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다음날인 5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차지함에 따라, 대선판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윤석열의 부상을 두고 여야 정치권은 복잡한 셈법에 들어갔다.

무주공산이던 야권 대선판에 ‘빅3’ 출현?...‘이재명 1위 현상’ 타파에 여당내 제3후보군 대선행보 빨라져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발 정계개편의 뇌관도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야권은 그동안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윤 전 총장이라는 다크호스가 초장부터 선두로 나섰다. 게다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당초 예상을 뒤집고 나경원 전 의원을 누르고 서울시장 후보로 뽑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 후보는 향후 후보 단일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릴 전망이다. 한적하던 야권의 대선주자 자리에 윤석열, 안철수, 오세훈이라는 차기주자들이 일거에 부상하는 형국이다.

여당내부 사정도 긴박해졌다. 그동안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부동의 1위를 고수함에 따라 소위 ‘제3후보론’은 동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이 지사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는 지지율을 획득함에 따라, ‘대선판세의 대변화’가 시작됐다는 게 여권 핵심들의 판단이다.

즉 추미애 전 법무장관,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제3후보군들이 현재는 5%이하의 지지율에 그치고 있지만, 윤석열의 급부상은 여권내 지지율 고착화 현상을 타파해줄 것이라는 게 제3후보 진영의 분석이다.

즉 추 전장관, 정 총리, 김 지사 등이 단박에 이 지사 지지율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할 씨앗의 단초를 윤석열의 약진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판이 흔들리면 위기의식을 느끼는 쪽은 현재의 최강자인 이재명 지사이다.

익명 요구한 제3후보 관계자, “윤석열이 판을 흔들면 이재명으로 고착화된 힘균형도 깨질 것”

나머지 후보들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지각변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제3후보측 관계자는 “이 지사가 한동안 부동의 지지율 1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는 여당내 제3후보의 정치행보는 대중적 관심을 얻기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윤석열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 지사의 정치적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2~3%의 지지율 한계에 갇혀 있었던 여당내 제3후보들로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정치적 국면에 진입한 것”이라면서 “윤석열이 판을 흔들면 여당내 대선판도의 힘 균형도 깨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 사퇴 다음날 여론조사서 역대급 지지율 기록하며 1위 차지

그만큼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23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이 32.4%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위 ‘추-윤 갈등’ 국면에서도 받은 적이 없었던 성적표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24.1%, 이낙연 대표가 14.9%였다. 윤 전 총장의 총장직 사퇴를 계기로 대권 지지율이 수직 상승한 것이다.

현재 32.4%로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서울시장 선거 후 본격화될 대선 정국에서 어떻게 움직일지가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친문 진영으로부터 탄압받는 희생양이라는 이미지가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높인 것이 사실”이라며 “총장직을 사퇴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정권에 맞서는 검찰총장’ 이미지는 흐려질 것이다”고 평가절하했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말 25% 안팎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추 전 장관이 물러나고, 여권이 윤 전 총장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자 10%대로 떨어졌다. 민주당이 “우리가 나서서 윤 전 총장을 키워줄 필요가 없다”며 공세를 자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전 총장은 지난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구체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범야권에서 윤 전 총장에게 거는 기대, 윤 전 총장이 국민들에게서 받고 있는 지지도, 윤 총장이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가진 의미나 역할 등을 고려하면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야권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게 될 거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3일 대구지검 방문, 그리고 4일 총장직 사퇴까지의 행보를 한마디로 ‘대선출발’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022년 3월 9일 치르게 될 대선까지 약 1여년의 기간 동안 윤 전 총장은 여러 번의 변곡점을 만나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

① 윤석열 태풍, 4.7 보궐선거 판도 흔들까

4.7 보궐선거와 관련된 일정한 역할이 첫 번째 변곡점이 될 예상이다. 윤 전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지난 4일은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오세훈 후보에게로 모여져야할 스포트라이트는 전부 윤 전 총장에게로 집중되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갑작스런 윤 전 총장의 사퇴에 대해 ‘야권 기획설’까지 제기되었다.

김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야권 기획설은) 정말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 오세훈 전 시장을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총장이 사퇴하는 바람에 다 묻히고 말았다. 오세훈 후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며 야권 기획설에 대해 선을 그었다.

