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할아버지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신화를 넘어설지 주목된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불모지였던 1970년대 한국에서 최초의 양산형 국산 자동차 포니를 출시,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업가 정신의 성과였다.

현대차는 이미 글로벌 5위...테슬라와 1,2위 다퉈야 ‘정의선 신화’ 가능해져

이제 조부가 이끌었던 내연기관차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전기차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 글로벌 시장에서는 빅5로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20년 100대 자동차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 순위는 도요타, 메르세데스 벤즈, BMW, 혼다, 현대차의 순이다. 한결같이 내연기관차 시장의 강자들이다. 전기차 시장의 최강자 테슬라는 6위에 그쳤다.

정주영 회장이 초석을 닦고 부친인 정몽구 회장이 완성한 내연기관차 글로벌 5위는 정의선 회장이 받은 선물이다.

그러나 미래차의 대표주자인 전기차 글로벌 시장의 절대강자는 테슬라이다.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와 1,2위를 다툰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출사표 던진 정의선 회장, 23일 첫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 공개

정의선 회장은 23일 이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차그룹은 전용 전기차 제품군 ‘아이오닉’ 첫 모델인 '아이오닉 5'를 공개했다. 그동안 테슬라가 독주해 온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예상된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를 공개하기 이전부터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과 업무를 준비해 왔다. 지난 18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현대차‧ 기아 기술연구소를 방문해 현대차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아이오닉5의 모델명에서부터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전기적 힘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이온(Ion)’과 독창성을 뜻하는 유니크(Unique)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 ‘아이오닉’이라는 설명이다. 거기에 차급을 나타내는 숫자 ‘5’를 붙여, 아이오닉5 라는 이름이 완성됐다.

혁신적인 모빌리티 속에 포니 디자인의 유산 담겨

아이오닉 5의 외부는 포니로 시작된 현대차의 디자인 유산이 담겨 있다. 1974년 처음 공개된 포니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현대차의 도전정신을 디자인에 담은 아이오닉 5도 새로운 전기차 시대를 선도해 나간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장은 신형 투싼보다 5㎜ 길고, 축간거리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팰리세이드보다 100㎜ 가 더 길다. 넓은 실내 공간은 편안한 거주공간이라는 테마를 반영했다. 고객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차량의 인테리어 부품과 하드웨어 기기 등을 구성할 수 있는 '스타일 셋 프리'도 반영됐다.

현대차에서 처음 적용된 디지털 사이드 미러는 일반 미러를 카메라와 운전석·조수석 문 상단에 놓인 모니터로 대체해 사각지대를 줄인 것으로 주목받았다. 삼성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목을 끌기도 했다.

또 가전제품을 연결해서 사용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차량 외부로 일반 전원(220V)을 공급할 수 있는 V2L 기능을 통해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높은 3.6㎾의 소비전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캠핑 등 다양한 외부 환경에서 커피 메이커와 헤어드라이어 등 일반 가전제품과 전자기기 등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아이오닉 5는 새로운 EV 시대를 이끌어갈 혁신적인 모빌리티"라며 "충전 항속거리 등 기본에 충실하면서 공간성, 다양한 사용성으로 변화하는 고객의 니즈(요구)에 적극 대응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를 72.6kWh 배터리가 장착된 롱레인지와 58.0kWh 배터리가 탑재된 스탠다드 두 가지 모델로 선보인다. 오는 25일부터 롱레인지 모델 2개 트림(등급)의 국내 사전 계약이 시작된다.

