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시도 비판..."탄핵 제도는 의로운 장검이 돼야 한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판사 출신의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주도한 부산고법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범여권 의원 161명의 명의로 발의되었다. 국회법에 따르면 이 발의안에 대하여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보고하면 본회의에서 의결로 법사위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본회의에서는 법사위에 회부하지 않기로 의결하고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무기명투표로 탄핵 소추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이 탄핵소추를 추진한 사람들의 면면이나 그간 여당이 보여준 행태로 보아서 법사위 회부는 이미 물 건너 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헌법 제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의 신분보장을 헌법에 명시해 둔 이유는 법관의 신분보장이 사법권 독립의 본질이고, 사법권의 독립은 근대 입헌 민주국가의 구성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작동 가능하도록 하는 삼권분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분보장이 오・남용되어서 공직자의 신분보장을 통해 달성하려는 헌법적 가치인 견제와 균형이 오히려 위험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바로 잡을 수 있는 수단 중의 하나가 탄핵이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로마사논고>에서 국가의 자유를 위협하는 시민을 상대로 탄핵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것만큼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을 달리 발견할 수 없다고 극찬하고 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에서 벌어진 탄핵은 당대의 어떤 유력한 자들이 한 때 얻게 된 인기나 힘을 배경으로 동료 시민들 위에 군림하거나 그러한 조짐이 보일 때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그 야심을 좌절시키고 체제를 지켜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탄핵은 상대보다 대등하거나 그보다 약한 자들이 강자를 견제하는 수단이었지, 강자의 약자에 대한 탄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든 제도는 남용될 수 있고 탄핵도 예외는 아니다. 법관의 신분보장이 남용될 수 있다면, 탄핵도 남용될 수 있다. 법관의 신분보장이나 탄핵 제도나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것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이고, 더 나아가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그것은 공화정의 자유 수호에 있다. 이것은 두 제도가 필히 공유해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이나 대법관과 같은 사법부 고위직이 아닌 일선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이 과연 탄핵의 본질에 충실한 것인지 여부부터 따져 봐야 한다. 다시 헌법으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 제106조는 법관이 파면되기 위해서는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또는”은 영어의 “or”에 해당하는 등위접속사이다. 등위접속사를 사이에 둔 양쪽의 말의 무게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법관을 파면하기 위한 탄핵은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와 맞먹는 정도의 실체적 및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법관의 신분을 보장한다는 헌법의 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원래 연혁적으로 보면 탄핵과 형벌 규정을 선택적으로 둔 것은 탄핵의 역사가 보여주듯 그 대상자들이 당대에 힘 꽤나 쓰고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어 형사 소추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임 부장 판사에 대한 탄핵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통상적 사법 절차에 따른 법적 책임 추궁이 불가능하거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 부장 판사에 대하여는 이미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따라서 탄핵을 통해 파면하려면 적어도 이 무죄의 형사 판결 이상의 실체적 논거를 충분히 제시하여야만 한다.

여당은 이 무죄 판결문의 이유에 나온 ‘헌법 위반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를 근거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으나, 이 재판은 피고인의 헌법 위반 여부를 가려서 결론을 내리고자 했던 사건이 아니었을 뿐 더러, 구체적으로 헌법의 어느 부분, 어떤 원리에 반하는지 적시된 바도 없다. 임 부장판사가 형사수석부장으로 재판의 진행과 방향에 대하여 동료 법관으로서 이야기한 것이 재판에 영향을 주기 위한 부적절한 행태로 인식될 수는 있으나, 이 ‘부적절한 행태’가 직권남용 등 형사법상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이상, 이 동일한 판단을 탄핵의 사유로 써먹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면 ‘탄핵’의 요건이 훨씬 더 가볍게 느슨하게 되어 그 비중과 가치 평가에 있어서 대등하여야 할 ‘탄핵’과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달리 취급되고, 결과적으로 권력자가 쉽게 법관의 신분을 박탈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헌법의 정신과 명시적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탄핵은 그 태생적 성격으로만 보더라도 사법 절차와 같은 엄정한 절차를 요하지 않고, 그 발의와 의결에 있어 국회 의석 숫자만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여기에 그 요건마저 ‘형의 선고’에서 요하는 수준까지는 필요 없다고 해석할 경우, 탄핵은 언제든지 입법부의 흉기가 되어 자의적으로 발동될 수 있다. 이미 그 조짐은 180석의 거대 의석을 믿고 사상초유로 퇴임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평판사를 상대로 탄핵소추를 밀어붙이는 데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강자가 약자를 상대로 휘두르는 탄핵, 어차피 신분을 벗기로 한 자에 대한 탄핵, 사실조사도 생략한 채 의결로 밀어 붙이는 탄핵 과정에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보이는 건 ‘정권에 밉보이는 판결을 하지 말라’는 협박뿐이다. 견제가 아닌 채찍이, 균형이 아닌 독주만이 있는 것이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법 농단 책임을 묻는다고 하지만, 국민은 이 사건에서  탄핵을 남용하는 여당의 거대 의석에 기댄 입법 농단을 더 크게 우려한다. 특히 탄핵은 거짓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자들을 목표로 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에서 고대의 입법자들 중 한 명인 카론다스가 거짓말하는  자들을 상대로 탄핵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은 탁월하였다고 평가한다. 재미있는 것은 카론다스의 스승으로 알려진 잘레우코스가 법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태리 남부의 도시국가 로크리아에서는 입법은 누구나 제안할 수 있지만, 그 법이 터무니 없어서 채택되지 않으면 제안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법안을 제안하려는 시민은 목에 밧줄을 걸고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입법에 특정인, 특정 정파의 변덕과 자의가 개입될 때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탄핵 소추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사람들 중 이탄희, 이수진, 최기상 의원은 21대 총선 전까지 판사로 있다가 법복을 벗고 바로 집권 세력에 공천을 신청하여 집권당 의원으로 변신한 자들이다. 이들의 과거 법원에서의 행적이 결과적으로 삼권분립을 해치고, 법관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에 금이 가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부화하여 다른 성충(成蟲)으로 드러난 지금 애벌레 시절의 행적을 새삼 규탄할 수는 없겠으나, 견제와 균형, 자유로운 공화정의 뿌리를 해칠만한 소지가 없었는지 본인들의 반성과 대중의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임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평판사의 옷을 벗기는 탄핵보다, 이것이 더 시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탄핵 제도는 그 역사적 뿌리와 성격에 걸맞게 위선적인 야심가들,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공화국의 적들을 베는 의로운 장검이 되어야지, 정치 조폭들의 재크 나이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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