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선택한 쿠팡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한국과 달리, 의결권을 차등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미 증시 상장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바탕으로 투자와 고용에 집중할 수 있어 '한국 패싱'을 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업계에선 반(反)대기업, 반(反)재벌 정서에 기반한 자본시장 제도가 국내 최강의 온라인 쇼핑몰인 쿠팡을 해외 상장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증건거래위원회(SEC)에 클래스A보통주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S-1)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의장 보유 주식(클래스B)의 1주당 의결권은 일반 주식(클래스A)의 29배에 이른다. 1주당 1의결권 원칙에는 반하지만, 경영권 방어엔 효과적이다. 지분 1%로 29%를, 지분 2%로 58%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재벌의 편법 세습에 악용된다는 이유로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국 중 17국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두고 있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들은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초다수의결제, 황금주 등 다른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고 있어 재계는 매년 정치권에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고 읍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국회에선 차등의결권과 관련한 법안이 계류 중이지만, 이마저도 대기업을 제외한 벤처기업에 한해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벤처기업이 성장해 대기업이 되면 차등의결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차등의결권이 원칙에 반하고, 일각의 재벌의 편법 승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에서 전면 도입된 이유는 자기 소유의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자본 조달시 주식의 대량 발행은 불가피하기에 그에 따른 경영권 강탈을 막기 위해서다. 

또 자사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문제로 인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고도 고용과 투자는 악화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거론된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외부 투기 세력이 공격하기 힘든 복잡한 지배구조로 인해 그나마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지만, 2003년 SK와 소버린, 2006년 KT&G와 칼 아이칸, 2015년 삼성물산과 엘리엇 사태 등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에 마땅한 경영권 방어수단 부재로 고역을 치뤄야했다. 

이처럼 자본력을 등에 업은 세력의 경영권 공격에 고용과 투자는 악화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일반 서민들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져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단순한 '재벌 옹호' 논리라고 보긴 어렵다는 진단이다.

나아가 차등의결권과 관련해 재계에선 대다수의 재벌이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어 편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두고 반(反)재벌 정서에 기반한 한국적인 제도가 범죄를 만들어낸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정작 재계에선 한국의 경영권 방어수단 부재가 '한국 패싱'을 낳았다는 우려섞인 지적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소식이 전해지자 기업가치가 500억 달러(약 55조4000억원)를 넘길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2014년 세계 최대 온라인 플랫폼인 알리바바그룹 이후 가장 큰 외국 회사의 IPO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미난 점은 알리바바 또한 차등의결권 혜택을 얻기 위해 뉴욕증시에 상장했다는 점이다. 당초 알리바바는 2014년 당시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아닌 홍콩거래소(HKEx) 상장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1주당 1의결권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자 홍콩거래소 상장을 포기했다. 이후 알리바바는 뉴욕증시에 2014년 상장, 약 25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받았다. 홍콩은 2018년에 차등의결권을 허용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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