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혁명놀음. 역사의 죄인이 되려는가?
[김석우 칼럼] 혁명놀음. 역사의 죄인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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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소련제국의 몰락이 2018년 자유대한민국에 주는 메시지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1991년 말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수립된지 74년 만에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인류사의 큰 실험은 끝났고, 미소 냉전체제도 끝났다. 소련이 보유했던 핵탄두가 미국을 능가하였고, 바르샤바조약 기구의 병력과 탱크가 나토군을 압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주저앉았다.

철저한 비밀유지 때문에 외부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실제 소련사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이상사회의 꿈은 불가능하였다.

인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전위조직으로서의 공산당은 봉사자가 아니라 인민 위에 군림하는 착취자가 되어버렸다. 중앙계획경제 하에서 주민들에 대한 자원배분을 결정하는 공산당원들은 점차 게으름과 욕심을 극복할 수 없었고, 혁명의 초심을 잃었다.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화신이 되었다. 아무리 선별된 엘리트라 하더라도 모두가 예수나 석가와 같이 남을 위해 살신성인할 수 있겠는가? 결국 공산주의라는 파라다이스는 허구로 끝났다.

혁명열기가 식어버린 소련체제가 그러면 어떻게 오래 지속하였는가? 공포정치로 주민들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비밀경찰을 통해 모든 주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체제를 비판하는 인사들을 마구 체포하여 시베리아의 굴라그(Gulag)로 보냈다. 공포분위기는 확산되었다.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여 정부를 비판할 수 없게 하였다. 알권리와 양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하였다. 주민의 기본적 자유가 억압되는 만큼, 공산당은 마음대로 권한을 남용하여 주민들의 이익을 박탈하였다. 수천만의 주민을 아사시키고도 지도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모든 주민들은 무슨 트집을 잡혀 책임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험은 피할수록 좋다. 극소수의 천재과학자들이 미국보다 먼저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고, 유리 가가린이 우주여행을 먼저 하였다 하더라도, 소련사회 자체는 생산력 증가가 일어나지 않는 내리막길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지금 김정은의 북한이야말로 바로 멸망 직전의 소련의 판박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10대원칙을 세워 김일성 가문을 신격화하고 어떠한 비판도 엄벌하여 소위 3대 세습을 실현하였다. 평등사회를 추구하는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빈부의 격차 면에서 한국보다 중국이 더 문제가 많고, 북한은 중국보다도 더 심하다. 2300만의 노예들과 극소수의 특권계층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김정은은 측근 고위인사들마저 참혹하게 공개처형하고 강제수용소에 10만 명을 구금하여 폭압통치를 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곧 핵무기를 워싱턴에 던질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완성하려 한다. 그 대량파괴무기를 가지고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여 경제지원을 뜯어내고 미군철수를 겨냥하는 평화협정을 얻으려 한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에게 치명적 무기사용을 제어할 책임감이 없다는 점이다. 테러집단에 이를 넘겨줄 위험성마저 악몽으로 배회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이익보다는 북한정권과의 화해협력에 신경 쓰는 인사들이 정책을 좌우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한 때 햇볕정책을 내걸고 북한에게 퍼주기식 경제지원을 하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변호하기도 했다. 북한을 너무 강하게 압박하면 전쟁 난다고 야단했다. 북한이 온갖 속임수와 벼랑 끝 전술로 핵개발을 끝마치는 오늘에도 평화적인 방법만으로 북한정권을 설득해야 한다고 우긴다.

그들 중에는 북한주민들의 인권에는 외면하던 인사들이 많다. 2003년부터 유엔인권위원회(2006년부터 인권이사회로 개편)와 2005년부터 유엔총회에서 유럽 국가들이 제안한 북한인권 결의안에 수년간 기권하였다. 우리 국회에서는 2005년 김문수 의원이 최초 발의했던 북한인권법 제정을 온갖 구실로 11년이나 발목 잡았다.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불렀다. 1989년 공산주의 몰락을 목도하고 공산주의 사상에서 전향한 동료들도 배신자라고 매도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북한정권의 주체사상에 동조했던 소위 주사파인사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전향했는지 여부도 명확히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볼셰비키 전술을 많이 답습하고 있다.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나치 괴벨스의 선전선동 기술까지 구사한다. 공중파 방송의 무리한 장악도 여론 장악을 위한 정지작업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정치보복을 추구한다. 언노련의 방침에 따라 객관적 사실보도를 방해한다.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보도는 홍위병식 조직과 수법으로 가로막는다. 인터넷 상의 수많은 악성 루머와 문자테러가 가장 좋은 예다.

외교분야에서도 탈레반식 일탈을 시도한다. 국제관행과 국제법상 정상적인 국가들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과거 정부가 맺은 국제적 약속을 존중한다. 이완용 일당과 같이 나라 팔아먹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외교교섭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결과에 불만스런 부분이 남는 것은 외교관에게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섭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의 소련의 혁명정부는 과거 정부의 약속과 의무를 부인했다. 그러한 선례를 답습한다면, 국내의 일부 지지자들은 환호하겠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신용과 국격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 몰락의 역사에서 김정은 정권은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국의 햇볕논자들은 평화와 화해라는 이름으로 퍼주기식 경제지원을 하면서, 북한정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햇볕정책 10년간 8조원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민생은 애써 외면해왔다.

역사의 교훈은 오늘의 한반도도 거스를 수 없다. 거짓과 술수와 모략과 선동이 판치는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공짜혜택을 많이 뿌리면 일단 환호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다음세대에게 돌아올 세금폭탄의 후과를 모를 리 없다. 하루에 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모든 사람을 함께 속일 수는 없다. 개방된 사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시민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에는 건전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진실에 충실하고 역사의 흐름에 정확하고 민의를 대변하는 바른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신장하고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읽어 대응한다면, 반미를 부추기려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신화에서 깨어나게 된다. 같은 민족인 2300만의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외면하고 독재정권의 편을 드는 과오를 시정할 수 있다. 그리되면 김정은의 핵개발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촛불시위 이후 ‘민주’라는 가면을 쓰고 진행하는 혁명놀음이 당장은 국민들을 현혹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다가올 서슬 퍼런 ‘역사의 단죄’를 결코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전 통일원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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