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부산高法 부장판사 사표 제출 사실 없었다"...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에
판사들 "이 사태 그냥 뭉개고 넘어가면 떨어진 권위 어떻게 회복하나?"...사퇴 요구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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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일선 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이 국회에서 이뤄진 가운데, 초유의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최소 세 차례 거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법관 탄핵’을 가능케 하도록 김 대법원장이 묵시적으로나마 협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도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 부장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 의사를 표명하며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김 대법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면담 요청을 한 것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인 지난해 4월 말이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김 차장을 통해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며 “면담은 임 부장이 수술을 받고 나서 하자”는 의사를 전했다.

임 부장판사는 이어서 지난해 5월22일 재차 사의(辭意)를 밝히고자 김 대법원장을 직접 찾아갔다. 문제의 ‘녹취’가 이뤄진 것은 이때였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정치적 상황을 포함해) 여러 영향을 생각해야 하고,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는데, (임 부장의) 사표를 내가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느냐”며 “오늘 그냥 (임 부장의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이야기를 못 한다”고 말했다.

이때는 원(院) 구성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탄희·이수진 등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던 판사 출신 초선 의원들이 “사법 농단 판사를 탄핵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책임 방기”라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가졌을 뿐 당 차원에서 ‘법관 탄핵’을 밀어붙이던 시기는 아니었다.

임 부장판사가 세 번째로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김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은 지난해 12월14일이었다. 임 부장판사는 2월 초로 예정된 정기 인사에 맞춰 물러나면 후임자 인사(人事)를 할 수 있어 인사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정기 인사 때 나가고 싶다”는 뜻을 김 대법원장에게 전했다. 하지만 김 차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대법원장의 뜻”이라며 2월28일 임기 만료 때 나가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무렵 법원은 소위 ‘드루킹 사건’으로 알려진 ‘댓글 조작’ 사건 항소심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2020년 11월6일)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직무정지’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윤 총장의 요구를 인용(2020년 12월1일)하고 직무 복귀시키는 등의 결정(2020년 12월24일)을 했다.

이 때문에 여당 내부에서는 법원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 거부 의사를 표명한 지 9일만인 12월23일 이탄희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임성근을 탄핵하겠다”고 밝혔으며, 결국 올해 들어 민주당은 지난 1월27일과 28일 의원총회를 열고 임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 추진을 공식화했다.

당초 김 대법원장은 “탄핵”을 운운하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는 국내 매체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지만 임 부장판사 측이 김 대법원장의 육성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김 대법원장의 해명이 결국 거짓말이었음이 들통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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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법원종합청사.(사진=박순종 기자)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이 정국(政局)을 강타한 가운데 판사들 사이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법원 인트라넷(코트넷)에 마련된 익명 게시판에 글을 남긴 어느 판사는 “이 사태를 그냥 뭉개고 넘어가면 떨어진 권위는 어떻게 회복하나요? 사퇴 안 하시고 뭉개면 지금의 비웃음이 계속될 것 같아 너무 창피합니다”라고 적었다.

다른 판사는 “형사재판 하면서 증인들에게 만날 하던 말들이 기억난다. ‘기억이 없으면 없다고 해라. 괜히 거짓말하면 위증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만날 남의 진실을 판단하느라 그랬는데, 허무하다”고 쓰기도 했다.

또 다른 어떤 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사퇴하는 경우 현(現) 정권 코드에 더 ‘찰떡’인 분이 임명될 수도 있지만, 국민 앞에 대법원장이 이렇게까지 망신당할 일을 만든 이상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라고 적었고 “’사퇴도 못 할 것 같다. 정치권 눈치 보느라.’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고 참담했다”는 의견을 낸 판사도 있었다.

한편, 법원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사법부 중립성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전국법관대표회의에 회부해 중지(衆志)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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