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에 최적화된 국내 중소기업의 주사기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았지만 정작 정부는 외국기업 주사기를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7일 ‘풍림파마텍’이 개발한 ‘LDS(최소주사잔량) 주사기’가 이날 새벽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질병관리청은 같은 날 일본이 제때 확보하지 못한 '코로나19' 백신 주사기를 4000만개 도입계약을 했다고 발표했다.

풍림파마텍 지원한 중기부와 백신 주사기 구입한 질병관리청 엇박자

풍림파마텍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아래 삼성전자와 협업해서 FDA승인 백신주사기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일본에서도 7500만개를 주문했고, 미국 및 유럽 등의 선진국 뿐만 아니라 중동과 동남아 국가에서도 주문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질병관리청은 품질이 보장된 풍림파마텍 주사기 대신에 외국산 백신 주사기를 대량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질병관리청이 정보를 공유하지 못해 엇박자를 냈다는 분석이다.

풍림파마텍은 최소주사잔량(LDV·Low Dead Volume)을 적용한 백신 접종용 특수 주사기 제조 기술을 보유한 회사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백신 주사기는 주사 잔량이 84㎕(마이크로리터) 이상 남는 일반 주사기와 달리, 4㎕ 정도만 남는 게 특징이다. 여타 LDV 주사기가 25μL를 남기는 것을 4μL까지 줄였다. 일반 주사기로는 코로나 백신 1병당 5회분까지만 접종할 수 있는 반면, 풍림의 LDV 주사기를 이용하면 1병당 6회분 이상이 가능하다. 이 주사기를 사용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코로나 백신을 20% 증산하는 셈이 된다.

풍림파마텍의 관계자는 17일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LDV 주사기는 버려지는 백신 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스톤과 바늘 사이의 공간이 거의 없도록 제작된 특수 제품이다. ‘LDS(Low Dead Space) 주사기’라고도 한다”고 설명했다.

풍림파마텍 주사기는 주사잔량 성능 외에, 찔림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가드 기능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해외 백신회사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주사기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주사기 몸체와 바늘이 붙어 있는 기존 제품과 달리 ‘루어락’(Lure-Lock·주사기와 바늘 분리를 막는 장치) 형태로 쉽게 분리해서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삼성 지원 받아 월 생산능력 400만개서 1000만개로 증가

화이자 등 외국의 백신회사들이 풍림파마텍 측에 주사기 공급이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해 왔지만, 문제는 생산량이었다. 1999년에 설립된 풍림파마텍은 주사기와 시술용 기계 등을 국산화하면서 기술력을 쌓은 강소기업이지만, 대량생산 체계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풍림파마텍이 생산 가능한 LDV 주사기는 월 400만개 정도에 불과했다.

이 때 중기부와 삼성전자가 도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기술탈취를 우려하던 풍림파마텍도 중기부와 삼성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스마트공장 도입을 결정했다. 조희민 풍림파마텍 대표는 “기업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중기부의 제안을 수용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 공장을 통해 주사기 생산을 위한 시제품 금형 제작을 지원했다. 30여명의 삼성전자 소속 제조 전문가들이 풍림파마텍에 파견돼 주사기 사출 생산성부터 자동화 조립, 원자재 구분관리, 물류 최적화 등 생산 전 공정의 효율화를 도왔다. 중기부는 양산 설비 신규 구축에 따른 자금난 해소를 위한 전용대출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그 결과, 월 400만개에 불과하던 풍림파마텍 LDV 주사기의 생산량은 월 1000만개로 2.5배나 증가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삼성전자 등 민관이 힘을 합쳐 지원한 결과였다. 조미희 부사장은 “일반적인 지원으로는 이런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며 “삼성과 한 팀처럼 일해 중소기업이 겪는 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주사기 대란 겪은 일본은 7500만개, 미국은 1억 8000만개 각각 주문

풍림파마텍 주사기는 17일 새벽 미국 FDA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게 돼, 해외 수출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됐다. 특히 전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용 특수주사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17일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일본만 해도 ‘백신 주사기’를 확보하지 못해 낭패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애초 화이자 백신 1병당 6회 접종을 전제로 구매를 했지만, 이에 알맞은 특수주사기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1병당 5회 접종으로 방침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지지통신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병의 접종 횟수를 6회에서 5회로 줄여 1회분이 남는 문제에 대해 "사용되지 않는 것은 폐기된다"고 말했다. 일본내 공급 계약된 화이자 백신 7200만명분 중 약 1200만명분을 폐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풍림파마텍 관계자는 "미국에서 이미 1억8000만개의 주사기 주문이 들어왔으며, 일본에서도 7500만개의 주문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달 내로 주문받은 주사기 수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질병관리청이 구입한 백신 주사기 ‘국적’은 아직 불투명

풍림파마텍의 낭보가 전해진 17일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4000만개를 1월말 계약 완료했다"며 "다음 주부터 시행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예방접종에도 이 주사기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펜앤드마이크는 질병관리청이 계약한 LDS주사기가 풍림파마텍의 주사기인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뷰를 시도했다. 질병관리청의 브리핑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한 제품인지, 아니면 국내 중소기업인 풍림파마텍의 제품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17일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까지 보냈으나, 담당자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풍림파마텍의 관계자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다. 담당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담당자는 지금 바빠서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질병관리청이 외국산 주사기를 수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산 제품이라면 기자의 전화나 문자에 답을 안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펜앤드마이크는 질병관리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품질 좋은 국산 주사기 놔두고 비싼 외국산 구입했다면 중대한 행정착오

미국 FDA를 비롯해 외국 백신 제조회사들이 인정한 우리나라 강소기업인 풍림파마텍의 주사기를 계약하지 않고 외국산 주사기를 계약했다면,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질병관리청이나 정부는 지금껏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구매계약을 했다는 내용만 알릴 뿐, 구매 금액에 대해서는 밝힌 적이 없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말 백신 구매가 늦어진 데 대해 질타를 당한 정부는 서둘러 백신 구매 계약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구매 금액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좋은 조건에 구매하기 위해 계약을 미룬다는 발표를 중대본 관계자가 한 적이 있지만, 지난 연말의 사정으로 볼 때는 오히려 급행료를 내고 더 비싼 가격에 구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LDS주사기 역시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국내 강소기업의 주사기를 외면하고 타국의 주사기를 비싼 값에 수입했다면 큰 문제로 지적된다. 풍림파마텍과 공급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면, 부처 간 엇박자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다. LDS주사기 생산을 권장하고 독려한 중기부 따로, LDS주사기를 구매한 질병관리청 따로라면 정부 부처간 소통부재는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중국산 LDS 주사기를 수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라고 강력 비판했다. 정부가 FDA로부터 승인받은 질 좋은 국내산 주사기를 외면한 게 사실이라면 중대한 행정착오라는 것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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