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휘국 교수] 한국의 문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고/김휘국 교수] 한국의 문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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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에 기여 못하면 문명 정체된다.
文정권의 사회주의 표방은 국가적 자살 행위
역사적 퇴물인 사회주의를 깨어있는 한국인들에게 적용하겠다는 망상
韓美동맹까지 완전히 망가뜨리면 국민들이 반드시 단죄할 것
김휘국 워싱턴 버지니아 대학 교수
김휘국 워싱턴 버지니아 대학 교수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은 자유민주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여 오늘의 안정과 번영을 이룩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뿌리를 둔 운동권 세력이 그 하부 조직을 동원하여 일부 언론과 합작해서, 보험 회사가 처리할 세월호 해상사고를 이용하여, 공산당 선전선동 수법으로 정부를 규탄하고 민심을 자극하여 대중을 시위에 동원 하였다. 이에 기회주의 정치인과 사법부가 합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하였고, 곧 바로 출범한 문 정권은 한미동맹을 멀리하고 친북-친중 노선으로 한국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 시키려고 정치적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을 바로보기 위하여, 사회주의 사상이 풍미하던 19세기 서구 문명을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간략히 살펴 보고 교훈을 얻으려 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 Adam Smith의 국부론 (1776)은 우리에게 두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하나는 자원의 배분에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이며, 다른 하나는 전문화를 위한 분업 (the division of labor) 이다. Smith가 발전시킨 두 가지 개념 -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과 노동의 전문화 - 에 추가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농업혁명과 제1차 산업혁명을 가져왔다. 역사에서 무수한 인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과 예술 분야에 종사해 왔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기능력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극소화 할수있는 분야에 인력이 자연 스럽게 배분 된 것이며, 각 개인이 선택한 분야에서 분업을 통하여 자기 전문화로 창의적 능력을 극대화 해서 생산성을 증대한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David Ricard는 국가 사이에 비교우위 상품교환 (Exchange) 은 상호간에 득이 된다고 보고 그의 정치경제 원칙과 세제 (1817) 에서 자유무역 이론을 발전 시켰다. 영국과 프랑스등 유럽 국가들은 원자재를 식민지에서 들여와 공산품을 생산하여 그들에게 공급 함으로서 국제 무역을 통해 생산가능전선 (Production Possibility Frontier) 을 확대 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과 병행하여, 19세기의 정치는Napoleon전쟁 이후 자유주의와 국가주의, 산업혁명과 사회주의, 그리고 통일국가의 정립과 제국주의 등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면 누가 인류문명을 계속 끌고갈 것인가? 지금까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다음세대 문명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우리가 생을 마감한다면, 인류 문명은 정체되어 발전할수 없을 것이다. 각자가 문명에 기여 할수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수 없지만, 자신이 다음 문명을 위해 아무 것도 할수 없게 된다면, 이는 마치 남으로 부터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하는 (to take advantage but not to give) 파렴치한 사람처럼, 뜻이있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인생이 되지 못할 것이다. 만일 현존하는 개개인이 문명의 발전을 외면하여 이에 기여하지 못하고, 한국의 좌파들 처럼 역사의 흐름에 역류한다면, 인류문명은 오히려 퇴조하고 말 것이다. 문명의 발전을 저해 지연시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식들을 선진국에 유학을 보내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고, 이러한 양심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좌우토록 하는것은, 한국 문명이 후진성 이라 하겠다. 다음에서 한국의 사회주의와 관련하여19 세기에 발전한 정치사상 – 국가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 - 의 배경을 간략히 살펴본다.

자유주의와 국가주의: 19세기 역사에 들어가면서 필자의 가슴속에 제일 먼저 뭉클하게 와 닿는 것은, 1815년에 워터루에서 패전하여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 가기 전까지, 15년간이나 프랑스의 최고 존엄으로 유럽을 지배하던 Napoleon Bonaparte 의 유산 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이 나던 1789년에 20세 청년 포병장교로서 육군 대위가 되었고, 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24세에 준장으로 승진한다. 그후 이태리 방면군 사령관, 이집트 방면군 사령관을 거쳐 1899년에 프랑스 공화국 제1집정관으로 추대되어 실권을 장악하고, 1804년에 35세의 젊은 나이로 프랑스 황제로 등극 한다.

수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유럽을 지배하였고, 다만 영국과는 프랑스 해군의 약세로 인해 대륙 봉쇄로 무역억제 전략을 취하였으나 밀 거래를 막을수 없었다. 그는 영국과 스페인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하여 1806년에 스페인을 공략 하였으나 게릴라 전으로 고전하여 200,000 병력이 묶이게 되었고, 1812년에 865,000을 동원하여 러시아를 공략 하였으나, 모스크바 초토작전으로 인해 겨우 70,000 못되는 병력이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그의 러시아 공략은 전략적 과오 였으며, 스페인과 러시아에서 동서 양면전쟁을 한 것은 더큰 과오였다. 그가 Paris 에 돌아와 재기를 시도 하였으나 결국 1814년 엘베섬으로 유배 되었고, 1815년 탈출하여 100일 천하를 하였으나 패하여, 대서양의 고도에 유배되어 6년 뒤에 51세로 생을 마감한다.

