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이 아니라 투기의 온상으로 지목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해체 수준의 조직개편 논의가 15일부터 본격화된다.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전면적 수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LH라는 조직 자체도 존폐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국무조정실 등 정부 관련부처는 15일부터 LH 사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공식 논의에 착수한다. 직원들의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지대책과 함께 비대해진 LH 조직을 3, 4개 조직으로 분리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권, LH사태 수습 실패하면 ‘정권 붕괴’ 수준 재앙 맞아

모든 권한이 LH에 집중됨으로써 ‘공룡 권력’으로 성장한 게 직원들을 투기꾼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정부 일각에서 강력하게 제기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1차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LH에 대해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하는 혁신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총리의 발언이 일과성 압박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만큼 국민적 공분은 거대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로 민심은 여권 전체로부터 급격히 이탈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LH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정권 붕괴 수준의 재앙을 피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가 통합되어 출범한 조직이다. 부동산 공급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LH 출범 전에는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토지공사가 공공택지 선정을, 주택공사는 택지 조성 및 주택건설을,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이 토지 보상 업무를 각각 전담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중복업무 등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통폐합조직인 LH 를 만들었다.

LH 분리 포함해 3가지 조직개혁 방안 거론돼

LH는 이제 출범 12년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과거로의 회귀이다. LH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다시 쪼개고 보상업무는 한국부동산원 등과 같은 제3의 기관이 보유하는 것이다. 택지공급을 담당하는 토지공사와 주택건설을 담당하는 주택공사, 보상과 관련된 한국부동산원(한국감정원이 전신) 의 3개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살려 중복업무를 최소화하면서 3개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둘째,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도시재생사업을 전담하는 공사,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주택관리공단의 승격 등과 같이 4개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셋째, LH를 축소 유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LH가 컨트롤타워를 맡고, 개별 사업에서는 지자체나 지방 공기업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LH는 핵심 기능인 신규택지 공급이나 신도시 등 토지개발의 총괄 업무를 수행하지만, 지역 개발은 해당 사업을 잘 아는 지방 공기업 등에 주도적으로 맡기자는 구상이다.

3가지 조직개혁 방안은 LH사태의 핵심 문제점 간과?

하지만 이 같은 방안들은 이번 LH 직원 투기 사태를 촉발시킨 핵심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 않다. 소위 택지 선정과 보상을 담당하는 LH직원들이 투기의 유혹을 가장 크게 느끼는 분야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론되는 방안들에는 택지 선정과 보상 업무를 어떻게 분리하고 관리감독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한 흔적이 없다.

부동산 전문가들 중에는 인위적인 해체보다 철저한 부패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고 분업화를 통한 자체 개혁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가 공룡조직이 되면서 관리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고, 지방 개발공사로 기능 이관 시엔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각 사업의 분업화와 전문화를 목표로 조직을 슬림화해서 관리가 쉬운 조직으로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H 조직 개편의 변수는 또 있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및 2·4 공급대책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인 만큼, 당장 LH의 전면적 개편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 사업과 2·4 대책의 핵심 내용을 LH가 주도하는 데다, 당장 7월에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도 예정돼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를 제외하고 3기 신도시나 2·4 대책을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LH가 공급대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자칫 주거 불안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LH 해체 수준 개혁 없이 부패 척결은 구조적으로 불가능

부동산 관계자는 “LH가 컨트롤 타워를 맡고 개별 사업을 지방 공기업들이 맡는 방법은 실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LH 조직을 당장 해체하는 것보다는 부패 척결과 방지에 방점을 찍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직 해체 수준에 버금가는 개편을 통해서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는 정부의 입장이 자칫 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주택 공급을 통한 주택 가격 안정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만큼, 주택 공급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주택 공급의 중추인 LH의 대규모 조직 축소는 정책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LH 일부 직원들이 투기의혹 사태가 터진 후 익명 직장인 앱인 블라인드에 “우리는 차명으로 투기한다”고 공언할 정도로 내부의 부패구조가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분노하는 국민을 조롱할 정도로 조직문화가 도덕불감증에 걸려있는 LH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앞으로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의 걸림돌은 LH의 부패구조와 도덕불감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LH에 대한 조직개혁 없이는 어떤 재발방지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공룡 권력’ 종사자들에 의한 투기 가능성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양준서 객원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