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이익공유제가 ‘K-상생모형’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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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2.20 20:46:30
  • 최종수정 2021.02.2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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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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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달 1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고소득층 소득은 더 늘고 저소득층 소득은 오히려 줄어드는 ‘K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는 바” 코로나로 많은 이익을 얻는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익공유제가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유관 연구소인 민주주의연구소는 이에 화답하듯 ‘협력-이익-공유’ 선(善)순환론을 주장했다. “협력해야 이익이 생기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익을 공유해야 협력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연구소는 이를 ‘K-상생모델’로 명명했다.

O 남용되는 ‘K-브랜드’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민간부문이 주도한 ‘브랜드(brand)’ 전략이다. 브랜드는 가축의 소유자를 식별하기 위해 불에 달군 특정 문양의 쇠붙이를 가축의 엉덩이에 대고 낙인(烙印)을 찍은 데서 유래 했다. 브랜드를 보고 특정인 소유의 가축임을 식별했던 것이다.

‘K-pop’에서 시작된 ‘K-brand’는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논리적으로 설득적이지 않다. ‘K-양극화’와 ‘K-상생모델’ 네이밍(naming)은 억지춘향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한국적 양극화와 한국적 상생모델은 다른 나라의 그 것과 다른 가이다. ‘한국적’이란 형용사가 정당화될 만큼의 한국 고유의 정형화된 그 무엇이 존재하는 가이다.

정명(正名)은 과학과 정책의 출발점이다.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면 보편타당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용어의 과장이 심하다. ‘쇼(show)통(通)’이란 힐난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을 ‘국가 브랜드화’ 한다면, ‘K-포퓰리즘, K-정책실패, K-이중잣대, K-내로남불’도 얘기해야 맞다. 이 글에서는 ‘K-양극화’를 양극화로 대신 쓴다. 하지만 ‘K-상생모델’은 정책 처방이기에 ‘한국적’ 특성을 반영할 통로를 남겨놓기 위해 ‘K-상생모형’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 역시 잘못 된 개념이다.

O 모든 정책 실패 ‘코로나-19’로 가리려는 가

이낙연 대표의 제안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선후가 뒤바뀌었다. 만약 ‘코로나-19 펜데믹 현상으로 양극화가 초래했다면’ 이 대표의 제안은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우리 사회는 ‘이미’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온 ‘고용의 질’ 악화와 정규직의 ‘급격한 임금 인상’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결정적으로 ‘자산 양극화’를 초래했다.

눈물로 끌어올린 ‘최저임금’의 이익은 집값 상승에 의해 잠식되었다. 최저임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을 경우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이 문재인 정권 들어 37년에서 43년으로 (2020년기준) 길어졌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최저임금근로자의 등골’을 빼먹었다 하더라도 과장이 아니다. 집을 갖지 않은 사람은 이제 당분간 집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양극화이다.

‘영끌 모아 주식투자’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만 외톨이가 되었다’는 상실감(FOMO, fear of missing out)으로 그들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주식시장은 유동성 장세에서 실적 장세로 회귀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한 일부 개미는 ‘회복 불가’의 손해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낙연 대표의 제안은 코로나 승자와 패자 간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코로나-19 와중에 돈을 번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은 당위로 비춰지지만 해석상 복병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 돈을 벌어 다른 누군가가 돈을 벌지 못한 것”으로 왜곡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예측하지 못한 충격이다. 하지만 변화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변화라는 바람은 누구에게는 ’순풍‘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역풍‘이다. 누군가 건강해서 다른 누군가 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처지가 곤궁해지면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없지 않아 있다. ’코로나-19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주장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돈을 잃었다면 양극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로 모든 사람의 소득이 줄었다면 경제는 말 그대로 ’폭망‘이다. 코로나 와중에 돈을 벌고 흥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경제가 굴러갈 여지가 생긴 것이다. 양극화는 대단히 조심해서 써야 한다. 그 자체가 증오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술혁신이 이뤄지면 이를 주도한 사람은 돈을 벌게 되어 있다. I-phone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가 돈을 벌었다. 이도 양극화이다. 역동성이 가져온 ’선한 양극화‘인 것이다.

O 연대와 협력으로 공동체 회복을 꾀하자는 아름다운 말들

이낙연 대표는 “양극화 대응은 주로 재정(당국)이 맡는 게 당연하지만, 민간의 연대와 협력으로 고통을 분담하며 공동체의 회복을 돕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정부는 왜 존재하는 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전염병 창궐 등의 비상사태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 가. 그동안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 성공적 이었는 가. 아니다. 낙제점, F 학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낙연 대표 나아가 문재인정권은 말할 자격이 없다.

