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에 빠짐에 따라 주요 국정운영이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파동은 일단 수습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박주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문 대통령의 ‘수사청 속도조절론’을 무시하며 중대범죄수사청을 조기 설치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박범계 법무장관도 민주당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박주민,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 들은 바 없다” 공언...박범계, “나는 아직 민주당 의원”호응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수사기소 분리 TF’ 팀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은 “속도조절론을 들은 바 없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안정을 위해 검찰개혁과 관련 ‘속도조절’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는 사실상 문 대통령의 입장을 묵살하겠다는 입장 표명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박범계 법무장관도 “나는 아직 민주당 의원이다”고 밝혔다.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직책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독립적 입법기관이다. 박 장관이 민주당 의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은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수사청’) 설치 시기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방침보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조기 시행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현수 민정수석 거취는 문 대통령 손에...검찰 중간간부 인사는 윤석열 의중 일부 반영

검찰 고위간부 인사과정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사의를 표명했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2일 정상 출근해 직무에 복귀했다. 신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께 자신의 거취를 일임한다고 밝히며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사실상 사의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신 수석의 이런 발언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당분간 불편한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해석된다. 겉으로는 신 수석 파동이 마무리되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갈등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단 봉합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본인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단 복귀하는 모양새는 취했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점에서 사태가 잠잠해지면 결국 사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 수석의 복귀와 동시에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급 인사안이 당초 인사안에서 상당 부분 후퇴, 윤석열 총장의 뜻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점은 일부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된다.

법무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인사안에 따르면,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대립해 당초 교체 가능성이 언급됐던 변필건(사법연수원 30기) 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유임됐다. 월성 원전 경제성평가 조작 의혹 수사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팀도 유임됐다. 공석이던 중앙지검 1차장에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파견에서 복귀한 나병훈 차장검사(28기)가 임명됐다.

대검이 인사정상화를 위해서 광범위한 규모의 인사를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조직 안정 차원에서 빈자리만 메꾸는 소폭 인사에 머무른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해 8월 인사에서 고검검사급 585명에 대해 인사를 단행한 것과 비교하면 소폭 인사다.

검찰의 관계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검찰 내부는 폭풍 전야와 같은 상황이다”고 전했다.

박범계 22일 국회 법사위에서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 설명

신 수석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의 속도조절도 문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계 장관이 지난 22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수사청’ 신설 등이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문 대통령 입장을 전했다.

이날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사-기소 분리는 시대적 사명”이라며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말해달라”고 하자, 박 장관이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박 장관은 “저는 원칙적으로 (검찰의) 수사, 기소가 분리돼야 하고 검찰은 송치된 사건에 대한 잔여 수사와 기소 여부 판단, 공소유지에 전념하고, 원칙적으로 별도의 조직이나 경찰 등에서 직접 수사를 맡는 게 맞지 않느냐는 판단”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해준 발언을 소개했다.

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저에게 주신 말씀은 크게 두 가지다. 올해 시행된 수사권 개혁이 안착되고, 두 번째로는 범죄수사 대응 능력,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선 안 된다는 차원의 말씀을 했다”고 밝혔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의 직접수사권만 검찰이 갖게 된 현재의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안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수사청 신설까지 바로 나아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말로 해석된다.

수사청 신설을 통해서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민주당과는 어느 정도 입장을 달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개혁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온 신현수 민정수석의 입장에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 장관의 이날 발언이 청와대가 신 수석의 업무 복귀를 전한 지 2시간 만에 나왔기 때문이다.

박범계는 23일 당정서 당 입장 존중 발언...내각 각료가 대통령보다 당론 따른다는 초유의 사태

하지만 민주당 내 기류는 문 대통령의 입장을 무시하는 분위기다.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다. 박주민 의원은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께서 수사청에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이런 내용들이 있던데”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전해들은 바는 없다. 검찰개혁 시즌2는 당이 주도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범계 장관은 23일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들과의 비공개 당정협의를 갖고 ‘검경수사권 조정 안착’ 및 ‘수사청 조기 신설’ 등의 현안을 논의했다. 온건파는 지난 달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을 안착시키는 데 주력하자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과 궤를 같이한다. 반면에 강경론은 차제에 수사청을 신설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주장이다. 한겨레는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나는 아직 민주당 국회의원이니 수사-기소 분리(검찰 직접수사권 폐지) 원칙에 대해선 당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는 게 복수의 참석자들 전언이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수사청 조기 신설 방침은 ‘추미애 조국과 한뜻’이고 ‘문 대통령과 딴 소리’

민주당은 당내 검찰개혁특위 논의 등을 거쳐 최근 ‘3월 수사청 신설 법안 발의-상반기 관련 법안 통과’라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주문을 따르게 되면, 6월 내 입법 완료를 공언해온 ‘검찰개혁 시즌2’의 일정과 강도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사청 신설을 통해서 ‘검수완박’하겠다는 입장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입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조 전 장관은 (중대범죄)수사청 제안에 대해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형사사법 관련 고위공직자에 대한 기소권을 보유하고, 검찰청은 형사사법 관련 고위공직자 이외의 사람의 범죄에 대한 기소권과 경찰의 1차 수사권에 대한 보충수사 요구권을 보유하는 것”이라며 지지입장을 밝혔다.

추 전 장관 역시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3대 검찰 개혁안’을 올리면서 수사청 신설을 통한 ‘검찰개혁 시즌2’를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는 검찰개혁 속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내 핵심 관계자는 “1월 1일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는데, 또다시 검찰이 가진 나머지 수사권마저 손대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 역시 “신 수석 복귀 이전부터 민주당이 수사청을 급하게 밀어붙여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신 수석이 돌아온 날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말씀’을 밝힌 것은 일종의 ‘오비이락’ 이라면서, 신 수석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국 전 장관 대신 신 수석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오해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사청 설치와 관련 속도조절을 해달라는 문 대통령의 주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역대급 레임덕 사례로 기록되면서 국정마비 사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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