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당초 예상을 깨고 집행유예가 아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은 진짜 이유가 드러나고 있다. 일반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는 그 이유에 대한 감을 잡기 어렵다. 이 부회장 법정 구속이라는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실세 인사’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취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0점짜리 보고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홍순탁 회계사[사진=TBS 방송 캡처]

‘실세 인사’ 홍순탁 회계사, 김어준 방송서 ‘삼성의 오만이 부른 참사’로 규정

그 실세 인사가 최근 대표적 문빠 언론을 자처하는 김어준의 방송에 연거푸 두 차례나 출연해 그 진상을 공개했다. 그 인사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특검 측 전문심리위원인 홍순탁 회계사이다.

파기환송심을 담당한 고등법원의 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삼성준법위 설치를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제안했다. 대신에 준법위 활동에 대한 평가를 담당할 전문심리위원 3명을 선출했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재판부 직권), 홍순탁 회계사(특검 추천), 김경수 변호사(피고인 변호인 추천) 등이 그들이다.

특검 측 위원인 홍순탁 회계사는 태생적으로 삼성준법위 활동을 비판하는 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김어준에 따르면 홍 회계사는 준법위 활동을 평가하는 보고서에서 100점 만점에 0점을 주었다.

홍 회계사는 김어준 방송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한마디로 삼성 변호인단과 준법위측의 ‘오만이 부른 참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준법위 활동에 대한 평가의 칼자루를 쥔 ‘실세 인사’인 홍 회계사가 이처럼 최악의 평가를 내린 직접적 이유는 뭘까.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해온 홍 회계사는 이례적으로 19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데 이어 22일 김어준이 진행하는 유튜브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19일 뉴스공장에서는 다른 게스트들이 한 말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만 하며 말을 삼갔다면, 22일 다스뵈이다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다스뵈이다에서 홍 회계사의 첫마디는 “내가 잡은 항목은 상식적이다”라고 단언했다. 교과서적이고 최소한의 상식선에서 평가했다는 주장이다. “법원이 요청한 대로 충실하게”라는 말도 덧붙였다.

홍 회계사가 0점을 매겨 제출한 보고서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고경영자에게 배임 혐의가 있을 때 준법지원인이 최고경영진 사무실 문을 두드리면 조사하지 말아야 할 수만 가지 이유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최고경영진에 대해선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일반 임직원과 동일한 기준을 최고경영진에게도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검찰에 의해 기소된 삼성물산 합병 사건과 같은 현안 감시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즉 홍 회계사는 ‘기업의 준법감시제도는 일반적으로는 일반 임직원들의 불법행위를 예방하는 제도’라고 봤다. 대표이사 또는 최고 경영진, 대주주를 막는 제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부장의 횡령이나 거래처에서 뇌물을 받는 것들을 예방하고 잡아내기 위한 제도이다.

그래서 전문심리위원들끼리 ‘준법감시제도가 최고 경영진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두 가지 요건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준법감시제도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홍 회계사는 이 두가지를 살피러 현장에 나서서 점검을 했지만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는 판단 하에, ‘0점짜리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①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삼성...‘예방조치’ 및 ‘보직 해임 가능성’ 답변 소홀

19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홍 회계사는 “첫 번째 요건은 뭐가 불법행위인지, 어떤 행위를 할 것인지 예상하고 길목을 지키자”며 ‘위험의 유형화’가 리스크 관리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삼성준법위가 총수인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는지를 과제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홍 회계사는 “두 번째는 ‘일반 직원과 최고 경영진의 불법 행위에 대해 똑같이 대우하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부회장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보직해임이 가능한가’라는 점이었다.

3명의 전문심리위원은 이 두 가지 사항을 최고 요건이라고 합의를 해, 보고서 앞 부분에 썼다는 게 홍 회계사의 설명이다.

전문심리위원들이 제시한 이 두가지 핵심 요구사항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게 ‘이 부회장의 실형’이라는 참사를 낳았다며 홍 회계사가 강조했다.

② 0점 매긴 홍순탁 보고서, 재판부의 실형 선고 명분 돼...삼성은 뒤늦게 “1월까지 시간달라”요청

홍 회계사의 0점짜리 보고서가 파기환송심 재판부로 하여금 이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도록 만드는 명분을 줬다는 평가이다.