<그림-1>에서처럼 코로나 관련해 그동안 지출한 그리고 지출 예정 재난지원금은 무려 51.5조원이다, 처음부터 재난지원 내지 재난위로 대신 ‘피해구제’로 접근했어야 맞다. 4차까지 재난지원금을 뿌린 뒤에야 ‘자영업 및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리 했어야 맞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피해 당사자(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손실을 보전해 주는 것이 양극화 대책인 것이다.

<그림-1>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 상황

위로금, 지원금 등은 정책효과를 내지 못한 ‘헬리곱터 돈’인 것이다. 전(全)국민을 대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살포한 1차 재난지원금은 14.3조원이다. 뿌려진 돈의 30%만 소비 지출되고 나머지는 개인의 빚을 갚거나 저축을 하는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한국개발연구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가, 결국은 후손에 물려줄 빚이다.

이낙연 대표는 민간에 손을 벌리기 전에 정부의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 사과를 안 하기 때문에 ‘무오류의 함정’에 빠졌다는 힐난을 듣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의 말을 들으면 민간의 연대와 협력이 부족해서 양극화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대표에 실망이 깊어진 이유는 그가 내 놓은 양극화 완화대책이 허구적이고 안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사여구를 동원했지만 핵심은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만 18세까지’ 지급하자는 것이다. ‘미개한 나라’를 작정하고 18세 청소년을 아동 취급한 것이다. 사회적 마약을 뿐리는 현금 살포가 정책일 수는 없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민간의 연대와 협력’은 기본적으로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이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연대와 협력을 지휘하지 말아야 한다. ‘연대와 협력이 지고지순한 사회적 가치라면’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을 누릴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국가는 몰락했다. 중생대의 초식공룡이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멸한 것처럼.

O 대학생 레포트 수준의 “협력-이익-공유 선순환”의 민주연 보고서

“협력해야 이익이 생기고, 이익을 공유해야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일한 현실인식이 아닐 수 없다. 협력하면 이익이 생기는 가. 그렇다면 관(官)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절로 협력한다. ‘협력업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 가. 시장작용은 여기까지다. 이익은 그들 간의 사적 계약에 의해 기여분대로 나 뉘어진다. ‘이익공유제’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다. 이익을 어떤 기준에 따라 나눌 것인가. ‘2인3각’ 경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유수 기업들은 이익공유 대신 ‘상생경영’이란 이름으로 실행가능한 ‘성과공유’를 해왔다. 공정개선을 위해 모기업이 협력업체에 기술 지도를 하고 실물투자까지 지원했다. 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도 상생경영의 일환이다. 하지만 ‘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은 사회주의 발상이다.

상생모델로 흔히 거론되는 ‘플랫폼-파트너 협력 모델’도 성과공유이지 이익공유가 아니다. 4차 산업 혁명기의 경쟁의 기본단위는 ‘플랫폼-파트너’의 한 덩어리다. 따라서 그들은 공동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력한다. 하지만 손익계산서를 합치는 의미의 이익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서로 협력하되 사적계약에 기초해 자신의 기여분 만큼 가져가는 것이다.

O 에필로그: 위기극복에 편법은 없다

이익공유는 체제를 허무는 위험한 발상으로 ‘K-상생협력’의 지렛대도 방아쇠일 수 없다. ‘K-상생협력’도 어폐가 있다. 상생협력의 어떤 내용이 한국적이기에 ‘K-국가브랜드’를 붙이겠다는 것인지 이해 불가이다.

일각에서는 공동체에 대해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이해관계자(노·사·정 등)들이 함께 하는 ‘사회적 기금’ 조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증세(增稅)가 숨어있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각각 일정비율 높이자는 것이다. 그럴 거라면, 증세를 하자면 된다. 증세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우니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세계잉여금’을 사회연대기금으로 돌리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세계잉여금을 우선적으로 교부금 정산, 공적 자금 상환, 국가 채무 상환, 국가 배상 등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법치를 허물고 재정을 ‘영끌 해’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자는 주장이 정상적인 사고인지 묻고 싶다.

문재인 정부 들어 코로나19 창궐 전에 이미 양극화는 심화됐다. 그리고 재정을 수단으로 한 코로나-19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정상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익공유제가 ‘K-상생모델’ 일수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식에 부합하는 친시장적 조치를 취해야 경제가 정상화된다. 코로나 와중에 공정경제3법과 중대재해방지법을 것이 정상적인 국가인 가?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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