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준 칼럼] 북핵과 종북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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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2.28 15:05:26
  • 최종수정 2021.02.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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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말하는 남북관계개선이니 평화니 하는 감언이설을 믿지 말아야 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모두 똑같은 말을 하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 30년 동안 전대협, 한총련, 범민련, 전국연합,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등은 평화와 반핵을 외치면서, 북핵을 용인하고 심지어 환호하기 까지 했다. 나아가 북핵을 막을 최후의 보루인 한미동맹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이것이 1980년대부터 30년 넘게 보여준 종북세력의 일관된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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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스스로 핵을 포기할 리 없다.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는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제1차 북핵위기’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은 핵을 일정한 패턴으로 사용해 왔다. 북한은 핵을 통한 위기 조성, 외교 협상, 외교·군사·경제적 양보, 그리고 다시 위기 조성을 반복했다.

다소 거칠게 구분하자면 한국의 좌파는 일정한 양보를 통해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반면 우파는 양보가 나쁜 선례를 누적시키기 때문에 강력한 제제를 수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양보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는 어디까지나 좌파의 명분에 불과하다.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 좌파의 주류, 즉 주사파(NL),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 등의 이름으로 불려온 종북(從北) 세력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근하게, 북핵을 옹호하거나, 최소한 핵개발을 위한 시간을 끌어주었다.

그동안 북한은 핵무장 능력을 비약적으로 확대하는 데에 성공한 데 반해 남한은 이를 억제할 수단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최근 종북세력은 ‘한미연합훈련중단’을 주장하며 전선을 주한미군으로 까지 확대하고 있다.

◇1986년 ‘반전반핵 양키 고 홈’

1986년 3월 서울대학교 운동권 학생 100여 명은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반전반핵투위)를 발족시켰다. 당시 정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재호가 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선창에 따라 집회 참가 학생들은 “반전반핵 양키 고 홈!”, “민족생존 위협하는 핵 기지를 철수하라!”, “친미독재 타도하고 미제국주의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4월 서울대에서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가 결성됐다. ‘반전반핵투위’에 소속되어 이재호는 청계천 미군 공병대 앞에서 성조기를 소각하는 등 반미투쟁에 몰입했다. 같은 달 말에 이재호는 전방입소 거부 투쟁을 하다, 김세진과 함께 분신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반전반핵 양키 고 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였다.

1980년대 후반 운동권은 집회가 끝날 때 〈반전반핵가〉를 부르며 “반전반핵 양키 고홈!”을 외쳤다. 좀 불편하겠지만 가사를 살펴보자.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걸고 나가자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이 목숨 다 바쳐

해방의 함성으로 가열찬 투쟁으로

반전! 반핵! 양!키!고!홈!

1985년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하기 위해 NPT(핵무기 비확산에 관한 조약)에 가입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남한에는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었다. 운동권들이 외친 ‘반핵’의 구호는 다름 아닌 남한의 전술핵을 향했던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남한의 전술핵은 전쟁억지 수단이 아닌 ‘제국의 발톱’이었다.

◇제1차 북핵위기, 범민련과 한총련

한편 NPT에 가입한 북한은 무려 7년 동안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1992년 1월 핵안전조치협정을 맺었다. 이후 1년 동안 6회의 사찰이 있었다. IAEA는 북한이 킬로그램(㎏) 단위의 플루토늄 확보 시도가 있었다는 의구심을 품게 됐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미신고시설에 대한 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다가 마침내 1993년 3월12일 NPT 탈퇴를 선언한다. 사실상 핵무장 의지를 밝힌 것으로써, 제1차 북핵위기의 출발점이 됐다. 불과 1년 전 김일성은 정원식 총리를 만나 핵개발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평화를 미끼로 거짓말을 했다.

주목할 것은 당시 남한 종북세력의 움직임이다.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범민련 북측 본부는 이듬해인 1991년 조직됐따. 1991년, 1992년 범민련이 주최한 범민족대회 남측·북측·해외본부의 공동선언에는 “남북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의 조속한 이행”가 분명하게 들어가 있었다. 즉 1980년대 ‘반핵’의 구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북핵위기가 시작된 1993년 범민련 공동선언에는 ‘한반도비핵화’가 빠져있다. 대신 “대규모 전쟁연습을 중지”와 “외국의 ‘핵우산’을 날려버림으로써 외세의 간섭책동을 종식”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즉 북한이 핵무장의 의지를 보이자, 이제까지 외쳤던 한반도비핵화 명분을 내버리고 오히려 미국의 핵우산 비판했던 것이다. 노골적인 북핵 옹호였다.

