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정치논리로 보를 허물지 말라!” -박석순 교수에 답한다.
[특별기고]“정치논리로 보를 허물지 말라!” -박석순 교수에 답한다.
  •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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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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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2.22 10:11:37
  • 최종수정 2021.02.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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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지난 2021년 2월 9일, 필자는 조선일보 <조선칼럼> “강의 자연화는 인간의 동물화와 같은 말이다”를 발표했다. 최근 4대강 보(洑)의 해체를 결정한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칼럼은 환경사(環璟史)의 입장에서 “강의 재자연화”란 주장 속에 담긴 비과학성과 몰역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박석순 교수가 필자의 칼럼을 비판하는 45분의 동영상을 발표했다. 우선 긴 시간 필자의 신문칼럼 한 편을 한 줄 한 줄 꼼꼼히 점검해준 박 교수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보다 건설적인 학술적 대화를 위해 박 교수가 제기한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1/02/09/ODWS3CJHIFFJLAZGBMRVLANL6U/

첫째, 지엽적인 지적부터 반박하자면, 박 교수는 필자가 칼럼의 서두에서 4대강의 보가 16개인데, 15개라고 오기했다고 비판했다. 칼럼의 그 문장을 통째로 보면, “최근 국가물관리위원회는 530억원을 들인 후에야 44개월 만에 15개 보(洑) 중 단 3개에 대해서만 해체 혹은 부분 해체를 의결했다”이다. 2013년 감사원은 이미 16개 보 중에서 여주의 이포보를 제외한 15개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바로 그 15개보에 대해서만 조사를 실시했다. 이 칼럼에선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사를 진행한 보의 개수가 모두 15개였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지, 4대강 보의 개수가 모두 16개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둘째, 박 교수는 필자의 다음 문장을 문제 삼았다. “환경사(環境史)의 관점에서 강(江)이란 자연 하천 그 자체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인위적으로 개조되고 관리되어 온 천인(天人) 합작의 하이브리드 문명 수로이기 때문이다.”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강”은 자연 그 자체로 방치된 천연의 물길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관리된 “문명 수로”(cultural waterways)라는 점은 세계사의 상식이다. 환경사(環璟史)의 학술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 권의 세계사 교과서에 기술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박 교수가 말하는 “문명강(cultural river)”과도 상통하는 개념이다.

물론 1980년대 후반 출판된 빌 맥키번(Bill McKibben)의 <<자연의 종말(The End of Nature)>>과 같이 “강의 소멸, 사망, 겁탈”을 고발하는 소수의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문명이 자연 상태의 하천을 파괴했다는 극단론인데, 다수의 환경사 연구자들은 오히려 자연과 문명의 환원론적 이분법(reductionist dichotomy)을 경계한다. “인간과 강의 상호작용(human-riverine interaction)”은 환경사의 기본 테마다. 바로 그 점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필자는 강을 “천인(天人) 합작의 하이브리드 문명 수로”라 표현했을 뿐이다.

셋째, 박 교수는 또 필자의 다음 문장도 문제 삼았다. “현재 36개 유럽의 국가들엔 최소 120만개의 수리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으며, 자연 상태의 하천은 1% 이하다. 18~19세기 이래 지속된 치수 사업의 결과 미국엔 현재 240만개 이상의 보와 9만개 이상의 댐이 건설되어 있다.”

박 교수는 정확한 조사도 없이, 통계의 제시도 없이 스스로의 직관에만 의존해서 필자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아무런 비판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내쇼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raphic>> (2020년 12월 17일 자)에 따르면, 유럽의 과학자들은 4년에 걸쳐 1,700 마일의 강을 도보 조사한 결과 120만 개의 수리구조물이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WWF(범세계 자연 기금)와 세계 어류이동 기구(World Fish Migration Foundation)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선 1% 미만의 강만이 자연 상태 그대로 “자유롭게” 흐르고 있다.

