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칼럼] 공적인 것의 재구성,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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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3.02 10:16:54
  • 최종수정 2021.03.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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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前 MBC방문진 이사)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다가오지만 우리 현실은 아직 지난 겨울에 머물러 있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사진과 경영진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머물러 있고 공영방송의 공적인 역할 수행 및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없다. 이는 연초의 KBS 수신료 인상 논란이 수신료 인상의 정도나 결정 및 징수 방법에 대한 논의에만 그치고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와 경쟁력을 상실한 공영방송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공영방송에 대한 논의는 공적 자금으로 공영방송을 현재와 같이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채 현상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서 누가 공영방송을 운영하는가에 대한 논의에 머물러 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의 대부분의 논의가 그러하였다. 과거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누구 몫인가에 대한 논의에 그치고 있었다. 모든 논의는 권한을 누구에게 어떻게 맡길 것인지에 대한 배분의 논의만 있을 뿐 왜 그렇게 배분되어야 하고 그러한 권한 배분이 공정한지와 배분된 권한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및 그런 상태로의 지속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특정 정파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당연히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자격을 취득하므로 공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없다는 논리가 배경에 있다. 공공성은 정치적으로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에 그치면 공공성은 정파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된다. 양극단으로 분열된 진영간에 배분에 대한 논의만을 진전시켜 왔으며 공화국의 유지와 지속을 위해서 공적인 것인 무엇이며 공익을 위한 책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였다.

국민의 참여로 운영되는 근대 국민국가는 특정한 계층이나 정파의 것으로부터 분리된 누구의 것도 아니고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러한 공적인 영역을 전제로 한다. 공공의 영역은 권력의 변경에 의하여 좌우되지 아니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국가를 유지 보존해가기 위한 것이다. 공적인 것이 특정한 정파가 건드릴 수 없는 누구의 것도 아닐 때에,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권력은 그러한 공적인 업무를 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 권위를 존중받는다. 그러할 때에 사적인 것과 대비되는 공화국의 터전인 공공질서로서 권위를 지닌 질서를 형성할 것이다. 공화국의 질서는 권위로서 존중받을 때에 가능하다.

공화국의 권위는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누구에게 먼저 코로나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가라는 논의에서 벌어진 대통령이 시험대상인가라는 어처구니없는 논쟁들은 지도자의 책임성에 대한 질문이 있음을 보여준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의 논의에 있어서 누가 공영방송의 운영을 이끄는 자로 선발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어떠한 선택의 방법을 만드는가에 앞서서 공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책임이 실현될 것인가라는 점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은 공적인 자금으로 운영되기에 공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라는 책무성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70년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국가형성 과정은 국가라는 공적인 실체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 세대의 책임의 수행으로 진행되어 왔다. 과거 조선의 몰락은 조선왕조 지배층의 국가 경영의 실패에서 연유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건국의 아버지들과 함께 건국과 전쟁의 시기에 국가 형성을 위해서 책임을 다했던 건국 세대, 안보와 경제성장의 업무를 수행한 산업화 세대 및 민주정을 추구한 민주화 세대들이 각 그 시대에 주어진 책무에 대하여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국가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의 과제 수행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지 저절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에 민주정은 공화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방향을 모색하기 보다는 진영간의 분열의 정치로 점철되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서 미래 세대에 의한 공정의 요구라는 문제 제기에 마주치게 된지 긴 시간이 흘렀다. 미래 세대가 제기한 공정에의 요구라는 것은 국가공동체라는 공적인 실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체제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지 아니하며 과거의 이념을 내세우며 좌충우돌하면서 대립을 만드는 진영 논리에 의한 극심한 대결 정치에 머물러 있었다. 공화국의 시계는 오래토록 과거에 멈추어 있었던 것 같다.

탄핵 이후의 새 정권하에서 구 주류세력의 몰락으로 인한 신주류의 일방적이고 정파적인 권력 행사는 공적인 것의 의미를 더욱 퇴색하게 하였다. 조국사태, 윤미향 사건, 추미애사태로 이어지는 정치 현실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혼란 상황을 보여준다. 총선으로 신주류가 다수가 된 입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의 입법권 행사는 공공성에 대한 논의의 장마저 소멸시키고 있다. 권력의 유지 자체를 정치의 목적으로 삼고 철저한 분열과 논란 야기를 배경으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의 권력 행사는 공적인 것의 소멸로 이어지고 권위의 상실로 이어진다. 현실은 힘의 지배라는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공적인 것 마저 정파의 사유물로 만들어가는 정치현실은 공적인 것의 소멸과 함께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해체라는 우려를 낳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에서 누가 경영을 맡아야 하는가는 문제에서 공적인 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책무성이 먼저 논의되어야 하는 것처럼 정치 현실에서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공익을 가리키는 것이며 공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정파적으로 철저하게 갈라진 현실을 전제로 하고 누구에게 권한을 배분할 것인가를 가림은 의미가 없다. 이는 반복되는 대립과 지속되는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이어갈 뿐이다. 진영 대립을 전제로 하고 공적인 것을 쟁취한다는 식으로 공적인 것의 사유화 현상이 점철되고 있다.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공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 이를 구성해야 한다. 특정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어떻게 책임을 수행하고 공적인 질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가 과제다. 공화국의 민주적 운영은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균형을 찾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고, 그러한 모색은 권리와 의무의 절충을 통한 절제의 추구에서 찾아야 한다. 로마공화국의 공화주의자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좋은 것과 유익한 것의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무를 도출하면서 공화국의 공동선을 추구하였다. 권리와 의무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 공화국에서도 함께 사는 공동체인 공화국의 지속을 위해서는 균형을 찾기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현상을 유지하는 전제에서의 권한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재구성이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의 권력 행사가 모든 논의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공동체로서 모두가 함께 가야한다면 모두를 위한 공적인 것의 구상이 필요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여 방향성을 잃은 정치가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공공성에 대한 논구를 통해서 무엇이 공적인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前 MBC방문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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