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섭 칼럼] 공정성 제도화, 방송 자유와 독립의 최고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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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3.01 12:16:04
  • 최종수정 2021.03.0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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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섭 KBS이사

방송 공정성, 무엇이 문제인가?

공정성 원칙은 자유롭고 건강한 소통을 담보하는 방송 자유의 기본 원칙이다. 그리고 방송 종사자들이 방송의 자유를 갖기 위해 다양한 간섭으로부터 독립성을 갖게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 방송 종사자들은 최고의 콘텐츠를 생산해서 시청자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방송은 정확하고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는 방송 공정성의 정의는 단순하다. 그런데 방송 공정성의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토록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필자는 그 원인을 공정성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공정성 원칙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인식, 방송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시각, 정치적이어서 보편타당한 원칙이 될 수 없다는 입장 등이다.

공정성 원칙의 오남용이나 실효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공정성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이는 ‘부작용 때문에 약을 쓰면 안된다’와 같은 논리적 모순이다. 공정성 원칙에 문제가 있다면 공정성을 엄정하게 검증하고, 그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방송 종사자들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견지(堅持)해서 시청자 복지를 극대화하는 방송 공정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방송 공정성 논란은 현재 진행형

방송 공정성은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의 주제이다. <방송법> 제6조에서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관련 규정을 요약하면, 공정성은 사실성(factuality) 불편부당성(impartiality) 균형성(balance)을 종합적으로 적용하여 구현된다. 공정성 규정은 방송내용이 정확하고 다양한 관점들을 균형감 있게 보도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는 저널리즘 원칙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준에 불과하다. 이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방송이 과연 품격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실정법상이 아니라 강학상의 논의에서 이민웅은 논문(2004)에서 “칸트(I. Kant)의 의무론적 도덕론이 강조하는 정언명법(categorical imperative)에 비추어볼 때 ‘공정보도는 그러한 규범의 파괴를 허용할만한 압도적 이유가 없는 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명제를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더라도 불공정했다’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방송보고서’, 법원 판결에서 ‘사실을 왜곡했지만 처벌은 유보한 MBC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파동, ‘악마적 편집’이라고 불리었던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자 교회강연 보도’ 등 방송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방송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시각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방송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시각들이 존재한다. 첫째는 ‘정치적 시각’이고, 둘째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이고, 셋째는 ‘무용론적 시각’이다.

첫째, 정치적 시각이다.

방송 공정성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는 시각이다. 이준웅도 논문(2013)에서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공정성 논란은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이념을 언론이 대변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집단에서 공정성 요구를 제기하는 데서 발생했고, 이념적 스펙트럼의 좌우 모두에서 상이한 판단에 따라 보도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는 파국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방송내용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같으면 공정하다고 하고, 다르면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있다.

양승동 KBS 사장도 “공정성은 본인이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갖느냐에 따라 편향적으로 또는 불공정하게 보이는 면도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방송 공정성에 대한 정치적 시각은 정치집단에 의해 악용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정치적 시각에 의하면 양극화된 정치 현실에서 공정성 문제는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논의를 확대하지 않은 것이 상책이 된다.

둘째, 이데올로기적 시각이다.

방송 공정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시각은 공정성의 판단 기준을 당시 사회에서 우위를 점한 이념적ㆍ정치적 관점을 공정성과 동일시한다. 방송에서 소위 ‘촛불정신을 구현해야 한다’는 시각이나 ‘정권의 통치철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비주류의 대안적 시각을 받아들이는 합의과정을 배제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고, 민주주의 원리에 의거하여 행동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실제 KBS 이사회에서도 지배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가진 다수이사들이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는 소수이사들을 ‘정파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공정성 문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성 원칙’ 자체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공정성 논란이 계속되고, 공정성 원칙을 합의 불가능한 사안인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셋째, 무용론적인 시각이다.

방송 공정성에 대한 무용론적인 시각은 공정성 원칙이 너무 추상적이고 다의적이어서 실제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방송에서 공정성의 이분법적 이념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다 보면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나아가 공정성 원칙은 양적 균형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방송행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공정성 확보를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KBS 이사들도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성 원칙: 공론장 기능의 으뜸가는 원칙

공영방송이 해야 할 민주적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민주적이고 건강한 소통은 기본 요건이다.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방송에 부여된 공적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 방송이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등 제 권력에 의해 공정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공영방송 본래의 설립목적인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민은 저서 <미디어 공정성 연구>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소통의 현장에 나와는 다른 타인의 존재와 관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관점들을 가능한 폭넓게 포용하는 공정성 원칙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영방송 프로그램이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프로그램으로 승화되고, 자유로운 최상위의 사회적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으뜸가는 조건으로 공정성 원칙이 요청된다”고 하였다. 이런 면에서 윤석민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방송 공정성에 대한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방송법>에서 KBS를 국가기간방송으로 지정하고, KBS가 수행해야 할 공적책무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실현, 새롭고 창의적인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명시하고 있다. 공영방송에 부여된 공적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종사자들은 공영방송 본래의 설립목적에 걸맞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방송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공정성 원칙은 공영방송이 공론장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게 하는 으뜸가는 원칙이다.

공정성 제도화: 방송 자유와 시청자 복지의 최고 장치

방송 공정성을 지속가능하게 확보하는 방안은 ‘제도화(institionalization)’하는 것이다. 제도화는 헌팅턴(S. Huntington)의 주장으로 한번 만들어진 제도가 정치권력 변동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바로 공영방송 설립목적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엄정한 커뮤니케이션 원칙에 입각하여 공정성의 규범과 제도 등을 갖추는 것이 ‘방송 공정성의 제도화’이다. 이제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당과 야당이 입장을 바꿔 제기하는 공정성 논란에서 벗어날 시점이 되었다.

최근 KBS 심의실에서 정치인 출연의 균형성 상황을 기록하는 작업은 방송 공정성 제도화의 좋은 사례이다. 정치권에서 KBS 방송에 대한 불공정성을 제기할 때, 그 자료를 바탕으로 공정방송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 출연의 균형성에 대한 기록 작업을 심의실의 부차적인 업무로 처리해서는 안된다. 공정성 문제는 공영방송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방송 공정성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장하면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다하기 위한 상설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은 제거하면서, 공정성을 강화하는 규범과 제도를 정교하게 보완ㆍ재설계해 나가야 한다.

공정성 확보는 방송 전문직 규범성(normativity)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경영진뿐만 아니라 방송 종사자 모두가 주체가 되어 참여해야 가능한 사안이다. 규범성은 민주주의, 정의, 윤리, 공정성 등과 같은 방송의 기본 가치이자 민주사회의 본원적인 가치이다. 그 중에서 공정성 원칙은 공영방송의 존재이유와 직결되어 있다. 공영방송은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들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바로 엄정한 공정성 원칙은 공영방송이 시청자와의 자유롭고 건강한 소통을 지속 가능하게 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달하고 건강한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하는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공정성의 제도화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 시청자 복지를 극대화하는 최고의 장치이다.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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