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地法, 애초 '발부'에 도장 찍었다가 수정액으로 지우고 '기각'에 다시 도장 찍어
'기각' 사유에 대해서도 논란...'사안의 중대성' 인정하고도 "도주 우려 없다"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이 현직에 있는 만큼 증거인멸 가능성 높다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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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사진=연합뉴스)

김학의 전(前)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조치 사건의 피의자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에 법원이 ‘발급’ 도장을 찍었다가 이를 지우고 ‘기각’으로 수정했다는 소식이 8일 전해졌다. 이에 대해 수원지방법원 측은 “날인을 잘못한 단순 실수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원 안팎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수원지방검찰청이 차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한 것은 지난 3일.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오대석 영장전담 판사는 “엄격한 적법 절차 준수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사안이 가볍지 않다”며 이 사건의 중대성을 인정해 놓고도 “현재까지의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 자료,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여 온 태도 등에 비춰 증거 인멸의 우려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지난 6일 새벽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차 본부장은 지난달 이뤄진 검찰의 세 차례 소환 조사에 모두 응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수원지법은 구속영장청구서를 검찰에 반환하면서 서류 상단 결과란의 ‘발부’에 도장을 찍었다가 이를 수정액으로 지우고 다시 칸을 만들어 ‘기각’ 쪽에 도장을 찍었다. 구속영장 심사를 담당한 판사가 처음에는 ‘구속’으로 결정을 내렸다가 모종(某種)의 이유로 인해 그 결정이 바뀌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판사의 단순 실수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오 판사가 늦은 시각(새벽 2시)까지 고민했다는 점과 “사안이 중대하다”고 밝혔다는 점을 볼 때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만일 법원 안팎의 압력 때문에 결정이 바뀐 것이라면 심각한 ‘사법 농단’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차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구속영장은 ▲사안이 중대한 경우 ▲증거인멸 또는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한 주거가 없는 경우에 발부된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사안의 중대성’을 인정해 놓고도 ‘증거인멸 또는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권력형 범죄의 경우 사안의 중대성이 인정되면 지위를 이용한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커 구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차 본부장이 현직에 있는 만큼 증거인멸의 우려가 큰데, 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의 핵심 피의자 중 한 사람인 이규원 당시 대검찰청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사시46회·연수원36기)는 불법적인 경로로 취득한 정보를 사용해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을 법무부에 요청했고, 차 본부장은 이같은 사정을 알면서도 23일 오전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을 승인한 의혹 등 다수의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차 본부장은 “김 전 차관이 밤 늦게 몰래 자동출입국을 이용해 해외 도피를 시도하는 상황이었기에 국경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내가 아무 조처를 않고 방치해 (김 전 차관이) 해외로 도피하게끔 두어야 옳았겠느냐”며 해당 조처는 불법이 아니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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