Napoleon은 젊어 활력이 넘쳤고, 구질서를 대치하여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바른 원칙을 가진 정부가 프랑스 혁명정신에 입각한 법 (The Civil Code) 에 의해 다스려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개인의 자유 - 기회의 평등 - 성과주의 - 이상에 합당한 통치 - 종교의 자유 - 현대 공교육 - 화폐와 도량형의 표준화 등을 추구하였다. 또한 합리적인 지방행정, 시골의 약탈 금지, 과학과 예술의 중흥, 봉건제도의 폐지, 교회 재산의 몰수 및 재분배 등을 실천 하였다. 중세 길드제도 를 폐지하고, 농노를 해방하고,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주를 허용하였다. 또한 Napoleon 전쟁의 유산으로 프랑스 군사 체제가 발전 하였고, 군대의 규모가 커지고 정신 무장이 강화 되었다.

Napoleon은 계속적인 전승으로 인해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과 애국심을 고양 시켰고, 그와 반대로 나포레옹에 정복당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의 국민들은 자국 독립의 소중함을 실감하여 애국심을 자가 발전 하게 되었다. Napoleon전쟁은 유럽에 자유주의 (Liberalism) 를 전파하였고, 국민이 국가로 부터 보호받는 국가주의 (Nationalism)를 불러왔다. 나폴레옹 몰락 후에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영국 등의 전승국들이 1814 Vienna 회의에서 1789년 이전의 구 왕정 체제로 환원할 것을 결정하였으나, 유럽은 이미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혁명의 물결이 넘쳐 흘러 되돌아 갈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해외 식민지는 독립을 쟁취 하였고, 유럽 전역에는 산업혁명의 기운으로 인하여 사회주의 사상이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 계층을 파고 들었다.

산업혁명과 사회주의: Napoleon 전쟁이 끝나 문호가 개방 되면서, 영국에서 개발한 산업 기술이 유럽 제국에 전파되고, 축적된 자본으로 이윤이 생기는 곳에 큰 장벽 없이 투자 되었고,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여 경비절감으로 산업화 (Industrialization) 가 촉진되었다. 농촌의 노동자들이 도시의 공장지대로 구직을 위해 모이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만해도, 도시의 노동자 계급은 인구의 80%나 되었는데, 정규직 일자리는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당하였다. 따라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보통이였고, 그들의 주거환경은 열악 하였으며, 위생상태도 좋지않아 1841년에 농촌의 평균 수명이 45세였는데, 런던은 겨우 37세 였다. 아이들이 직물공장에서 값싼 임금으로 일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산업화로 인하여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소득차가 심대해지니,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이 유럽 여러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영국은 의회가 개혁 입법 (the Reform Acts)을 1832년 부터 수회에 걸쳐 통과 시켜 개선해 가는동안, 프랑스는 노동운동이나 민주화 욕구를 억누름으로서, 1848년 혁명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여 Napoleon III 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848년 Marx 와 Engels 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우리의 역사는 계급투쟁 역사이다."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자본가 계급을 부셔 버리고, 국가가 생산수단을 통제하여 생산성을 증대해야 한다." "공산주의 혁명에 지배계급이 떨게하라. 노동자 계급은 쇠사슬 외에는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 그들에겐 승리할 세상만 있을 뿐이다. 노동자 계급이여 단결하라!" 고 사회주의 (Socialism)를 전파하고 노동자 계층을 향해 선전 선동을 하였다. 또한 Marx 는 그의 자본론 (1867) 에서,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기업이윤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Marxism 은 Lenin 에게 승계되고, 1917 러시아 혁명이 성공 하였고, 그후 1924년 중국의 모택동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이, 19세기에 풍미했던 사회주의 이념은, 맑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하여,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투쟁에서, 노동자 계급이 독재정권을 수립하여 사유재산을 국유화 함으로서, 국가가 생산-소비-분배를 통제하여 가난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려 하였다. 러시아 에서는, 독일의 지원을 받은 Lenin이 혁명에 성공한 후, 국가가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공산혁명을 시험 하였다. 그러나 점차 생산성 저하로 인하여 경제가 정치군사적 체제를 지원할 수가 없게 되어, 1980년대 후반에 고바체프는 공무원에게 봉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법과 질서를 유지 하지 못하였고, 결국 1991년에 소련 연방체제가 붕괴하여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 되었다.

통일국가의 정립과 제국주의: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은 국가로서 통합되지 못하고, 신성 로마제국 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수많은 독립국으로 오랬동안 분할되어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는 로마의 교황청이 교주이며 군주로서 오랬동안 유럽 정치에 간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오면서,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방해해 왔다. 1815년 부터 오스트리아가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하였는데, 1859년에 프랑스에 패전하여 롬바르디에 있던 오스트리아 점령군이 베네치아로 철수하자, 가리발디가 시실리에에 상륙하여, 해협을 건너 네이플스를 점령하여 사보이 왕에게 그의 군대를 인계 함으로서 이태리 왕국이 수립되고, 베네치아 와 로마를 제외한, 독립국가가 탄생 하게 된다.

