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권 박탈을 검찰개혁의 정점으로 지목해 밀어붙여온 문재인 대통령이 LH직원 투기 의혹이 터져나오자 돌변하고 있다. 지난 8일 검찰에게 현재 LH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경찰과 협력해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불과 수일 전만해도 검찰의 수사권 행사가 검찰조직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강변해온 것과 백팔십도 달라진 태도이다.

‘검수완박’ 주도하던 박범계도 돌연 검찰 수사능력을 격하게 ‘칭찬’...10일 총리 주재 회의서 검-경 수사협력 기정사실화

친문 강경파들과 함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을 위한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수사청’) 조기 설치를 추진해온 박범계 법무장관조차도 9일 검찰-경찰의 수사협력을 강조했다.

박 장관은 이날 'LH 부동산투기 수사전담팀'을 꾸린 수원지검 안산지청 방문길에 취재진과 만나 “검찰은 4급 공무원 이상 수사라는 제한과 액수 제한도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1·2기 신도시 투기 때 발생한 부패 범죄·뇌물 수수 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해서 많은 성과를 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권 행사를 맹비난해온 박 장관의 ‘검찰 칭찬’ 저의는 분명하다.

4급 이상의 고위직으로 투기의혹이 확산될 경우 현재 검찰에게 수사권이 남아있는 6대 중대범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6대 중대 범죄 수사권을 검찰 손에서 빼앗아 오겠다고 공언하다가, 돌연 6대 중대 범죄 수사권은 검찰에게 있으니 즉각 협력하라고 주문하려니 ‘명분’이 필요했던 셈이다.

이처럼 표변하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태도에 일선 검사들은 황당해하는 분위기이다. LH투기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조직인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는 “우리도 수사를 잘 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로서도 황당한 노릇이다. 가열차게 수사권을 몰아주다가, 이제와서 검찰 지시를 받으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LH투기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개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전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0일 LH투기 의혹 사건관련 긴급 관계기관 회의를 소집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협력방안을 논의한다.

이날 회의에는 박범계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그리고 공석인 검찰총장을 대신해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 등이 참석한다. 문 대통령이 8일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을 강조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게 이번 회의의 목적이다.

문 대통령 돌변으로 LH투기 의혹 수사 주도권 둘러싼 검찰-경찰 다툼 불가피

이에 따라 LH 임직원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 수사의 주체와 대상을 놓고 검찰과 경찰 간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대상자도 13명에서 10만명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조사로 무마하려던 것이 정부합동조사단을 거쳐 지금은 검찰 전담팀까지 꾸려진 실정이다. 애초 검찰과 감사원은 ‘절대 불가’라던 정부의 방침이 바뀐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4번이나 입장을 발표하며 진화에 들어갔다. 하지만 LH발 부동산 투기 사건에 폭발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화상회의로 진행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수사와 관련해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4번째 지시를 내린 것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무소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 이번에는 황급히 나선 것이다. 그만큼 4.7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불거진 이번 사태에 대한 엄중한 상황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겼던 문 대통령, 황급하게 국수본 수사 및 검찰 협력 강조

문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합동조사단이 광범위한 조사를 하고 있지만, 합조단 조사를 그때그때 국수본에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를 먼저 하고 수사를 나중에 할 필요가 없다면서, 조사와 수사가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다.

이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사실상 국토부가 주도한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국토부가 합동조사단을 주도하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는 국민적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국토부 고위관리들이 투기의혹 LH 직원들의 윗선이라는 의혹이 이념적 차이와 무관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권내에서도 국토부를 포함시킨 정부합동 조사단은 ‘출발부터 패착’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인 협력’과 ‘긴밀한 협의’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도 수사 노하우, 기법, 방향을 잡기 위한 경찰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며 "검찰-경찰은 보다 긴밀히 협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또 "수사권 조정에서는 두 기관의 입장이 다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유기적 협력으로, 국가 수사기관의 대응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면서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은 수사권 조정을 마무리 짓는 중요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LH 투기 의혹 사건은 검-경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는 LH 임직원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 수사와 관련, 경찰청–국수본 특별수사단을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을 합류시켜 차명거래, 미등기 전매 같은 불법행위까지 잡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태 발생 초기에는 부동산투기 수사 노하우가 있는 검찰과 독립성을 인정받는 ‘최재형 감사원’을 끝까지 배제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검수완박’ 주장하던 박범계, 안산지청에 수사 지시

그러던 것이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담팀을 만든 것이다. ‘부동산투기 수사전담팀’은 대통령의 지시에 박범계 장관이 즉각 대응에 나서, 지난 8일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장관은 9일 수원지검 안산지청을 찾아 ‘부동산투기 수사전담팀’을 격려하면서 업무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과 박 장관의 의중과 달리 검찰과 경찰 현장의 반응은 온도차가 확연하다. 현재 이 사건의 수사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맡고 있다.

