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정세균 총리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런데 26일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글을 공유하면서 홍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보였다.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손실보상제 지지 발언은 4.7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표심 잡기 전략’이라는 기본적인 시각 외에, 정세균 총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홍 부총리 글의 공유는 여권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기재부와 홍 부총리를 다독이기 위한 속내라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레임덕 차단용’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세균 키우기, 홍남기 지키기, 이재명 힘빼기가 레임덕 차단 전략

공직사회가 대통령이 아닌 차기권력에 줄을 대기 시작하면 그 정권은 ‘레임덕’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이미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주장하면서 기획재정부의 신중론을 ‘넉넉한 곳간 지키기’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숨을 죽여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조차 선심성 공약을 내걸면서 기재부 저격에 동참하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지사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차기 주자군으로 부상하는 정 총리의 입지를 강화시켜줘야 한다. 이 지사가 완전하게 대세론을 형성하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다. 정 총리같은 인물을 적정한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단 레임덕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정세균 키우기, 홍남기 지키기, 이재명 힘빼기라는 정치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복잡한 함수관계에서 오락가락 대응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딜레마 속에서 문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 총리 ‘자영업자 손실보상제’ 거론에, 홍 부총리 ‘화수분’ 아니라며 발끈

애초 정세균 총리가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거론하자 정 총리와 기획재정부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홍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강력 반발했다. 정 총리도 이에 지지 않고 제도 마련에 미온적인 기재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손실보상제도 비협력자, 개혁저항세력”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는 정 총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25일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검토하라고 지시를 하면서, 정 총리와 홍 부총리 사이의 혼선을 '교통정리'했다. 연이어 26일 정 총리가 자영업자 손실보상제와 관련, 홍 부총리에게 "제도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내각의 '원팀' 기조를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셈이지만, 홍 부총리는 내상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 손실보상제 지지 발언 다음날 홍 부총리 글 공유

그런데 26일 오전 8시 겸, 홍 부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를 기록한 것’에 대해 "우리 경제는 위기에 강하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최근 한국은행이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속보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98년(-5.1%) 이후 최저치로, 첫 마이너스 성장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홍 부총리가 "우리 경제가 위기에 강한 경제임을 다시 입증한 결과"라고 평가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경제 규모 10위권 내 선진국이 -3%에서 -10%의 역성장이 예상되는 데 비하면 역성장 폭이 훨씬 작았다"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두 시간쯤 지난 이날 오전 10시35분 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공유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글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림으로써, 무심코 공유한 게 아니라 ‘의도하는 바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홍 부총리의 설명대로 우리 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선방했다"며 "문 대통령도 이런 성과를 널리 알리고자 홍 부총리의 글을 공유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사령탑인 홍 부총리와 기재부가 힘을 내줘 고맙다는 격려의 뜻도 담겨 있다"고 했다. 최근 여권에서 기재부를 겨냥해 공격이 이어지면서, 문 대통령이 수세에 몰린 홍 부총리를 우회적으로 '응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 부총리 흔들릴 때마다 지원사격하는 문 대통령

홍 부총리에 대한 대통령의 난데없는 칭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홍 부총리가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은 홍 부총리를 칭찬하며 다잡아 왔다. 작년 4월 재난지원금의 성격을 놓고 홍 부총리는 보편지원이냐 선별지원이냐의 문제로 여권과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 대주주 요건을 3억원으로 조정하는 문제를 놓고 여권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홍 부총리가 이 문제로 사의를 표명했을 때 이를 반려하고 "향후 경제회복이란 중대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적임자"라며 재신임했다.

그리고 이번 손실보상제로 홍 부총리가 또 흔들리자, 문 대통령은 우회적으로 홍 부총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형식을 택했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칭찬인 셈이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 대해 강한 지지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이 확고하니 이대로 밀고 가겠다‘라는 뜻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정책 방향이 확고하기에 누가 경제부총리를 맡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이다. 때문에 굳이 리스크를 안고 경제부총리를 교체하지 않겠다’ 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자기 사람’인 홍 부총리 보호는 문 대통령의 ‘마지노선’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4.7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래서 정세균 총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재부에 대한 차기 주자들의 공격이 과도하다는 판단도 한 것 같다. 그러면 기재부가 흔들릴 수 있고, 그게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차기 주자들에 대한 가벼운 경고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레임덕은 언제든 내부의 분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여당의원과 공무원이 현재 권력의 말을 안 듣고 차기 권력에 줄을 서면 그게 레임덕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기 사람’인 홍 부총리를 보호해야, 권력 누수를 막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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