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진행된 제21대 총선 부산 남구을 지역구 선거무효소송
원고 이언주 前의원 대리한 변호인단 측, '180일 이내 선고' 규정 무시한 대법관들 성토
대법원 특별3부, "'코로나19' 사태 이유 들어 재검표 관련해 원고와 피고 양측의 의견 듣겠다"
소장 접수로부터 303일만에 열린 첫 번째 변론기일, 다음 기일은 정해지지 않은 채 끝나

“각성하라! 재판부는 각성하라!”

대법관들을 향해 고함을 친 남성을 보안요원들이 법정 밖으로 끌어냈다. 이 남성은 법정 문 밖을 나서면서까지 재판부의 각성을 촉구하며 계속해 고함을 쳤다.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부산광역시 남구을 선거구 선거무효소송(대법원 2020수5042) 첫 번째 변론기일 법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번 소송의 원고(原告)는 이언주 전(前) 의원으로 상대 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의 박재호 후보와의 접전 끝에 1000여표 차이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번 소송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후인 지난해 4월29일 이언주 전 의원 측이 ‘선거무효’를 주장, 대법원에 소장(訴狀)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공직선거법’ 제225조(소송 등의 처리)는 “선거에 관한 소청이나 소송은 다른 쟁송(爭訟)에 우선하여 신속히 결정 또는 재판하여야 하며, 소송에 있어서는 소(訴)가 제기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대법원은 이 사건 변론기일을 열지 않고 질질 끌어오다가 소장 접수로부터 303일째 되는 이날 비로소 첫 번째 기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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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부산광역시 남구을 선거구 선거무효소송 첫 번째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몇몇 시민들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모여 대법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2021. 2. 25. / 사진=박순종 기자

“대법원을 믿어달라는 말씀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본격적인 변론에 앞서 이 의원 측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관련 법규를 위반하면서 변론기일을 열지 않은 데 대해 성토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 1월18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상옥·이기택·김재형·조재연·박정화·안철상·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김상환·노태악·이흥구 등 대법관 전원을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 의원 측 변호인단 측은 ▲법률상 근거 없는 ‘QR코드’가 사용된 점 ▲‘QR코드’에 투표인의 정보가 담겼기 때문에 비밀선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 ▲외부로부터 투표지가 혼입된 정황이 있는 점 ▲전자투표기를 사용한 개표 조작의 가능성이 농후한 점 등을 들어 지난번 총선 자체가 무효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被告) 부산광역시 남구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QR코드’ 역시 공직선거법이 정한 바 ‘바코드’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련 법규 위반이 아니며, ‘QR코드’에는 어떠한 인적사항도 담기지 않았고, 부산 남구 선거구에서 외부 투표지가 혼입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원고 측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다가 전자투표기를 사용한 조작 가능성은 ‘단순 의혹 제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이번 기일에서 다뤄진 주요 쟁점은 재검표 기일을 잡는 것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 사건 원고 측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위법하게 선거를 끌어온 만큼 신속하게 재검표 기일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 소송 대리인단은 재검표를 하는 데 있어서 이의는 없지만 원고 측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검표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고 원고 측 변호인단이 선거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검표 과정을 거치며 또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지난 번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전자개표를 거친 뒤 수개표를 하는 방식의 재검표 진행을 요구했다. 다만 전자개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미징 파일이 생성될 텐데, 그렇게 생성될 이미지 파일을 지난 번 총선 때 생성된 이미지 파일들과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중국발(發)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재검표를 실시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자개표는 1시간 이내로 한정해 원고 측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되 수개표는 통상의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논의를 정리했다.

이날 변론을 마치기에 앞서 원고 측 변호인단은 “소(訴) 제기 이후 너무나 오랜 시일이 흘렀다”며 총선거 실시일로부터 300일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첫 번째 변론기일이 열린 데 대해 재판부에 재차 거친 항의의 의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당선무효소송’이 아니고 ‘선거무효소송’이기 때문에 원고 이언주 의원의 지역구 뿐만 아니라 동일한 사유로 소가 제기된 127개 선거무효소송이 일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다음 기일을 확정하지 못하고 변론을 마치게 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180일 이내 선고’ 규정을 무시하고 소송이 지연된 데에는 김 대법원장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대법원이 소송 진행을 질질 끄는 사이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건 주요 증거들을 인멸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변론 후 이 사건 변호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박주현 황금률 대표변호사는 변론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재판부가 재검표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며 “얼렁뚱땅 재검표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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