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그와 대화할 때는 녹음기를 켜놔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맡은 이후인 2016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민주당 대표가 했다는 발언이다. '당대표 추대론'을 두고 벌어진 두 사람 간의 불씨였는데, 5년 만에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 바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을 통해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현재 처한 문제의 핵심은 '법관 탄핵 방조'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을 의석수로 강행, 4일 오후 통과시켰다. 입법부에 의한 정치적 외풍을 막아야 할 사법부 수장이 이를 모른척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은 앞서 "탄핵 문제로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는데, 녹취록이 공개되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탄핵 방조 의혹'의 핵심 증거나 마찬가지인 녹취록이 공개됨에 따라 하루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다음은 녹취록 일부다.

▲ (임성근 판사)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그 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

▲ 톡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는 말이야.

▲ 일단은, 정치적인 그런 것은 또, 상황이 다른 문제니까.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이 지난 2018년 9월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이 지난 2018년 9월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법부 수장의 발언에 따르면 임 판사 탄핵 사태에 대해 그는 '법률인 것'이 아닌 '여러 영향'을 생각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적인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인식이 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난다. "내가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는 발언에서 그가 살핀다는 '정치적인 상황'의 정체가 엿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에서 '사법부 수장이 정치권 눈치를 봤다는 지적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다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눈치를 보지 않는다"라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번 '말바꾸기 사태'를 두고 5년 전 "그와 이야기할 때에는 녹음기를 켜야 한다"는 정치권 발언이 재조명됐다.

5년 전인 2016년 4월, '민주당 대표 추대론'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 당시 비상대책위원은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종인 민주당 대표(당시)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 당시 민주당 전 대표를)만나면 녹음기를 가져와야 되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밝혔다. 당대표 추대론을 두고 벌어진 두 사람간 불협화음에 대한 표현이었는데, 그 '녹음기 발언'은 비단 문재인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출근길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과 관련해 국민에 사과하겠다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 = 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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