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여권 일각의 무리한 ‘검찰 죽이기’ 행보에 대해 침묵을 깨고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여권내 강경파들이 적극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 (이하 ‘수사청’)’ 설치에 대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히 박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가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윤 총장이 이달 초부터 연일 강한 메시지를 쏟아내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사청 설치에 대한 반대는 문 대통령의 의지와 상충되지 않는다. 수사청 설치를 서두르지 말아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과 궤를 함께 한다. 박범계 법무장관이 국회에서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당부를 거론한 이후, 여권 일각에서도 수사청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일부 부상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도 사실은 윤석열과 비슷한 입장, 정 총리 비판은 번지수 잘못 찾은 격

오히려 민주당 내 강경파가 대통령의 뜻을 거스름으로써 ‘레임덕’을 깊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직을 100번이라도 걸고 반대하겠다’는 윤 총장의 메시지 발송에 대해 정세균 국무총리 등 여권 수뇌부는 임명직 공무원의 자세가 아니라 정치 행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만류하는 수사청 설치에 대해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는 검찰총장의 입장 표명은 오히려 검찰조직을 지휘하는 임명직 공무원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정 총리 등의 비판 포인트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격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정치 지형이 윤 총장의 강력한 대응을 가능케하는 요소들로 작용, 수사청 설치를 둘러싼 향후 정국흐름을 예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윤 총장의 최근 행보는 4가지 관점에서 의미심장하다.

① 민주당 내 강경파의 3월 법안 발의부터 막겠다는 의지 표명/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의식한 듯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 TF를 중심으로 한 여권 내 강경파들은 3월 안에 법안을 발의해서, 6월 안에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 법안을 만들기 전에 의견을 개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분석된다. 사전차단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윤 총장은 지난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총장이 검찰개혁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처음 표명한 것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윤 총장은 본인이 직접 수사한 대선자금 사건, 대기업 비자금 사건,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 국정농단 사건 등을 예로 들며 “수사 따로 기소 따로 재판 따로였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직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권의 일정을 고려한 측면 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검찰총장의 메시지가 강한 이슈로 점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수사와 관련된 기관이 너무 많아서 국민들 입장에서도 헷갈린다는 의견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거세다. SNS상에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디에 고소를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1) 경찰청 2) 검찰청 3) 국수본 4) 공수처 5) 수사청 중 어디?’ 라는 질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 검찰의 독립성과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해석이다.

② 중도성향 국민일보와 첫 인터뷰...정치행보 공격 사전 차단 의도?

윤 총장은 검사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진 인터뷰를 ‘국민일보’와 진행했다. 국민일보는 친여 성향의 매체도 아니고, 강한 보수 색채를 띄는 언론도 아니다. 만약에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면, 정치적인 의도로 내비쳐졌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의도를 배제한 채, 검찰개혁에 관한 입장만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념 색채가 옅은 국민일보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직자 신분인 윤 총장은 자신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비춰지는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행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것을 고려해, 적절하게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3일 정세균 총리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윤 총장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다. 정 총리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마치 정치인 같다"고 작심 비판했다. 윤 총장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사·기소 분리 폐단을 언급한 데 대한 정면 비판이었다.

정 총리는 "윤 총장은 행정 책임자인 검찰총장인데 어제 (인터뷰) 하는 것을 보면 정치인 같다"면서 "행정과 정치는 분명히 다르고, 실행 방법과 내용도 달라야 하는데, 마치 정치인(의 발언)이지. 평범한 행정가, 공직자 발언 같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수사청 설치에 대한 단호한 반대가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검찰조직의 수장으로서의 입장 표명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념적 색깔이 옅은 언론매체를 선택했지만, 여권은 정치행보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는 실정이다.

③ 윤 총장에게 ‘남은 임기’는 고려할 변수 아냐

윤 총장이 ‘직을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강한 메시지를 냈지만, 임기가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 말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총장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윤 총장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했다고 전제하다면, 굉장이 좋은 시점을 선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윤 총장은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라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공직자로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작년의 추-윤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여권은 윤 총장을 심하게 난타할 때 윤 총장의 지지율이 더 많이 오른 경험을 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7월 임기까지 가지 않고 지금 사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④ 청와대와 여당 수뇌부 비난은 문 대통령 흠집 내는 ‘자충수’?

작년 ‘추-윤’ 갈등 국면에서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청와대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윤 총장의 지지율은 대선 후보 1위를 달릴 정도로 올랐는데,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은 심각하게 추락했다. 따라서 윤 총장이 강한 메시지를 내더라도 작년과 같은 맞불을 놓을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을 것으로 분석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윤 총장을 때리면 때릴수록 윤 총장과 야권 후보의 지지율을 올려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여당은 아마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정치를 할 요량이라면 아주 좋은 수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작년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윤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시금 윤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한 '별의 순간'은 윤 총장이 스스로 사퇴하고 정계에 진출, 대선주자로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과 청와대가 윤 총장을 공격할수록 윤 총장에게 ‘별의 순간’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함수관계가 형성된다. 이같은 사실을 학습한 여당이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수사청 설치를 강행하는 것은 속도조절을 당부했던 문 대통령에게도 깊은 상처를 낼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은 자신의 강경 대응에 대해 청와대 등이 비난할 경우 자충수가 된다는 점을 계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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