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의 계산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전담한다는 전제 아래 검찰의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검찰로서는 일종의 ‘들러리’가 된 셈이다.

LH수사가 비리구조를 낱낱이 파헤치는 개가를 올릴 경우, 수사 주체인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수사능력을 인정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본이 검찰의 협력 덕분이라면서 공을 나누려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수본이 출범 이후 첫 과제로 받은 LH 수사를 성공시켰다는 기록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수사결과가 지리멸렬해지고 의혹만 증폭될 경우 국수본은 국민적 비판 여론을 검찰 쪽으로 돌릴 수 있다. ‘검찰 협력이 부족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구조이다.

정세균 총리, 경찰의 LH수사 실패하면 ‘검찰 협력 부족’ 탓이라고 미리 선언?

이 같은 기류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10일 발언에서 감지됐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총리 주재로 열린 긴급 관계기관 회의에서 LH수사와 관련된 검경 수사 협력 방안을 논의, 검찰을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영장 청구, 기소, 공소유지 업무만 담당한다. 검경 수사권 분리 원칙에 입각한 결론이다.

문제는 정 총리의 발언이다. 정 총리는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와 사법처리를 위해서는 수사를 맡는 경찰과 영장청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담당하는 검찰 간의 유기적인 소통과 연계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은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한 국민 인권 보호에 효과적이지만, 시행 초기인 탓에 기관 간 협조에 다소 부족함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언급, 여운을 남겼다.

국수본이 LH수사를 전담함에 있어서 검찰의 협력이 부족할 가능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LH수사가 실패하면 검찰 협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총리가 미리 선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력화된 합조단에만 검사 2명 파견... 검사가 얼씬도 못하는 특수본과 수사협력 하라고?

더욱이 검찰이 협력할 수 있는 실무창구도 협소하다. 정부는 특수본에 검사를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총리실 내 국무조정실 최창원 1차장이 주도하는 정부합동조사단(합조단)에 기존 총리실 파견 검사 1명에 부동산 전문 검사 1명을 추가 파견하는 게 전부다. 최창원 합조단장은 “검경수사권 분리 원칙에 따라 특수본에는 검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조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그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은 조직이다. 정부는 당초 합조단을 중심으로 LH조사를 하려고 했으나, LH 비리의 몸통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토교통부가 포함된 합조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거세게 제기됐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합조단 조사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특수본을 중심으로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이다. LH수사관련 정보는 특수본으로 집중되는 구조이다. 특수본이 뜬 마당에 합조단이 제대로 조사할 리는 없다.

결국 검찰은 수사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합조단에 나가서 LH수사를 협력해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죽이기는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범계 장관의 검찰 옥죄기, 수사권 없는 안산지청 방문해 격려

박범계 법무장관의 행보는 더욱 교묘하게 검찰을 옥죄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LH 의혹과 관련해 '부동산투기 수사전담팀'을 구성한 수원지검 안산지청을 격려 방문했다. 하지만 안산지청은 사실상 할 일이 없다. 정 총리 주재 회의에서 LH수사는 국수본이 전담하기로 한 마당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가하게 법리 검토를 하다가 국수본이 사건 송치를 하면 기소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국수본 수사가 부실하면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수본 수사가 부실할 경우 똥바가지를 뒤집어 쓰게 된다.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고 경찰의 보조적인 역할만 가능하다는 대원칙 아래, 검찰은 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총리는 ‘검찰 협력’을 앞다퉈 당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와중에 법무장관이 안산지청을 방문한 것은 LH수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행보였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박 장관의 안산지청 방문 자체가 부적절...‘쇼맨십’이 만들어 낸 해프닝

박 장관이 안산지청에 직접 나서서 격려하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ㆍ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을 직접 지휘할 수 없다.