가격(전기차 세제 혜택 전, 개별소비세 3.5% 기준)은 익스클루시브가 5천만원대 초반, 프레스티지가 5천만원대 중반이다. 최대 300만원의 개소세 혜택과 구매보조금(서울시 기준 1천200만원)을 감안하면, 롱레인지 익스클루시브 트림은 3천만원대 후반의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총리 지원사격, “올해는 친환경 자동차 원년”

아이오닉5가 공개되기 약 1주일 전인 지난 18일, 정세균 총리는 현대차 기술연구소를 방문해 “대량 생산을 이끈 포드의 ‘모델 T’처럼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길 기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 총리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외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 공영운 현대차 사장,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등이 함께한 자리에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정 총리는 “올해를 친환경차 대중화 시대를 여는 원년으로 정했다”며 “우리 기업이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수요와 공급 기반 혁신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공공 부문에 전기차, 수소차를 의무 구매하도록 하는 목표를 신설하고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2000억원 규모 뉴딜펀드를 조성해 산업 생태계를 돕는 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 대여사업 등으로 시장확대 본격 공략

현대차그룹은 이날 ‘전기차 배터리 대여 사업’을 전개하는 미래 사업 계획도 내놨다. 산업부, 현대글로비스, LG에너지솔루션, KST모빌리티와 ‘전기차 기반 택시의 배터리 대여 및 활용 실증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기차 초기 구매 비용 부담을 낮추고 재활용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전반에 걸쳐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무협약에 따르면 택시 플랫폼 사업자는 전기차를 구매한 뒤 바로 배터리 소유권을 리스 운영사에 매각한다. 이후 택시 플랫폼 사업자는 전기차 보유 기간 동안 월 단위로 배터리 리스비를 지급하게 된다. 사업자는 사실상 배터리값이 빠진 가격으로 전기차를 구매하는 셈이다.

또 배터리 순환 모델도 실증한다. 전기 택시에 탑재된 배터리를 새로운 배터리로 교체할 때 확보되는 ‘사용후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확보된 ESS를 전기차 급속 충전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기료가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ESS를 충전하고, 전기료가 비싼 낮 시간대에 ESS를 활용해 전기차를 충전하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사업주체의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현대차는 실증 사업을 총괄하면서 전기차를 택시 플랫폼 사업자인 KST모빌리티에 판매한다. 배터리 보증은 물론 교체용 배터리 판매도 담당한다.

현대글로비스는 배터리 대여 서비스 운영과 사용후 배터리 회수물류를 담당한다. 최근 현대글로비스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대량 운송할 수 있는 전용 용기의 특허를 취득하는 등 관련 사업 역량을 키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사용후 배터리’를 매입해 안전성 및 잔존 가치를 분석한다. 사용후 배터리로 ESS를 제작해 전기차 급속 충전기에 탑재하고, 해당 충전기를 차량 운용사인 KST모빌리티에 판매하는 역할을 맡는다.

KST모빌리티는 전기차 기반의 택시 가맹 서비스를 운영하는 주체이다. 택시 충전에 ESS 급속 충전기를 활용한다. 전기 택시 운행을 통해 수집되는 주행 및 배터리 데이터는 업무협약 참여 기업에 제공한다.

산업부는 관련 부처와 협의해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실무추진단을 운영해 분기별 진행 상황 및 현안을 점검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사업을 위해 최대한 민관협력을 끌어모은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은 사례인 만큼 전기차의 선순환이 조기 구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구상하는 ‘배터리 대여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전기차 보급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들이 기존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전기차 구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배터리 비용이 제외된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한 뒤, 배터리 대여 비용만 내면 되기 때문에 초기 구매비용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이번 사업으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의 안전성을 실증하고 잔존 가치 평가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어서 전기차 배터리의 재사용 활성화 효과도 기대된다.

배터리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안전성 개선과 충전소 확충이 과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실증한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에 대한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전기차 확산에 너무 속도를 내는 느낌이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배터리 문제 외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화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발생한 ESS 화재사고 25건 중 13건이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제품에서 발생했다. 전체 발생건수의 절반이상에 해당되며, 피해액만 12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LG화학은 ESS배터리 화재에 따른 일회성 비용 증가로 2019년 4분기 사상 최초 분기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실증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ESS 화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관련 테스트를 강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보급의 선행조건은 충전소 확충이다. 실제 소비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도 한번 충전하면 430km를 달린다고 하지만, 충전소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전기차 시대를 앞당긴다는 말만 반복할 뿐, 구체적으로 충전소를 늘리는 방안과 예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실정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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