윤 전 총장의 사퇴에 대해 국민의당 입장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핵심 관계자는 “제3 지대에서 안철수 대표와 힘을 모을 부분이 분명 있을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안철수 대표 역시 5일 오전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의 사퇴에 대해 "부당한 정권 폭력에 직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키려 나선 것"이라며 "야권 지지자의 많은 기대가 모여있는 만큼, 정치를 하든 안 하든 정권교체에 힘 보태는 역할 하시면 좋겠다는 게 제 희망"이라고 밝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의 사퇴가 4.7 선거에서 야권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4차 재난지원금과 가덕도 신공항 바람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권력남용에 대해서 국민들이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② 보궐선거 결과 따라 야권발 정계개편 요동칠 듯

대선 전초전으로 평가받는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야권발 정개개편이 요동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와 야권 단일화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면 야권의 구심력은 윤 전 총장으로 급격하게 쏠릴 가능성이 크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는데도 야권이 진다면 ‘이대로 차기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기류가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윤 전 총장의 입지가 최대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야권 단일 후보가 승리하는 가능성은 누가 단일 후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단일 후보로 결정돼 승리한다면, 국민의힘 당세는 급속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안 후보와 윤 전 총장이 포진한 ‘제3지대’가 야권 재편의 핵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안 후보와 윤 전 총장의 연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로 서울시장 보선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으로 향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서울시장까지 석권한 제1야당의 자금과 조직을 무작정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③ 이재명과 친문핵심 간의 권력쟁탈전 가속화 불가피...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연기가 변곡점

보궐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대선 후보를 둘러싼 둔 여권 내 권력쟁탈전은 가속화될 것이다. 핵심은 친문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관계정립이다. 8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윤 전 총장이 32.4%의 지지율로 가장 높은 지지를 보였고, 이 점은 이 지사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친문 그룹 내에서는 1달 전부터 ‘대선 경선 연기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야당보다 너무 일찍 대선 후보를 선출해, 야당의 공격에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당헌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를 선거일 180일 전까지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 일정에 따르면 대선이 열리는 내년 3월 9일로부터 180일 전인 오는 9월 초까지는 확정돼야 한다. 따라서 이 당헌(黨憲)을 개정하거나 차기 대선에서는 예외를 적용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약진에 대해, 이재명 경기지사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대선 경선 연기론의 핵심은 친문(親文) 진영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적자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김 지사는 재판 일정상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9월에 끝나는 대선 경선 참여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친문 핵심 관계자는 “현재의 당헌대로라면 7월부터 경선전이 시작될 텐데 도중에 김 지사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경선을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당내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에 어떻게 유지되느냐에 따라, 친문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관계도 변화의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제3후보 내의 우열 그리고 제3후보와 이 지사간의 역학구도 등은 지극히 유동적인 것이다.

친문세력에게 ‘지시’ 내리는 김어준의 선택도 주요 변수

지난 연말부터 이 지사를 꾸준히 지지해오고 있는 친문 그룹 핵심 브레인인 김어준의 행보도 변수로 꼽힌다.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인 <다스뵈이다> 151회가 방송된 지난달 19일에는 건국대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가 출연해 ‘이재명 지사의 보편 재난지원금’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최 교수는 보편 재난지원금 및 기본소득 지급을 핵심으로 한 ’이재명 경제정책‘에 대해 전면적인 지지이론을 개발해 알리는 이 지사측 브레인으로 꼽힌다.

당시 최 교수는 KDI(한국개발연구원)의 ‘보편 재난지원금 효과’ 분석이 과소추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지적을 했다. 정부가 지난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14조 원의 재난지원금이 4조 원의 소비진작효과만을 산출했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따라서 KDI는 보편 재난지원금보다 선별 재난지원금 지급이 재정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 교수는 “KDI의 연구가 왜곡됐고, 언론매체들도 왜곡된 연구자료를 토대로 가짜뉴스를 생산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특히 KDI는 보고서 귀퉁이에서 보편지원 효과에 대한 ‘과소추정’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의도적 왜곡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친문세력 내에서 사실상 ‘지시’를 내리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는 김어준의 선택 또한 대선 정국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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