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못해 김여정 등 북측 인사로부터 모욕적 언사를 들어온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한 저자세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올해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다”고 명시하면서도 북한을 ‘적’으로 명시하지 못했다.

북한이 최대 ‘적’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

대신에 “우리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과연 문 대통령은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남북간 화해와 협력 기조를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군사안보적으로 북한이 당면한 최대 위협, 즉 ‘적’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더욱이 국방부가 2년마다 발간하는 국방백서는 국방정책을 국민들에게 알릴 목적으로 발행하는 보고서 형태의 책자이다. 여기서 ‘북측의 도발 위협과 남북 관계 상황’ 등에 따라 `주적` 개념은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했다. 군 당국이 지난 2일 발간한 2020 백서에서도 2018 백서에 이어 ‘주적’ 표현은 삭제됐다.

오세훈, “아버지를 아버지로 못 부르는 홍길동인가”

오 전 시장은 3일 자신의 SNS에서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데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전'이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 위협이 여전히 그대로인데도, 우리는 알아서 ‘주적’ 개념을 뺀 것이다"라며 ‘알아서 기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김영삼 정부로 거슬러올라간다. 1994년 남북 군사회담에서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이듬해인 1995년 발간한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을 `주적`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며 한반도 정세가 해빙 무드에 접어들자 `주적` 표현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가중됐다. 그러다가 노무현정부 당시인 2004년부터는 `직접적인 군사 위협` `심각한 위협` 등의 표현으로 순화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초기인 2010년 북측이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 강도 높은 위협을 가하자, 그해 국방백서에서는 북한군을 다시 `적`으로 표기하기 시작해 2018년까지 사용됐다.

우리 국민 무참히 사살해도 ‘적’은 아냐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 삭제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발간된 <2018 국방백서>부터다. 2019년 1월에 발간된 <2018년 국방백서>에서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표현했다. 2년 전 발간된 <2016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과는 분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2018 국방백서>에서 ‘주적’의 개념이 삭제된 것은, 2018년 초부터 급격하게 펼쳐진 한반도 대화 국면이 감안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번에 발행된 2020 국방백서에서도 ‘주적’이 삭제된 것을 두고는 이견이 많다. 2018년의 해빙무드와는 다르게 남북간에 엄연히 온도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북한이 서해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소각한 사건이 있다. 국방백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서해에서 북측 해역으로 넘어간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사망하게 했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고 책임자 처벌과 공동 조사를 요구하는 등 단호히 대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3일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의 총에 의해 사망했음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단 듯’ 넘어가는 이 정권의 비굴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2020년 국방백서 달라진 대목, 저자세와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차

2020 국방백서에서 이전과 달라졌거나 새롭게 추가된 내용 등을 살펴본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저자세와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① 정권세습 대신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으로 표현

2020 백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김정은 통치에 대한 표현 방식의 변화이다. 기존 백서에서는 ‘정권세습’으로 표현했던 것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으로 변경해서 기술되어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세습과 집권이라는 표현의 차이일 뿐, 내용적인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애썼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지 10여 년 됐기 때문에, 주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른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② 남측 주요 시설 모형 타격하는 특수전 부대 위상 강화

특수전 부대의 위상 강화도 예전 백서에는 없던 내용이다. 2020 백서에서는 20만명 규모 특수작전군이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작전군 예하로는 전략적 특수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특수작전대대, 전방군단의 경보병 사·여단 및 저격여단, 해군과 항공 및 반항공 소속 저격여단, 전방사단의 경보병 연대 등이 있다. 최근엔 남측 전략 주요 시설의 모형을 구축해 타격훈련을 강화하고 있고, 특수전 장비도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백서는 밝혔다.

하지만 특수작전군에 대해 별도로 사령부를 편성했거나 사령관을 임명했는지는 식별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백서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특수작전군’을 별도 군종으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③ 미사일 여단이 9개에서 13개로 늘어나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전략군 예하 미사일 여단이 9개에서 13개로 늘어났다. 2019년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판 이스칸데르’ KM-23 등이 배치되면서 부대가 추가편성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군 관계자는 “증편된 부대에 어떤 미사일이 배치됐는지 정밀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백서에 따르면 북한이 2019년 공개한 초대형방사포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분류됐다. 연속 사격을 하는 방사포는 탄도미사일과 기술적 특성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전체 시스템 측면에서 방사포라고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탄도미사일에 가까운 기능을 보인다는 점에서 SRBM으로 규정한다”고 말했다.

④ 북한은 미 서부 공격 가능한 핵탄두 갖추고, 핵무기 소형화도 진척

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 본토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11월 시험발사된 화성-15형 ICBM 사거리는 1만㎞ 이상, 탄두중량은 1t으로 추정된다. 미국 서부지역으로 최대 1t짜리 핵탄두를 쏠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탄두중량이 1t이라는 점에서, 핵탄두 소형화를 달성했다고 평가된다. 백서는 이 부분에 대해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경량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 핵무기 소형화의 정확한 수준은 군 당국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핵물질 비축량 추정도 수년째 ‘플루토늄 50여㎏, 고농축우라늄(HEU) 상당량 보유’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⑤ SLBM 공개를 기술하며, 북미 대화 여지 시사?

국방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을 두고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당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공개하고 전쟁 억제력을 공언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언급 없이 선제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김정은이 강조한 점을 들어, ‘향후 북·미 대화의 여지를 시사했다’고 백서는 기술했다.

이에 대해서 정치권의 관계자는 “미 본토를 위협할 ICBM과 SLBM을 공개한 자리에서 ‘핵무기를 먼저 쓰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북·미 대화 재개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⑥ 일본을 동반자에서 ‘이웃 국가’로 격하

이번 백서에서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가 ‘한일관계의 변화;이다. 2018년 백서에서는 ‘동반자’라고 지칭했던 일본을, ‘이웃 국가’라고 사실상 격하한 것이다. 백서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독도 도발, 2018년 일본 초계기의 한국 함정에 대한 근접 위협비행과 이에 대한 ‘사실을 호도하는 일방적 언론 발표’로 한일 양국 국방관계가 난항을 겪었다는 점을 기술했다. 뿐만 아니라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미래지향적 발전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9년 수출규제 이후 (한일 간) 여러가지 불편한 관계가 있어, ‘이웃 국가’로 정의하는 게 가장 타당하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2020 국방백서 발간으로 한일 갈등이 부각되는 데 대해 존 서플 국방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연합뉴스를 통해 우려를 나타냈다. 서플 대변인은 "더 폭넓은 3국 협력 문제와 관련해 한국, 일본보다 이 지역에서 미국에 더 중요한 동맹은 없다"며 "미국, 한국, 일본의 3국 협력은 북한의 핵, 대량파괴무기(WMD), 탄도미사일 위협 대처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 유지를 포함해 역내 평화와 번영, 안정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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