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에 의해 제기된 ‘USB 의혹’은 일단락됐다고 밀어붙이는 분위기이다. 청와대와 여권에서 발빠르게 응수하며 진화 작업에 나섬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극비리에 북한 원전 제공을 추진했다”는 야당의 공세를 무력화했다고 여기는 상황이다. USB는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건네졌기 때문에, 원전과 관련된 내용이 담길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와 여권의 핵심 주장이다.

북한원전 추진이 거짓 주장이라면 UBS 등 자료 전체 공개가 ‘야당의 완패’ 낳는 길

하지만 USB에 대해서는 강력 부인하면서,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의혹들에 대한 의구심을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 원전 추진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USB를 포함한 모든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게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가장 확실하게 승기를 잡는 법이다. 야당의 공세가 ‘북풍 공작’임을 만천하에 입증하는 방법이다.

USB는 국가비밀에 해당되지만, 국회 정보위원회 등의 제한된 채널을 통해 그 내용을 공개하면 외교안보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욱이 국민의힘 주호영 원대대표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북한원전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조사에 합의해 관련 자료를 제한적 방식으로 공개해 ‘진실’을 확인하면 된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조사는 야당이 ‘완패’하는 길이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공개’ 대신에 ‘야당비난’ 선택, 의혹만 키우는 무리수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USB에 북한 원전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는 일방적인 주장만 펴고 있다.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대응전략으로 인해 북한원전 의혹을 키우고 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원전의혹이 불거지자마자 곧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한 USB의 내용’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했다. USB가 건네진 시기에 대한 고려 없이, USB에 원전 내용이 담긴 것이 아니냐는 추궁이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김정은에게 건넸다는 USB에 담긴 자료와 산자부가 삭제한 원전 관련 자료 중 김정은의 손에 넘어간 자료’에 대한 공개를 요구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USB 내용을 공개하면 될 일"이라며 "실무 공무원이 그냥 아이디어 차원에서 끄적거려본 가치 없는 문건이다, 이렇게 폄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 역시 정부와 청와대가 USB 전달을 놓고 엇박자를 내는 데 대해 "북한에 넘긴 USB 내용을 모두 공개하자"고 요구했다.

이런 야당의 공세에 여권은 발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 인사들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제일 먼저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벗고 나섰다. 윤 의원은 지난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USB에 담긴 내용이)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 있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 담겨 있고 북한이 핵을 포기했을 때 우리가 어떤 식의 경제적인 발전 구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부분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며 “그중 하나로 에너지 협력 부분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도 원전이라는 부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2018년 회담 당시 청와대 소통수석을 지낸 윤 의원은 누구보다도 그 사정에 밝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청와대가)필요하다면 (북에 건넨 USB를) 공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윤 의원이 ‘USB에 원전 내용이 없다’고 밝힌 것은 산업부가 원전 보고서 원문을 공개하기 전이다.

산업부가 지난 1일 공개한 자료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종료된 이후인 2018년 5월 14일과 15일에 작성되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김 총비서에게 USB를 전달한 시점은 2018년 4월 27일이다. 즉 산업부가 공개한 문건의 내용 자체는 USB에는 담겨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청와대 측의 주장이다.

USB에 원전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두 번째 주장은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저녁 JTBC에 출연해서도 밝혔다. 윤 의원은 “USB는 4월 27일 전달되었고, 산업부가 밝힌 보고서는 5월 14일에 작성되었다. 따라서 USB 안에는 북한원전건설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그런 내용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윤 의원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다.

정의용 외교장관 후보자, “USB에 원전 제안 담겼다면 매파 볼턴이 그냥 놔둬?”

세 번째는 정의용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제기했다. 정 후보자는 지난 2일 “북한과 대화 과정에서 원전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는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후보자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정 후보자는 제 1차 정상회담 직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북한에 제공한) 동일한 내용의 USB를 제공하고, 한반도신경제구상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고 밝혔다.

USB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자처한 정 후보자의 속내는 명확하다. 만약 원전 관련 내용이 USB 안에 담겨 있었다면, 당시 백악관 내의 대표적인 ‘매파’로 꼽혔던 볼턴 전 보좌관이 이미 문제 삼았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 후보자의 이같은 발언은 USB에 대북 원전 추진 계획이 포함됐으리라는 야당의 의혹 제기를 일축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당당하다면서, USB 내용 공개여부를 두고 ‘여권 분열’?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주역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원전의혹에 대한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게다가 USB 내용 공개를 두고도 여권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당당하다면 일사불란한 입장을 보이는 게 상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청와대는 USB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재성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2일 MBC 라디오에서 “절대 공개해선 안 된다”며 "근거 없는 의혹 제기만으로 정상회담에서 오간 자료를 공개한다면 나라가 뭐가 되겠나"라며 ‘공개불가’ 방침을 확고히 했다. 그러면서 최 수석은 "무책임한 마타도어나 색깔론이 아니라면, 야당도 명운을 걸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야당이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면 저희도 공개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최 수석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여당 내 여론마저도 3갈래로 쪼개진 상황이다. 공개가능하다는 입장과 결사반대라는 입장, 그리고 조건부 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공개가능하다는 입장은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홍익표 의원이 주장했다. 윤 의원은 앞서 CBS라디오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필요하다면 공개하자”는 입장이다. 청와대에서 결정할 일이고, 여러 절차적 고민이 필요한 건 알지만, 홍보수석으로 정상회담 논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USB에 원전 내용이 없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개해도 거리낄 내용이 단 하나도 없다는 자신이 있다는 차원에서’ 공개 주장을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익표 의원 역시 2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공개 가능’ 의견을 내놓았다. “최종적으로 청와대에서 판단하실 건데, 신경제지도 구상이 과거 문재인 대통령께서 당 대표 시절에 제가 초반에 관여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한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외교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USB 공개는 절대 안 된다”고 강력 반대 입장을 폈다. 송 의원은 ‘국가 원수들 간의 외교 사안을 공개할 순 없다’는 차원에서 “야당이 공세를 편다고 해서, 이걸 공개하면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남북관계는 파탄일 수밖에 없다”면서 “남북관계뿐 아니라, 외교 고립에 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김영호 의원은 조건부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USB는 우리 정상이 북한 정상에 전달한 외교 문서가 담겼는데, 이를 공개하면 양국 신뢰가 모두 깨진다. 매우 신중히 해야 한다”면서도 “국민 목소리에는 청와대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 입장만 보면 공개해도 문제가 될 소지는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북한의 입장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USB 전달 이후에 다른 북한원전 문건 제공했나?

여권 인사들이 이처럼 의견 분열 양상을 드러내는 이유는 USB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USB 전달 이후에 다른 원전 관련 문건이 북한에 넘어갔느냐의 여부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와 여권에서 이렇게 강경하게 ‘USB에는 원전 의혹이 담겨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야권에서도 USB 내용을 공개하라는 주장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핵심은 ‘산업부가 작성한 다른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되었는지, 또 청와대를 거쳐 북한에 전달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청와대와 산업부 양측은 모두 “논의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산업부 공무원이 왜 관련 문건을 야밤에 황급히 삭제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USB내용에 대해서 조속히 해명한 것처럼, 다른 부분에 대한 해명도 자신있게 빨리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원전 건설추진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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