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두 번이나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주도했던 검찰 고위급 인사 과정에서 배제된 데 따른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신 수석의 개인적 불만 표출이라는 '단순 사건‘이 아니다.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해소하려던 문 대통령, 백운규 영장 청구 보고 마음 바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와 같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열려 있는 한, 그 수사를 막아줄 방패검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추미애 시대'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그게 신 수석의 사표 파동이 던진 메시지이다. 즉 추미애 전 장관이 기용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유임은 앞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도하는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권력개입 의혹 수사를 막기 위해 온 힘을 동원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문 대통령은 당초 청와대, 법무부, 검찰 간의 비정상적인 갈등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신 수석을 기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가 지난 4일 백운규 산업부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청와대 기류는 급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미애 시대에 약진한 이성윤 지검장 등의 역할이 더욱 절실해진 것이다. 비록 백운규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지만, 월성 1호기 원전 조기폐쇄 과정에서 청와대의 권력이 개입한 의혹은 집중적인 수사 대상이 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추미애 전 장관과 이성윤 지검장과 같은 돌격대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에 문 대통령과 권력 핵심이 공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약속 안 지킨 문 대통령 떠나려는 신현수 민정수석, '박-윤 갈등' 예고

신 수석의 거듭된 거취 표명과정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즉 '박범계-윤석열 간 갈등'이 예견된다. '추-윤 갈등 2탄'이 재연되는 것이다.

신 수석은 9일 사의를 처음 표명했고 문 대통령은 10일 신 수석의 사표를 반려했지만, 신 수석은 설 연휴 이후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신 수석은 16일에도 '사표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며 확고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신 수석이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을 제의받았을 때, 여러 약속들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검찰 인사에서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않자,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신 수석을 둘러싼 민정수석실의 분열 양상은 일요일인 지난 7일 박범계 장관이 검찰 고위급 인사안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검찰 간부급 인사가 일요일에 발표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이다. 윤석열 총장은 언론에 발표되기 몇 분 전에 참모를 통해서 인사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신 수석과 윤 총장은 인사안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던 중이었기 때문에 신 수석으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검찰 인사는 실무적인 차원에서는 법무부의 검찰국장과 대검 차장,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논의를 한다. 상위 책임자로는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민정수석이 개입한다. 형식적으로는 법무부 장관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게 된다.

친문핵심의 위기의식, 박범계-이광철 핫라인 개통시켜

그런데 여기서 신 수석과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생각하는 인사안이 달랐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백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를 '청와대 겨냥'으로 해석한 박범계 장관과 친문세력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를 막을 ‘방패검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따라서 박 장관은 신 수석을 제외하고 친(親)조국 라인으로 불리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검찰 인사를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추미애 전 장관을 사실상 경질하면서 윤 총장과 관계를 개선해보려는 의지를 밝혔지만, 검찰이 원전 수사에 속도를 내자 부정적 기류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친문핵심의 위기의식이 박 장관과 이광철 비서관 간의 핫라인을 개통시켰다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과 신 수석 간 각별한 신뢰 관계, 조국라인 이광철이 끊어

지난해 12월말 신현수 민정수석이 임명될 때만 해도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총장과 청와대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신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많을 뿐 아니라, 윤석열 총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각별한 신뢰관계를 조국 라인인 이광철 비서관이 끊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할 당시, 신 수석은 사정비서관으로 함께 근무했다. 2017년 대선캠프에서는 법률지원단장을 했고, 현 정부 들어서는 국정원의 기조실장을 했다. 그 정도로 대통령과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31일 신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임명될 당시, 문 대통령이 신 수석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이뤄진 인사였다고 전해진다.

문 대통령이 검사 출신을 배제했던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신 수석을 임명한 이유는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완충'하는 역할을 신 수석에게 기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 수석 임명 이후 문 대통령의 입장은 많이 완화된 것으로 보여졌다. 1월 18일 기자회견에서는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파격 발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백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로 급반전되면서, 신 수석은 자신이 지휘하는 이광철 민정비서관에게 패싱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신 수석 입장에서는 직접 전화를 하면서까지 수석 자리를 부탁한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신 수석은 민정수석 자리를 수락하기 전부터 '추미애 전 장관이 주도했던 윤석열 몰아내기를 비판'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또 문 대통령에게도 이런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맡겼다. 바로 이 점에서 청와대와 윤 총장 간 화해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당시 노영민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며 사법개혁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국민을 위한 법무 검찰 개혁 및 권력기관 개혁을 안정적으로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훈훈했던 민정수석실의 분위기를 깬 주인공이 이광철 비서관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일 발표된 '이성윤 중앙지검장 유임과 심재철 검찰국장을 남부지검장으로 영전시키는 인사'안을 이 비서관이 문 대통령에게 들고가서 결재를 받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비서관이 수석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민정수석실 내부 갈등설을 일축했다.

박범계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도 시험대, 월성 원전 수사팀 손 볼 듯

하지만 야권에선 “신 수석 이전의 청와대 민정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이광철 비서관 뒤에 있는 조국 전 장관이 아직도 청와대를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광철 비서관 뒤에 있는 조국 전 장관과 친문(親文) 세력이 결국 문 대통령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신 수석의 사표가 수리될 경우, 현 정권과 검찰 관계는 또다시 추 전 장관 시절의 갈등 국면으로 완벽하게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조국·추미애 라인'이라 불리는 친(親)정권 성향 검찰 간부들이 기존대로 정권 수사를 막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 장관이 단행할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월성 원전 수사를 맡아온 대전지검 형사5부 등과 같은 '정권 비리 수사팀'을 어느 정도 손볼 것인지 주목된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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