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월 18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위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만나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사건을 무죄로 탈바꿈시키려는 문재인 정권의 시도가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지난 2015년에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한 전 총리의 경우 이 사건으로 실형까지 살았다. 만약에 이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뒤집힌다면, 집권 세력은 또 다시 ‘법 위에 군림하는 세력’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죄를 무죄로 만들려는 ‘달님’의 뜻...조국사태 버금가는 대한민국 사법질서 대혼란 우려돼

하지만 뒤집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다. 지난 2015년 8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법원이 한 전 총리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데 대해 “대법원 판결이 오판이라도 이의를 제기못하는 거냐”면서 “한 전 총리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전 총리를 무죄로 만드는 것은 친문세력의 개인적 친분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한명숙 뇌물사건이 과거 보수 정권이 조작해낸 사건이라고 재규정함으로써, 친문세력의 도덕적 우위를 입증하겠다는 정치적 계산법이 담겨있다.

친문세력의 전매특허인 ‘내로남불’적 사고방식이 또 다시 대한민국 사법질서를 대혼란에 빠뜨릴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수 차례의 사법절차에 의해 확인된 한 전 총리의 범죄행위를 ‘조작’으로 몰고갈 경우,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에 버금가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박범계 법무장관 수사지휘권 발동해 ‘뒤집기’ 시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짐은 심상치 않다.

지난 5일 대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 사건 검찰 수사팀이 재소자들을 회유·압박해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하도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대검찰청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했다는 점에서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재 속에서 향후 박 장관과 대검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한명숙 모해위증의혹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 대검은 “과거 재판 관련 증인 2명 및 전·현직 검찰공무원들에 대한 모해위증, 교사, 방조 민원사건에 관해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건넨 혐의를 받은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2010년 한 전 총리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당시 수사팀 검사들이 고(故) 한 전 대표의 동료 재소자들에게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말했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전 총리가 받은 9억원 중 1억원은 동생이 전세자금 사용

한 전 총리는 2015년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수표가 결정적 증거였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이 한 전 대표가 준 1억원 수표를 전세금으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3억원 반환을 요구한 사실도 밝혀졌다. 대법원은 한 전 총리 여동생이 모르는 사람에게 1억원짜리 수표를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한 전 총리가 건네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여권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했다. 지난해 4월, 당시 검찰 수사팀이 거짓 증언을 강요했다는 진정이 법무부에 접수되었다는 이유를 들면서다.

추미애 재조사 지시했지만 ‘모해위증 의혹’ 무혐의 판정

이에 따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산하의 인권감독관실이 한 전 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한동수 감찰부장 지시로 계속 조사를 이어갔다.

지난달 22일 법무부가 발표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 따르면,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을 내 수사권한을 부여했다. 검찰 안팎에선 임 연구관이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범계 장관이 임 연구관에게 직접 수사권을 부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관측에 힘이 실렸다.

앞서 작년 9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임 연구관을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발령냈는데, 정기 인사가 아닌 임 연구관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원포인트’ 인사였다. 감찰정책연구관도 당시 신설된 ‘비직제’ 보직이었다. 임 연구관이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을 조사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있었다.

박범계 장관은 또 다시 임은정에게 ‘모해위증 의혹’ 맡겨

박 장관이 임 연구관에게 수사권을 부여하자, 임 연구관은 당시 증인들을 모해위증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었다. 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일 불기소 의견을 제시한 허정수 감찰3과장을 사건 주임검사로 전격 지정했고, 기소 절차는 중단됐다.

지난 5일 대검이 한 전 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 의혹'에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공소시효 내 기소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었다. 이들의 공소시효는 각각 지난 6일과 오는 22일이다.

이에 한 전 총리 모해 위증 사건 감찰·수사 업무에서 강제로 배제됐다고 주장한 임 연구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과정인지는 알겠다"며 대검의 결론에 대해 이견을 드러냈다.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

김어준과 친문세력 일제히 ‘모해위증 의혹’ 부각시켜

대검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 친문 방송인인 김어준은 TBS라디오 <뉴스공장>과 자신의 유튜브 프로그램 <다스뵈이다>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5일 방송된 153회 <다스뵈이다>에서도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증언 압박을 받았다는 한 모씨의 법률대리인인 신장식 변호사를 비롯한 4명의 변호사가 참석해 비난을 이어갔다.

이들은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검사들에 대한 모해위증교사 공소시효가 이달 하순으로 임박했다”며 “검찰총장이 배당권이건 직무이전권이건 어떤 이유로도 (임은정 검사로부터) 사건을 뺏는 것은 지휘권의 부당한 남용이자 노골적인 수사방해”라고 했다.

같은 날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추미애 전 장관 역시 이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추 전 장관은 “상당한 기간 감찰을 통해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임은정) 검사에게 사건을 뺏어 더 이상 수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대한민국 검찰총장의 태도인가”라고 비난했다.

신장식 변호사와 추 전 장관의 주장은 ‘고(故) 한만호 씨가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고, 그 중 1억 원이 한 전 총리의 동생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태도였다. 대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이,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했다.

박범계 법무장관 역시 이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이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장관은 지난해 4월 본격 제기된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은 ‘한명숙 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대검찰청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서 이를 끝까지 반대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경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한 감찰부장이 끝내 결재를 거부했고, 이에 주임검사인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은 총장 직무대리인 조남관 대검 차장에게 직접 보고해 무혐의 처분 결재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최대 걸림돌인 윤석열의 사퇴로 검찰 재수사 빠른 물살탈 듯

위증교사 의혹을 제기한 재소자 한 모씨를 대리하는 신장식 변호사는 지난 5일 자신의 SNS에서 “(사건이)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조 차장과 허 과장에게 묻는다. 이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에 한 감찰부장이 함께 했느냐”며 “법무부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검 측은 “적법한 과정을 거친 결재였다”는 입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장관은 무혐의 처분을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을 보고받은 뒤, 주말 동안 경위 파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의 관계자는 “박 장관이 이를 재배당하거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대 걸림돌인 윤 전 총장이 사퇴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지난 7일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 혐의자인 검사 2인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으나, 공소시효 완성 임박 등 사정에 비추어 대검이 수사와 공소제기 등을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박 장관이 이 사건을 두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거나 재배당할 경우, 작년 추-윤 갈등 국면에서 추 전 장관의 외압을 막아준 윤 전 총장의 부재 속에,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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