1994년 들어 남북관계를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3월 그 유명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고, 6월 미국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검토하고 있었으며, 7월 김일성 사망과 조문파동이 벌어졌다.

한편, 전대협의 후신으로 1993년 등장한 한국대학생총연맹(한총련)은 출범 당시만하더라도 ‘생활과 학문의 공동체’라는 다소 연성화된 구호를 내걸었다. 그런데 북핵 위기가 가속되던 1994년, 한총련 2기 지도부는 ‘반미의 대결전, 김영삼정부 타도 선언’을 기조를 잡았다. 이후 한총련은 투쟁일변도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96년 연세대학교 사태가 있었고, 1997년 ‘전민항쟁’을 선언했다. 한총련이 강경 노선으로 선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북핵위기 이후 김영삼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반발도 분명히 있었다.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사진=연합뉴스)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사진=연합뉴스)

한총련은 강경투쟁의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총련 최고대표자 사상’이라는 개인 숭배를 서슴치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한총련 대표자는 “백만청춘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의 유일한 체현자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며 백만청춘의 최고의사 표현자”이며 “백만청춘의 유일한 정치지도자”이므로, 학생들은 “대표자를 믿고 삶과 생활, 운명을 의탁하고 믿으면 삶은 개척”될 것이라고 했다. ‘백만청춘’ 대신에 ‘인민’을 대입하면 주체사상의 수령론과 똑같다.

심지어 1997년 한총련은 한양대학교와 전남대학교에서 무고한 사람을 프락치로 몰아 집단구타한 끝에 숨지게 했다. 당시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전쟁상황이다. 인륜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이다.

한총련은 준(準)전시상황으로 치닫는 정국 속에서 북한을 위해 반미투쟁과 정부타도를 선포하고, 심지어 수령론을 학생운동의 지도이념으로 삼으려고 했다. 실제 그들은 전시상태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총련의 ‘전쟁’이란 북한을 위해 미제를 축출하는 ‘조국해방전쟁’과 결국 같은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과 전국연합

1991년 한국 사회 NL 운동권이 총집,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라는 전국적인 대규모 조직을 결성했다. 전국연합을 결성했다. 지금도 NL 운동권의 내부 정파(政派)를 구분할 때 말하는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울산연합 등의 모체가 된 단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동구권 몰락의 여파로 극심한 식량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1996년 전국연합은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성남연합의 실적은 놀라웠다. 석달동안 1만5천여가구를 방문해 5천5백 가구로부터 220가마의 쌀을 모았다. 성남연합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용인, 광주(경기도), 하남, 이천, 여주 등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렇게 경기동부연합이 탄생했다.

1995년 김영삼정부는 대북관계 돌파를 위해 쌀 2천톤을 북한에게 지원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북한 함경북도 청진항에 입항한 씨아펙스호(號)는 국제 관례에 따라 태극기와 인공기를 달고 입항하려 했는데, 북한이 태극기를 내리도록 하는 바람에 결국 인공기만 올린 채 하역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당시 언론은 ‘쌀주고 뺨맞았다’며 조소를 보냈다.

한편, 1996년 9월,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후 잠수함에 탑승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강릉 일대로 침투했다. 이른바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군(軍)과 경찰은 49일 동안 토벌 작전 끝에 무장공비들을 소탕하고 치안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군인 12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 등이 전사했다. 부상자는 27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북한이 무장공비를 침투시키고 남한의 쌀 수송선에 인공기를 게양케 하면서 남한을 조롱하고 있을 때에도, 전국연합과 같은 종북세력은 북한을 위해 극진하게 쌀 시주를 받고 다녔다.

