 다닐만 하겠어 ㅎ”, “알자나 한국 냄비” 등의 반응도 보인다. 경찰이 블라인드 사무실 압수수색을 포기했다고 단정하는 분위기이다.

검경수사권 분리이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첫 사건 수사에서 경찰이 제대로 헛발질을 했다는 오명을 벗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블라인드 사무실 번지수 잘못 찾은 사건’은 앞으로 경찰이 수사력 빈곤을 드러낼 때마다 단골메뉴로 따라다니는 오명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세균 총리가 ‘블라인드 조사’ 직접 발표...결론은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출발은 준엄했다. 인터넷의 블라인드 게시판에 ‘(LH)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으로 국민적 공분을 자극할 만한 글이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진다” “LH 직원이라고 투자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아니꼬우면 이직하라”는 등 극히 비상식적인 내용이 쏟아지자, 정세균 총리가 직접 나섰다.

정 총리는 정례 언론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블라인드 조사 방침을 설명했다. 국민적 공분을 산 내용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정 총리는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용과 관련해 “공직자들의 품격을 손상시키고 국민에게 불편함을 더하는 이런 행태는 결코 용서받아서 안 된다”며 가능한 방법을 통해 조사하겠다고 했다. 계정이 도용됐다거나 거짓 신분의 글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공직자라면 어떤 형태로든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을 적극 수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LH가 블라인드 글 작성자를 경찰에 고발...경찰은 사무실 위치 확인부터 실패

이에 LH가 블라인드 글 작성자를 명예훼손과 모욕,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자, 경찰은 압수수색에 나서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17일 오후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팀블라인드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본사가 있는 관계로, 이메일을 통해 영장을 집행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은 블라인드의 한국 사무실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알아내면서 수사상의 헛점을 노출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팀블라인드 한국 사무실 현장 방문에 나섰지만 위치 확인에 실패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지사 위치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서울 강남구로 표기된 주소를 확인하고 사무실이 현존하는지 확인하고자 현장을 찾았다"면서 "확인 결과 사무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허탕을 치는 동안 2km 떨어진 한국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근무 중이었다. 경찰은 이를 뒤늦게 알고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실제 팀블라인드의 한국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이미 직원들은 퇴근한 뒤였다. 경찰 관계자는 "내일 다시 압수수색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관련 소식은 없다.

[사진=블라인드 캡처]

IT전문가들, “블라인드 글 작성자 파악 불가능”...경찰은 애초부터 ‘보여주기 행사’ 기획?

블라인드 운영사 측은 익명 앱의 특성상, IP주소를 포함해 게시물 작성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시스템 내부에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에 전달할 정보가 많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경찰은 해당 직원이 블라인드에 가입시, 회사 이메일로 주고받은 가입 인증코드 요청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론은 블라인드 압수수색에 대해 냉랭하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블라인드 글을 조사하겠다는 것도 여론을 의식한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LH라는 공기업에서 비롯된 투기 의혹이 현직 공무원과 여당의 현직 국회의원으로까지 의혹 대상자가 확대되면서 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발언이라는 비판이다.

블라인드 앱 사무실도 못 찾는 경찰이 과연 글 작성자를 파헤칠 만한 능력이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앱의 글을 누가 썼는지 밝혀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IT 전문가들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블라인드 운영사에 따르면 “블라인드 앱 계정만으로 이용자를 특정할 수 없다. 이메일 소유자의 기록 열람 등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행정권을 동원해 관련 정보를 요청해도 제공할 데이터 자체가 없다”고 한다.

경찰의 블라인드 사무실 압수수색 시도는 애초부터 ‘보여주기용 행사’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LH 직원 신원 파악해도 ‘처벌’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위배 돼

설령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글’이라는 판단만으로 자유 민주 국가에서 특정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글쓴이의 신원을 밝히는 것도 어렵고, 설사 LH 직원이 올린 글이라고 해도 총리가 윽박지르는 ‘엄벌’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총리가 나서서 게시자 색출을 지시하는 것은 정부의 과잉행정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표현 자유를 쉽게 침해하는 처사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LH도 “블라인드 운영 구조상 현직 외에 파면·해임·퇴직자의 계정이 유지될 수 있다”며 “해당 글을 포함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글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점이 문제다”라고 밝혔다.

경찰이 LH 사태에 대한 조롱글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과 동시에 수사력에 대한 불신을 부추길 상황에 놓인 셈이다. 반대로 작성자가 특정될 경우 익명성이 핵심인 블라인드의 신뢰가 흔들리게 된다는 점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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