또한 미국에 “현재 9만 개 이상의 댐이 건설되어 있다”는 구절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아무런 자료 제시도 없이 “7만 개 정도로 알고 있다”고만 했다. 필자가 인용한 자료는 미국의 국가조사(National Inventory)의 보고서에 적시돼 있듯, 2016년 현재 미국의 댐 개수는 90,580개에 달하고, 2018년 자료에 따르면 91,457개나 된다.

필자는 유럽과 미국의 수리관리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학술저널을 찾고, 수문학 전문가와 대화를 거쳐 자료의 정확성을 검토했다. 반면 박 교수는 통계수치의 인용도 없이 그저 “전문가”의 느낌에만 의존해서 필자가 제시하는 객관적 정보를 틀렸다고 단정한다.

넷째, 박 교수는 필자가 쓴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쇼나이 평원의 늪지대를 8,000 헥타르의 수경농지로 개간했다는 일본사의 기본지식에 대해서도 자신이 읽은 “강의 세계사라는 책에 없다는 이유로" 불신을 표했다. 게다가 필자가 바로 동시대인 1681년 프랑스에서 240km의 미디 운하를 준공했다는 사실을 적시했는데, 난데없이 프랑스 전체 운하 총 길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전형적인 논점일탈의 오류를 범했다. 박 교수는 또 “19세기 독일의 라인강 개발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는 문장도 문제 삼았는데, 필자의 표현은 라인강 개발의 책임 엔지니어 요한 툴라(Johann Gottfried Tulla, 1770-1828)가 실제로 라인강 개발을 군사작전에 비유한 구체적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19세기 초의 강력한 라인강 개발 드라이브가 오늘날의 라인 강을 만들었음은 환경사의 상식이다.

다섯 째, 박 교수는 필자가 제시한 다음의 역사적 논점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 근거 없는 비판을 했다.

“18세기 [조선의] 인구 증가로 홍수의 피해는 급증했다. 개항 이후 기록을 보면, 동시대 일본의 푸른 산림과는 대조적으로 한반도 70%의 산림이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산림의 황폐화는 홍수의 급증, 수리 시설 파괴, 농업 생산력의 급감으로 이어지는 구한말의 빈곤 트랩을 야기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하천 관리는 지나치게 뒤늦었다.”

이 문단 역시 경제사 및 환경사의 기본상식이다. 한국경제사의 대가 이영훈 교수의 역작 <<한국경제사>>에도 같은 논점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다. 실제로 구한말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더욱 생생한 증언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일테면 1894년 1월 부산항에 닿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7)에는 당시 헐벗은 산들의 음산한 풍경이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

“서울 근교, 해안 지역, 개항장 근처, 중심 도로들 주변 야산들의 헐벗은 모습의 인상이 강해서 이 나라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생각을 갖게 한다.”(The denudation of the hills in the neighborhood of Seoul, the coasts, the treaty ports, and the main roads, is impressive, and helps to give a very unfavorable idea of the country.)

박 교수는 인구 증가가 농지면적 부족을 야기하고, 과도한 벌목으로 산림의 황폐화가 진행되어 홍수 피해로 이어지는 환경사의 기본 상식까지 부정하고 있는데, 역시 학술적 증거도, 과학적 논증도 없이 느낌만을 말하고 있다. 그릇된 역사지식에 근거해서 한반도의 산천은 늘 푸르렀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환경이 파괴됐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섯째, 박 교수는 필자의 다음 문장도 틀렸다고 단언했다. “한반도는 유달리 강폭이 좁고 유로가 짧은 산악 지형인 데다 하상계수(연중 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의 차이)가 매우 높아서 하천의 수문학적 관리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땅이다.” 박 교수는 한강의 폭이 세느강보다 넓다는 점을 근거로 필자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수문학 교과서에 실린 다음 문장을 읽어 보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천은 그 유역면적이 작고 유로연장이 짧으며 또한 산지가 많기 때문에 하천의 경사도 급한 곳이 많다.” (윤용남 저, <<수문학: 기초와 응용>>[청문, 2007] 15쪽)

여기서 “유역면적”이란 빗방울이 떨어졌을 때 특정한 출구로 모이는 전체 면적을 말한다. 유역면적이 작고 유로연장이 짧은데다 산지가 많고 하천경사가 급하면 하천 폭이 넓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어려운 전문가의 기술적인 언어를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한반도는 유달리 강폭이 좁고 유로가 짧은 산악 지형”이라 표현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 박 교수는 한강과 세느강을 비교해서 한반도의 하천은 강폭이 넓다고 주장하는데, 예외적 사례를 비교해서 수문학 교과서의 일반론을 부정하는 오류다.