남구준 국수본 본부장은 대놓고 반발, “검찰에 맡기자는 부분 동의 어려워”

8일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본부장은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등 부동산 시장교란 의혹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면서 “검찰에 맡겨야 한다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놓고 반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 국수본부장은 8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LH 직원 '광명·시흥' 사전투기 의혹 등 수사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수사 역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 2기 신도시 관련해 검찰이 컨트롤타워였던 것은 맞지만 관련 부처 파견이 있었고, 경찰도 같이 참여했다"고 말하면서, 검찰 중심의 과거 수사와 비교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선을 그었다.

남 본부장은 "상당수 성과가 경찰에서 나왔던 것으로 안다"며 "경찰은 그동안 부동산 특별단속 등 역량을 축적해 왔다"고 강조했다.

경기남부경찰청과 국수본이 LH투기 의혹 담당...검찰 직접 수사 가능성 높아

현재 LH 부동산 투기 의혹은 경기남부경찰청에서 다루고 있다. 이와 관련, 고발인 조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대상 참고인 조사 등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은 LH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해 부패방지법, 공공주택특별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적용 혐의가 추가 또는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경찰 국수본은 수사 전개 과정에서 고위공무원이 연루된 정황이 나타나게 되면 검찰이 직접수사(직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범위 경합 소지가 있는 사안이 나오더라도 수사는 경찰이 이어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수사는 경찰이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능력에 대한 불신은 이미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초기 대응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진 초기에는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로 무마하려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다가 사태의 심각성과 폭발한 민심에 슬그머니 검찰에 '전담팀'을 꾸리도록 지시한 것이다.

불통의 문 대통령, LH사건 6일 만에 4차례 ‘소나기 지시’

문 대통령은 이 사태가 보도된 지 하루 만에 입장을 밝혔다. 어떤 일이 발생해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불통으로 일관하던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인 태도였다.

대통령은 3일 “광명 시흥은 물론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부-LH-관계 공공기관 등의 신규 택지 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 및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신규 택지 개발과 관련한 투기 의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신속한 제도적 대책 마련도 주문했다. 첫 번째 지시였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4일에 두 번째 지시를 내렸다.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 구조에 기인한 것이었는지 규명해서 발본색원하라"며 고강도 조사를 지시했다.

5일에는 세 번째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는 청와대 전 직원과 가족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대통령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사흘 연속 지시를 내린 것은 이례적으로, 그만큼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청와대는 조사계획을 세우고 자체조사에 착수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 8일에는 네 번째 지시를 내린 것이다.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면서,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인 협력’과 ‘긴밀한 협의’를 지시했다. 6일간 총 4번의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일선 검사들은 시니컬한 반응, “일주일 후 압수수색한 경찰은 수사 기본도 몰라”

하지만 검찰은 비판적인 입장이다.

지난 8일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 자신을 대검찰청 직원이라고 밝힌 A씨가 ‘검찰 수사관의 LH 투기의혹 수사지휘’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주도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의혹 수사에 대해 “차명으로 거래한 윗선은 쏙 빠져나가고 하위직 직원들만 걸릴 것이 뻔하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A씨는 이 글에서 “검찰, 아니 한동훈 검사장이 수사를 했다면 오늘쯤 국토부, LH, 광명시흥 부동산업계, 묘목공급업체, 지분 쪼개기 컨설팅업체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을 했을 것”이라며 “논란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범죄자인 국토부와 합동수사단을 만드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광명, 시흥 등을 포함해서 3기 신도시 등기부등본과 LH 직원을 대조하고 차명거래를 확인하라’는 지시는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고 지적했다. 신도시 토지거래 의혹 전수조사는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난 뒤에 해도 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었다.

A씨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최근 언론 인터뷰까지 인용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공적정보를 도둑질해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증거 인멸할 시간을 벌어준다고 했다”며 “지금 토지거래 윗선들은 차용증을 다시 쓰고 이메일을 삭제해 증거를 인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A씨의 주장은 경찰이 하려는 토지거래 전수조사로는 하위직 직원들만 걸릴 게 뻔하다는 것이다. 차명으로 거래한 윗선은 쏙 빠져나갈 게 뻔하고, 선배들이 하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해 실명으로 거래한 하위직 직원들만 조사에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연이어 금융거래, 토지거래를 추적해서 신속하게 조사를 받게 해야 한다면서 “국수본이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압수수색이 먼저 진행됐어야 한다는 A씨의 주장과 달리,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9일에서야 LH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의 당부와 달리 검찰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남구준 국수본부장이나, 사건이 벌어진 지 7일이나 지나서야 압수수색에 나서는 경찰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 면서 “4.7보궐선거까지 유야무야 시간만 끌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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