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둘러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지리멸렬하던 야권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조짐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발언권이 약화되고, 두 후보의 리더십이 강화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야권 지도자들이 다시 발언권을 행사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① 후보등록 전 단일화 실패하며 오세훈과 안철수 리더십 강화돼

안철수 후보가 18일 오세훈 후보 측의 여론조사 방식을 전격 수용하면서 후보 단일화 협상이 재개되었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두 당은 각자 후보 등록을 한 뒤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전해지자, 국민의힘 일부 전·현직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야권 단일화 협상 난항에 대해 당의 책임을 지적하며 ‘단일화 걸림돌이 되어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주장했다.

후보등록전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불똥이 김종인 위원장에게 튄 것이다. 야권을 좌지우지하던 김종인 책임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급박해진 범야권 내에서는 이제 오세훈과 안철수가 주도권을 갖고 반드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실무협상단이 이날 오전 협상 결렬을 선언했지만, 이날 오후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은 것만 봐도 그렇다. 오전 협상 결렬 직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앞서 오세훈 후보는 여론조사 기관 2곳 가운데 한 곳은 '적합도'를 묻고, 다른 곳은 '경쟁력'을 물어 단순 합산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를 안철수 후보가 받은 것이다.

오세훈 후보는 이날 오전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여론조사기관을 두 개 선정해 한 기관은 적합도로, 다른 기관은 경쟁력으로 설문한 뒤, 둘을 합산하자”고 제안했다.

안 후보는 오 후보의 제안을 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촉박하겠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협상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오 후보도 환영의 뜻을 밝히며 “이제 협상단은 조속히 협상을 재개하고, 세부방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또 "국민의 단일화 염원에 부응하자"며 "단일후보 등록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② 새로운 단일화 데드라인은 29일...”투표용지 인쇄 전까지 단일화하라“

서울시장 후보 등록 마감 시한은 19일 오후 6시이다. 19일 오후까지 극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게 되면, 단일 후보만 등록한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했다. 18일 오후에 양 당의 협상팀이 각자 후보 등록을 한 뒤 협상을 재개하기로 밝힘에 따라, 투표 용지가 인쇄되는 29일로 단일화 협상 데드라인이 연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까지 단일화에 실패하면 투표용지에는 ‘1번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2번 국민의힘 오세훈’ ‘4번 국민의당 안철수’ 등 세 칸이 만들어진다. 만약 29일 전에 야권의 두 후보 중 한 명이 사퇴하면, 해당 후보의 기표란에 붉은색으로 ‘사퇴’가 명시된다.

최종 협상이 결렬된 요인은 ‘유선전화 포함 여부’로 알려진다. 오 후보는 유·무선전화로 '경쟁력 또는 적합도'를 물어야 한다는 반면, 안 후보는 ‘유선전화 포함’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선전화 100%로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적합도와 경쟁력을 따로 조사해서 산술평균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데도 안 후보가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다. 그에 반해 국민의힘이 유선전화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자체 경선에서도 유선전화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고, 안철수-금태섭 후보 경선과정에서도 무선전화를 이용한 여론조사만 했다”라며, 국민의힘 측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유선전화 여론조사 방식은 보수‧ 고령층을 지지층으로 하는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반면, 무선전화 방식은 중도‧ 장년층의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주로 무선전화를 이용한 방식으로 여론조사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후보 단일화가 결렬됐다는 보도에 시민들의 분노가 잇달았다. “단일화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다” “요즘 유선전화 쓰는 집이 어디 있냐?” “결국 박영선만 좋게 됐네” “유선전화를 주장하는 국민의힘은 역시 국민의짐이다”라는 비난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두 후보가 각자 등록을 하면서 서울시장 선거 자체가 안갯속을 걷게 됐다”고 주장했다. 등록을 따로 하는 경우, 아무래도 사표(死票)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사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29일 투표용지 인쇄 전까지는 후보 단일화가 마무리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③ 은인자중하던 김무성, 이재오, 김문수의 김종인 공격 본격화

18일 오전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지자,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마포포럼)'의 공동대표인 김무성 전 의원과 폭정종식비상시국연대의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야권 인사들이 18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야권 후보 단일화는 시대적 소명이다. 우리는 단일화가 무산된 데 심각한 분노를 느낀다"며 이같이 밝혔다. 야권의 전현직 의원들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즉각 사퇴와 함께, “안철수-오세훈 두 후보는 직접 만나 단일화에 합의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발표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 협상 문항을 오후 3시까지 합의하면, 바로 여론조사에 들어가서 19일 오전까지 하면 후보 등록 마감 전까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들이 데드라인으로 잡은 18일 오후 3시를 지나면서, 결국 최종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김무성 전 의원은 "당장 만나서 두 후보가 결단을 내야 한다. 이걸로 다시 실무 협상을 한다는 건 또 다른 방해꾼이 등장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이라 확신한다"며 "당장 두 후보가 만나 합의하고 여론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실패하면 결국 안 될 일"이라고 짚었다.

④ 안철수 조롱했던 김종인 위원장 정치적으로 궁지 몰려?

단일화 불필요론을 제기하면서 안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했던 김종인 위원장이 궁지에 몰린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재오 전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 사퇴를 주장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의 언행이 단일화를 방해한다"며 "야권 후보를 존중해야지 자기 당 후보 아니더라도 '정신 이상한 것 같다' 이렇게 후보를 비난하면 안 된다. 계속 방해할 것 같으면 그만두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18일 오전 오세훈 후보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회동했으나, 빈손으로 헤어졌다”고 한다. 오 후보가 김 위원장을 만난 시점은 ‘안 후보가 오 후보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기 전’이다. 오 후보가 야권 단일화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단일화를 막고 있는 주역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무성, 김문수, 이재오 전 의원들의 기자회견 자체를 야권 정계 개편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비박의 좌장격인 김무성 전 의원과 친이계의 대표주자인 이재오 전 의원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하에서 은인자중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숨고르기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그들에게 ‘야권 단일화 결렬’은 좋은 명분이 되어 주었다. 야권 단일화 결렬의 책임을 김 위원장에게 돌림과 동시에, 그동안 억눌렸던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김무성, 김문수, 이재오 전 의원의 주장은 "19일 이후의 단일화 협상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야권 구성원들은 후보 단일화에 방해되는 어떤 상호비방과 인신공격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의 격한 목소리가 김종인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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