결국 박 교수가 말하는 “강의 재자연화”는 그저 “자연 친화적인(nature friendly) 혹은 ”환경 친화적인(environment friendly) 강의 건설”이라는 의미 정도로 보인다. 박 교수 스스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복원과 보스턴의 찰스강을 “강의 재자연화” 사례로 들고 있다는 점을 보면, 그런 입장이 명확해 보인다. 유학시절 필자가 8년 간 살았던 보스턴의 찰스 강에는 20개의 크고 작은 댐과 보가 건설돼 있다. 그 결과 하버드 대학에선 불과 100m도 안 되는 강폭이 2-3km 떨어진 MIT대학 근처에서 1km가 넘는 큰 강으로 바뀌어 있다. 박 교수는 그렇게 “자연 친화적인 강의 개발”을 비과학적이고 문학적인 환경론자들의 언어를 차용해서 “강의 자연화”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강의 재자연화”라는 구호가 갖는 정치적 함의와 화용론적 의미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10년 넘게 언론에 등장하는 “강의 자연화”란 용어의 의미에 비춰볼 때, 박 교수 말대로 청계천 복원이 “재자연화” 사례라 생각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4대강 재자연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물은 흘러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지금도 모든 보의 전면 해체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정치 상황에서 집권세력은 “4대강 자연화”라는 구호로 대중의 의식에 최면을 걸어 놓았다. 그 최면을 깨기 위해선 실제로 강이 인류의 역사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개조되고 관리되어 왔는지 명확하게 밝혀야만 한다. 때문에 필자는 “조선칼럼”에서 “4대강 재자연화”란 구호 속에 담긴 반문명적 극단론을 비판했다. 근세 정치철학자들이 사회계약론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상정하듯, 한국의 환경극단론자들은 “자연 상태의 하천”을 이상으로 삼고 보의 철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에서 “강의 재자연화”는 ‘동물의 야수화“나 ”인간의 동물화“와 같이 어불성설임을 주장했다.

영어권에서도 “강의 재자연화(renaturalization of rivers)”란 표현은 주로 환경론자들의 정치적 구호로 사용된다. 필자는 정치투쟁의 목적 때문에 “인간과 강의 상호작용” 자체를 부정하는 현정권의 비과학적, 몰역사적 세계관을 비판하는데, 박 교수는 전혀 다른 개념에 입각해서 필자의 칼럼을 비판했다. 어떤 비판이든 환영하지만, 문제는 박 교수의 비판이 객관적 자료 제시도, 정확한 통계 인용도, 역사학 지식도, 명징한 논리 전개도 없이 필자의 논지를 왜곡하는 전형적인 논점일탈의 “허수아비 오류”(strawman’s fallacy)를 범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박 교수는 본의 아니게 보의 파괴를 “4대강 재자연화”라 주장하는 집권세력의 트릭에 말려들고 말았다. 이제 집권세력은 박교수를 인용해서 "강의 재자연화"를 정치구호로 써먹기 쉽게 됐다.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말하건데,최고의 권위자는 빈틈없이 정확한 지식을 통해서만 권위를 유지한다. 제발 박 교수는 구체적인 증거와 통계수치를 들고 정확한 반론을 해주기 바란다. 이번 계기로 4대강 보 철거를 둘러싼 한국 지식계의 논의가 더욱 활발히 전개될 수 있길 바란다. 필자의 주장은 단 하나다. “정치 논리로 보를 허물지 말라!”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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