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미 국무, 기자회견서 ‘북한 비핵화’ 3차례 언급 “우리의 목표는 명확...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정의용 장관 “‘한반도의 비핵화’ 표현이 더 올바른 표현”
전문가들 “정의용 발언은 향후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것 보여줘”

정의용 외교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부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오른쪽은 서욱 국방부 장관. 2021.3.18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부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오른쪽은 서욱 국방부 장관. 2021.3.18 [사진공동취재단]

오년 만에 재개된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후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와 ‘중국’이 빠져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입장을 미국 측이 배려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장관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북한 비핵화”를 직접적으로 세 차례나 언급했다. 반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했다. 한미 외교수장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두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한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2+2’ 회의를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미 외교, 국방 장관들은 공동성명에서 “양국 장관들은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양국 장관들은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하였다”고 명시했다. ‘북한 비핵화’란 직접적 표현이 빠진 것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설명할 때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0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쓰인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바이든 행정부 취임 후 ‘북한 비핵화’로 바뀌었다며 “의도적이며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 표현이 빠진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4차례 개최됐던 한미 2+2 회담 공동성명에는 매번 비핵화가 강조됐다. 가장 강력한 표현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고 포함됐다. 지난 16일에 열린 미일 2+2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 한미 외교국방 공동성명서 ‘북한 비핵화’ 빠져...왜?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가 빠졌지만 미국측은 기자회견장에서 ‘북한 비핵화’를 비롯해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과감하게 밝혔다. 블링컨 외교장관은 기자회견 중 세 차례나 “북한 비핵화”를 언급했다. 그는 “우리의 정책 목표는 명확하다”며 “우리는 북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으며 북한이 미국과 우리 동맹에 가하는 광범위한 위협을 줄이고 북한주민들을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바로 그 목표”라고 했다. 이어 “북한주민들은 압제적인 정권 밑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정권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인권’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대북정책 검토에 대해 “우리는 압박 옵션과 미래의 외교적 옵션 가능성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쿼드에 대해 “쿼드는 모든 이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생각이 비슷한 국가들 간의 비공식적 모임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우리는 한국과도 굉장히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이는 한미일 협력 같은 역내 그룹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이런 것들이 굉장히 큰 혜택을 가져온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신기술이든 팬데믹이든 이런 다양한 겻들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어느 한 국가가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서로 간 협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쿼드와 아세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정의용 장관은 “한국은 이미 핵무기를 포기했고,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면 북한도 우리와 같이 비핵화하자는 뜻”이라며 “(북한의 비핵화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이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한미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지난 3년 간 한미는 북한에 계속 관여하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을 압박하며 외교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블링컨 장관과의 발언과 달리 외교로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 장관은 “우리 정부는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북접촉 노력을 계속 지지하고 북미 간 비핵화 노력 협상이 조속히 재개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 정의용, 미국의 쿼드 동참 요청 사실상 거부

정 장관은 쿼드 관련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번 협의에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만 신남방정책이 미국의 인태(인도태평양) 전략과 어떻게 공조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협의를 했다”며 “우리정부는 포용성, 개방성, 투명성 또 우리의 협력 원칙에 부합한다면, 우리의 국익에 맞는다면, 지역 글로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면 어떠한 협의체와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강조하며 쿼드 참여에 거리를 뒀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작권 전환 조건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했으나, 오스틴 장관은 “(전작권 전환) 조건들을 충족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오스틴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미국과 한국은 계속해서 강력한 연합 방위태세를 유지하고 있고 한반도의 비핵화에도 의지를 갖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한미 간 이견은 전혀 없다”며 그간의 관행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을 사용했다.

정 장관이 기자회견에 언급한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는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영문 표기를 우리식으로 부른 것이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지역에서 모든 핵위협 요소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북한이 위협으로 간주하는 한미동맹, 주한미군, 미국의 핵우산을 한반도에서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 미 전문가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는 다른 개념...한미 간 비핵화 정의와 내용 달라”

미 국무부는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란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북한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18일(현지시간) 정의용 장관의 발언에 대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논평 요청에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새로운 것은 아니며 여러 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나와있는 것처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불법이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대변인실은 “북한의 불법적인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그리고 이 기술들을 확산하려는 북한정권의 의지는 국제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고 지구적 비확산체계를 훼손한다”고 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이날 RFA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다른 개념이라며 정의용 장관의 발언은 미국과 한국이 비핵화의 범위와 내용에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리비서 전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자주 분명히 밝힌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위협으로 간주하는 한미동맹, 주한미군, 미국의 핵우산을 없애는 것”이라며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북한이 선호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측과 달리 최근 ‘북한 비핵화’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이는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정책분석관을 지낸 수김 미 랜드연구소 분석관은 이날 RFA에 정의용 장관의 발언은 북한문제와 관련해 비핵화 정의와 우선순위에서 한미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고 평가했다. 김 분석관은 “정 장관의 발언이 미국 외교국방장관이 한국을 첫 공시방문한 때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것을 보여준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의 이 입장을 수용하던지 아니면 이번에 확연히 드러난 차이를 거부하던지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는 이번 공동성명에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입장을 완전히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미 장관은 “한미간 완전히 조유된 대북전략 아래 다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와 관련해선 고위급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 블링컨, “중국의 반민주주의적 행동에 대항해야” vs. 정의용 “미중 간 선택할 수 없다”

이날 공동성명에는 ‘중국’이란 단어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불안정하게 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간다”고 했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블링컨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또한 중국에 대한 논의도 가졌다”며 “우리는 중국이 약속을 일관되게 어겨 왔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며 중국의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 안보 및 번영에 어떤 어려움을 낳고 있는지 논의했다”고 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버마에서는 군부가 민주세력을 짓밟아서 민주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기일수록 중국의 반민주주의적 행동에 대항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해 ‘약속을 일관되게 어기’며 ‘공격적이고 권위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동참을 촉구한 것이다.

정의용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해 별다른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 장관은 이후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라며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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