이 부회장에 대해 끝까지 따뜻한 시선을 유지했던 정준영 부장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려고 애썼지만, 한계가 있었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 제도의 실효성 지속여부’라는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0점을 매긴 홍 회계사의 보고서를 보고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는 재판부에게도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한 번 더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주었다. 지난 해 12월 21일 이 부회장에게 석명 준비명령을 내린 것이다. 전두환-노태우-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권까지 세대를 달리하며 지속된 삼성그룹 위법행위 8건을 나열한 뒤 “이와 관련해 법적 위험의 평가와 발생 원인 분석 및 방지 수단 마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룹 총수의 과거 범죄를 검토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전문심리위원 평가에 그런 내용이 없다보니, 그 부분과 관련해 이 부회장 쪽에 재차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의 대답은 재판부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12월 24일까지 관련 답변을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쪽 변호인이 낸 의견서에 핵심 답변은 없었다. 이 부분을 놓고 삼성의 대응에 문제점이 많았다는 지적이 대세이다.

석명 명령까지 내린 재판부의 태도를 두고, 재판부의 기류가 바뀐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홍 회계사는 이미 그 전부터 재판부의 바뀐 기류를 알아챘다고 한다. 결심공판을 하루 앞둔 29일에 삼성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홍 회계사는 “(삼성이) 그 전에는 뭔가 ‘평가항목이 잘못되었다, 편파적이다’라는 이런 얘기를 하다가, 결심 하루 전날 ‘미흡한 사항을 모두 보강하겠다. 1월 중에’라는 삼성의 태도를 보면서 확신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그걸 받아줄 수도 있었는데. 재판부가 반영하지 않겠다고 딱 잘랐다. 그래서 나는 그때 100% 확신을 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판결 1주일 전에 준법감시위원회에 직접 가서 ‘앞으로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적으로 존속하게 만들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재판부의 변화된 기류를 눈치챈 절박함의 발로였던 셈이다.

홍순탁 회계사는 22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다시 한번 준법감시위원회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홍순탁 회계사는 22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다시 한번 준법감시위원회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사진=다스뵈이다 방송 캡처]

 

③ 재판부의 요구를 요식행위로 받아들인 삼성의 오판

재판부의 기류가 바뀐 건 홍 회계사가 쓴 보고서 때문만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의 오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 부회장이 처음 수감됐을 때는 적폐청산의 목소리가 컸다. 그런데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삼성은 정치사회적으로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오판을 했다. 그러면서 준법감시위원회 제도를 잘 운용하라는 재판부의 요구를 요식행위로 받아들인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이 재판 이후에도 준법감시위원회가 영속성을 가질 것인가’라고 질문을 했는데, 그 대답을 법정에서 하지 않고, 언론에다 얘기를 했다” 면서 부적절한 대응을 지적했다.

④ 재판부의 자존심을 건드린 삼성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뿐만 아니라 삼성이 재판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지적도 있다. 한 변호인은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전문심리위원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원래는 공개를 안하는 내용이다. 삼성측에서 자꾸 언론플레이를 해서 전문심리보고서를 왜곡하니 재판부가 열받은 면도 있다”고 분석하며 “삼성측이 승리를 확신하고 재판부의 요구를 무시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자존심을 건드린 상황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차명주식과 전문심리위원이 정한 18개 세부 평가 항목 중 11개 항목에 대해서 재판부가 답변을 요구했다. 그 부분에서도 재판부를 무시하는 듯한 답변으로 재판부를 대노케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차명 주식을 이용해서 거래한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삼성은 “우리가 지금은 차명 주식 안 갖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답변을 했다고 전해진다.

11개 평가 항목에 대한 질문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에 용역을 보내놨으니까, 기다려 달라”는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재판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삼성의 이러한 태도와 답변은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홍순탁은 이재용의 더 암울한 미래 예고...“경영권 승계재판이 본 게임 될 것”

홍 회계사는 이 부회장의 미래가 훨씬 더 암울할 것임을 예고했다. 재판부가 내린 2년 6개월의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보다 앞으로 이어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서 비롯된 경영권 승계 재판이 ‘본게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회계사는 “이제 본 게임이 진행될 거다. 출발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으로 증선위에서 검찰에 고발한 건데, 삼바 회계 부정도 찾아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자 김어준이 “이 기조대로라면 불법 경영권 승계 재판도 여지없다. 삼바 재판도 실형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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