1949년에 제정된 검찰청법 제8조가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장관이 직접 일선 검사를 지휘하거나 감독하지 못하고 검찰총장에게만 지시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산지청 방문의 주체는 박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되고, 검찰총장 대행을 하고 있는 조남관 대검차장이 나섰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박 장관은 안산지청에 직접 나가서 ‘격려의 형식을 빌어 수사를 지휘’하려는 모양새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쇼맨십’이 만들어낸 해프닝인 셈이다. 전날 꾸려진 안산지청의 'LH 수사전담팀'은 이곤형 형사3부장검사를 팀장으로, 소속 검사 4명과 수사관 8명으로 구성됐다.

박 장관은 “공직 부패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검찰은 그 부분에 대해 열어놓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하다가, 4급 이상의 비위 혐의가 드러나면 검찰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의 실체이다. 따라서 박 장관은 안산지청 담당 검사들에게 “경찰이 수사를 하다가 4급 이상의 비위가 나오면 그때는 좀 도와줘라”는 식의 협조를 당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박범계는 벌써부터 ‘경찰 칭찬’... 타이밍 놓친 경찰 압수수색도 ‘신속 대응’ 평가

박 장관은 벌써부터 ‘경찰 칭찬’에 여념이 없다. 9일 안산지청 방문길에 기자들과 만나 “수사 초기부터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들의 지적에 대해 "과거 1·2기 신도시 투기 때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해서 많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경찰이 오늘 압수수색도 단행했고, 매우 빠르게 잘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단행된 압수수색에 대해 ‘빠르다’고 규정한 것이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늦어져서 압수수색이 늦어진 것부터가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현 단계에서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고, 경찰 국가수사본부를 상대로 영장 지휘만 할 수 있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의 필요성을 제기하면, 검찰이 법원에 발부를 요청하는 식이다. 이번 LH 본사 압수수색 영장발부 판사는 “주말이라도 급하면 출근해서 발부할 수 있었는데, 그런 요청이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이 이미 LH수사 초기 대응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장관은 ‘빠르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강변함으로써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남구준 국수본부장은 ‘검찰 수사협력’ 사실상 거부...검찰, “안산지청에 협력 당부는 코미디”

문 대통령과 정 총리의 ‘검찰 협력’ 당부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수본은 그럴 의사가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직접 '검찰에 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공언하는 상황인데, 검찰에 사건을 넘기겠나"라며 "예단할 수는 없지만 구조적 비리를 파헤치지 못하고, 하위 직급 직원들 선에서 수사가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 장관은 그러나 검찰측에 ‘경찰 보조’ 역할을 당부하고 있다. 박 장관은 안산지청 직원들과 만나 "올해 시작된 수사권 개혁 제도하에서 법률 전문가인 검찰의 수사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검경 간 유기적 협조 관계의 모범적 선례를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에도 박 장관은 대검찰청에 ▶경찰의 연장 신청 시 신속 검토 ▶송치 사건 엄정 처리 ▶공소유지 만전 ▶범죄수익 철저 환수 등을 지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와 기소 분리’는 처음부터 문제 투성이였다. 기자로 치면, 취재하는 기자 따로 있고 기사 작성하는 기자가 따로 있는 격이다. 취재는 않고 기사만 쓴다는 가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면서 “기사만 쓰는 기자(검찰)가 일일이 취재만 담당한 기자(국수본)에게 물어봐야 하는 상황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시간도 많이 걸리고, 취재(=수사)를 직접 담당하지 않다 보니, 사실감 있는 기사를 작성(기소)하기란 애초부터 글러먹은 셈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대검찰청 차원에서 특별수사본부를 꾸려서 대대적으로 수사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사건이다. 그만큼 사안이 엄정하고 중대하다. 그런데 수사 인력과 능력이 굉장히 제한적인 안산지청에 박 장관이 얘기하는 건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군소 조직인 안산지청에 협력을 당부한 것은 일종의 ‘코미디’라는 해석이다.

그는 "경찰 국수본이 이번 사건 수사를 부실하게 한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과 수사·기소 분리가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줄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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