◇군자산의 약속과 민주노동당

2001년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전국연합은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라는 주제로, 소위 ‘9월 테제’를 채택했다. 세칭 ‘군자산의 약속’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이것은 한국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종북세력이 조직적으로 제도권 정치 참여를 결의하고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전국연합은 9월 테제에서 “지난 10년간에 걸친 조미(朝美, 북한과 미국) 대결에서의 이북(以北)의 승리는 미 제국주의의 유일적 세계지배에 파열구를 내며 제국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동력”이라고 진단했다. 즉 북한이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봉에 서있고, 자신들은 이를 보조하기 위해 반미투쟁을 지속해야하는데, 이를 위해 제도권 정치로까지 전선을 넓히겠다는 선언이다.

이들의 목표는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을 접수하는 것이었다. 당초 민중민주(PD) 계열이 만든 민주노동당에 전국연합조직원들이 대대적으로 입당했다. 우월한 조직력을 앞세워 지역위원회 및 간부를 자기사람으로 채웠고, 이 과정에서 숱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그리고 연합계열은 2004년 당직선거를 기점으로 당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북한은 2002년 핵개발 시인, 2005년 핵무기 보유 선언, 2006년 핵실험을 거듭했고, 이를 중재하려는 6자(者) 회담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처럼 북한의 핵무장력이 상승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한총련, 실천연대, 범민련 등 종북세력은 ‘미국의 제네바 합의 파기 음모’라고 북한을 옹호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데 열중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내부 PD그룹은 ‘평등파’, 연합계열은 ‘자주파’로 통칭되었다. 양대 정파는 격렬하게 대립했는데 그 중 하나가 북핵 문제였다. 자주파의 최대 정파, 경기동부의 수장(이석기가 경기동부 리더로 드러난 것은 2012년 통합진보당 이후)으로 통했던 이용대 정책위의장은 북핵이 미국이 북한을 압박한 결과이기 때문에 북한은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반핵’을 외쳤던 이들이 20년이 흘러 ‘찬핵’이 되었다. 과거에 버리자고 했던 핵은 남한의 전술핵이었고, 지금 가져야한다는 핵은 북핵이다. 입장이 180도 바뀐 이유는 핵무기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남한의 핵은 제국의 발톱이고, 북한의 핵은 민족의 자존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의 북핵 찬양

이석기 전(前) 국회의원.(사진=연합뉴스)
이석기 전(前) 국회의원.(사진=연합뉴스)

2013년 통합진보당에서 그 유명한 ‘이석기 사태’가 터졌다. 같은 해 5월 이석기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마포구 합정동에서 가진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 비밀회합에서 “북한 핵무기가 뭐가 문제냐. 민족의 자랑이다”라고 발언했다. 이것은 당시 이석기 개인의 돌출적 발언이 아니다. 종북세력의 비밀회합에서 통용된, 즉 종북주의자들의 보편적 인식이다. 과거 반핵을 외쳤던 자들이 드디어 핵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RO에서 이석기의 발언을 더 들어보자.

“이러한 대격변기에 조선반도는 어떤 곳이냐? 미제국주의의 지배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고, 그러나 민족적 계급적 조합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한 지역이 조선반도다. 뒤집어 말하면 조선반도가 의미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질서를 근본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미 중심의 패권주의인 제국을 무너뜨리는 세계 혁명의 중심 무대가 될 거라고…….”

저들의 의식구조를 보자. 21세기 대한민국이 아직도 미제 식민지라는 주관적 식민지 백성의식, 그 주관적 열등감을 북핵이라는 ‘강함’으로 상쇄하려는 정신적 자위, 해 년마다 빠지지 않고 북한의 승리를 염원하는 유아적 낙관주의, 무엇보다 자기정체성을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에 귀속시키는 여적의 세계관이다. 지금 이석기는 감옥에 있다. 그러나 이석기는 재수없게 걸려버린 종북주의자일 뿐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에도 종북주의자들은 도처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2021년, 반미 총력투쟁의 시작

2020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이 당선되었다. 양경수는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한국외대는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의 산실이다. 이석기 전의원(통합진보당, 82학번), 김재연 전의원(통합진보당, 99학번), 우위영(전 민노당 대변인, 84학번), 정형주(전 민노당 경기도당 위원장, 84학번), 윤원석 (전 민중의소리 대표, 86학번) 이 대표적이다. 양경수 위원장 역시 경기동부 인사를 분류된다.