한편 비엔나 회의에서 메테르니히 가 주도하여 39개 신성 로마제국 국가들이 독일 연방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866년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 전쟁에 승리하여, 오스트리아를 밀어내었고; 프랑스와 전쟁을 하여 1871년에 파리에서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을 선포한다. 독일은 Bismarck 재상, Boon 전쟁장관, Moltke 총사령관이 삼위일체가 되어, 황제를 보좌 하면서 통일 독일을 중흥시킨다. 베네치아에서 주둔하던 오스트리아 군대는 1866년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전쟁으로 철수하게 됨으로서 이탈리아에 환속되고, 로마도 바로 흡수 됨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완전히 통일을 하게 된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통일 됨으로 인해 유럽은 외교관계 에서, 독일의 영향력이 대폭증가하여, 오스트리아를 넘어서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통일을 하고 국제관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섬으로 인하여, 서로 이해가 얽혀서 국가간 제국주의 (Imperialism) 전쟁이 점차 치열해 지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America, Africa, Asia 에서 활발하게 식민지를 개척해 와서, 후발주자인 독일도 아프리카의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미국도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접경지역의 영토를 확장 하였고,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필리핀을 병합하였다.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침략하여 식민지화 하였고, 러시아는 만주에서 발판을 구축하였다. 제국주의 침략의 대표적 예는 아시아에서 인도나 불령 인도 외에도, 1900년에 베이징에 있었던 중국의 복서 반란으로, 열강의 군대가 중국의 여러지역을 조차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중국은 청조에 반기를 든 민주적 혁명이 여러 지방에서 일어나게 된다. 세계는 제국주의의 연장선 상에서 1914 년에 두개의 축선으로 동맹을 결성하여 제1차 세계대전으로 진입한다.

한국이 배워야 할 교훈: 문 정권이 어떠한 사회주의 형태를 취하던 간에, 패망한 구 소련연방 처럼, 경제적 파탄과 사회적 혼란으로 정권은 몰락하게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문 정권이 사회주의를 표방하여 역사의 교훈을 역류하는 것은 국가적 자살행위 이며 결코 성공할수가 없다. 또한 진실과 정의 (Truth and Justice)는 인류문명을 전진시키는 두 수레바퀴 이다. 언론을 장악하여 진실을가리고 반복된 선전선동으로 국민을 세뇌하는 것은 반 문명적이며, 대중이 한번 속아서 동조 하였더라도, IT 시대에 진실이 전파되는 것은 금방이다. 지난 80년대 군사정권 처럼, 지금 경찰과 검찰을 동원하여 표적수사로 야당을 탄압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이며 한시적인 것일 수 밖에 없으며, 이로인해 곧 역풍이 몰아 칠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규제로 경제를 다스리는 것은 “경쟁을 약화 시키고 독점을 조장하여” 자원의 배분을 왜곡시켜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 같은 선진 우방과 실 시간으로 정보를 교류하며 높은 교육 수준 으로 깨어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지난 역사의 퇴물인 사회주의 이념을 적용하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다. 한미 안보동맹을 기초로하여 지금까지 피땀으로 건설해온 한국의 문명을, 문 정권이 역사의 반대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몰고가는 것은, 무지한 운동권 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탐욕일 뿐이다. 안보와 경제를 파괴하여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해 친북-친중인가? 갑자기 노선을 달리하여 후진국인 중국에 기대면, 국내정치의 혼란은 물론, 대외 관계에서 정치군사적 불신으로 인해, 치명적이며 사활이 걸린 경제적 불이익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한미 안보동맹의 위기: 문 정권은 앞으로 한미 동맹국으로서 중대한 시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오는 5월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즉각적인 핵무장 해제를 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단호한 군사행동에 진입할 것이다. 지금까지 문 정권이 취한 친북-친중 위주의 언동이나, 남북 간의 비밀 접촉, 연합 훈련의 축소지연, 그리고 사드 미사일 배치의 지연등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문 정권이 실제 상황에서, 한미 동맹국으로서 작전 계획에 따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것인가는 미지수 이다. 아마도 김정은의 몰락이 좌파 정권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동맹국으로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 한다면, 한국은 희생을 최소화 하고, 북한 핵과 김정은 정권을 제거한 후 북한 평정 작전에 주된 역할을 하게 될 것있다. 그러나 만일 한국이 동맹의 임무를 팽개친다면, 미국은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것이며, 군사적 비협조로 인해 문 정권은 한국의 희생을 증가 시키고, 전후 처리과정에서 많은 시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적행위를 할 경우, 한국 국민은 우방과 연대하여 이러한 문 정권의 반 국가적 범죄를 단죄하려 할 것이다. 향후 3개월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 한국과 한민족의 미래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김휘국<미국 워싱턴 버지니아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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