양경수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2월 민주노총 〈2021년 사업계획서〉의 정세 분석에는 종북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사업계획서에서 이들은 지난 해 미국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이 대선을 통해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의 허상이 드러났고 미국 패권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봤다. 반면 북한은 “자력갱생, 핵무력 완성”으로 미국에게 “선대선, 강대강”의 원칙으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나아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할 경우 남북관계가 악화될 것이므로, “종속적 한미관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 사업계획서에 어째서 세계 정세 분석이 등장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분석마저 기가 찬다. 종북세력의 정세분석은 수십년째 똑같다. 미국의 패권은 항상 몰락하고 있으며, 북한은 항상 당당하게 미국에 맞서고 있으며, 그리하여 미 제국주의의 위기가 한반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념은 제3세계 민족주의고, 심정은 미륵신앙이다.

무엇보다 실제 북핵의 위험에 노출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관점이 삭제돼 있고, 그 위험의 주체인 북한에 대한 비판도 없다. 오직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는, 즉 ‘평화’의 외피를 쓴 반미투쟁 뿐이다.

시민단체와 좌파정당 역시 똑같은 기조로 움직이고 있다. 2월22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 여성본부’와 41개 여성단체는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두려움을 안고 한반도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모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반대한다”며 3월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를 요구했다.

지난 23일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발의했다. 배의원은 인천연합으로 분류되는 NL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25일 민주당 소속 의원 35명이 ‘한반도 대화국면 조성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연기를 촉구한다!’는 집단성명을 내놓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코로나 핑계를 대고 있지만 백기완 추모제와 민주노총 집회를 결행하는 좌파가 진정 코로나를 걱정할 리 없다. 2월 들어 일사분란한 움직임의 본질은 반미투쟁이다. 당면 목표는 한미연합훈련중단이지만 최종 목적은 한미동맹파기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30년 동안 저들의 일관된 목표다. 주한미군만 없으면 북핵과 같은 비대칭적 무력을 억지할 수단이 대한민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종북세력이 북한과 관계맺는 방식이 ‘민주기지론’이라면(여기에 대해서 펜앤드마이크 [주동식 칼럼] ‘좌파는 단결하고, 우파는 분열하는 이유’ 참조), 이들의 대중투쟁 방식은 통일전선(united front)이다. 통일전선은 ‘다양한 계급, 계층, 정당, 사회단체가 공통의 목표를 위해 공동의 대상에 투쟁할 목적으로 만든 공동전선’을 말한다.

종북세력은 정당과 단체를 장악한 다음 평상시 부문운동을 하다가, 특정한 이슈가 터지면 단일대오를 구성하여 공동전선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단체, 농민단체, 노동단체, 환경단체, 교육단체 등이 일사분란하게 반미투쟁을 해왔던 것이다.

이들은 올해를 총력전의 결정적 시기로 잡은 듯하다. 운동권출신 정치인들이 이미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장악했다. 언론 길들이기도 성공했다. 무슨 짓을 해도 정권을 지지하는 극단적 지지층이 있다. 대중투쟁의 주체가 되는 시민단체는 애초부터 자신들의 소유였다. 좌파는 모든 권력을 쥐었으니 이제 가장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들이 말하는 남북관계개선이니 평화니 하는 감언이설을 믿지 말아야 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모두 똑같은 말을 하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 30년 동안 전대협, 한총련, 범민련, 전국연합,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등은 평화와 반핵을 외치면서, 북핵을 용인하고 심지어 환호하기 까지 했다. 나아가 북핵을 막을 최후의 보루인 한미동맹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이것이 1980년대부터 30년 넘게 보여준 종북세력의 일관된 입장이다.

진짜 평화는 구호를 외치는 자가 지켜내지 않았다. 히틀러의 속임수에 맞서 영국을 구한 것은 체임벌린의 낙관이 아니라, 처칠의 의심이었다. 비록 무능했어도 체임벌린은 영국인이었다. 그런데 종북세력은 국민인지, 여적인지 의심스럽지 않나. 이런 자들이 떠드는 ‘평화’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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