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정부 이어 '애민정치' 계승 자처한 文정부의 애민은 '시대착오적'
조선의 애민(愛民)정치란 신분정치에 지나지 않아
애민정신 내세운 정약용, 노비제 해체한 영조의 종량법(從良法)에 대해 사회적 기강 무너뜨렸다며 비판

이영훈 객원 칼럼니스트

요사이 애민(愛民)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호치민이 살던 집을 방문하여 “호치민 주석님의 애민정신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라고 하였다. 호치민은 조선의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 『목민심서』의 제4편이 애민이다. 거기서 정약용은 수령이 사랑으로 보살필 백성으로서 노인, 어린아이, 홀아비, 과부, 병자 등을 열거하였다. 혹자는 이 같은 정약용의 애민에서 오늘날 복지국가의 원류를 찾기도 한다. 그 정약용을 가르치고 아낀 임금이 정조이다. 정조 또한 애민에 충실하였다고 한다. 작년 대통령선거에서 수원을 방문한 문재인 후보는 “여기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가득한 수원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잇는) 제3기 민주정부의 꿈을 말씀드립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의 임금으로서 애민의 모범을 보인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세종이다.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이 글을 몰라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한다. 혹자는 “오늘날의 이른바 인간 존엄성의 가치”가 세종에서 발원하였다고 칭송한다. 작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세종로에 놓인 세종의 좌상 앞에서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세종의 능이 놓인 여주시는 세종을 기리는 뮤지컬을 공연하였다. 청주시는 초정약수를 찾은 세종을 소재로 한 축제를 벌였다. 이를 기획한 청주시 관계자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현대적 콘텐츠로 녹여 내겠다.”고 하였다.

북한에도 애민이란 말이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문제로 판문점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을 때이다. 북한 대표는 통일각을 소개하면서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지어진 ‘애국, 애족, 애민’을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하였다. 회담이 열린 날, 김정은 주석은 평양교원대학을 시찰하였다.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중절모와 검은색 코트 차림이었다. 남한의 중앙일보는 이 같은 김정은의 행보를 두고 ‘애민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하기 위함이라고 해설하였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남한의 언론은 북한의 주석을 애민의 정치가로 평가해 왔다. 오늘날 남한의 진보세력은 세종에서 출발하여 정조와 정약용을 거쳐 남한의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은 주석으로 이어지는 애민의 역사적 계보를 그들의 정치 명분으로 삼는 듯하다.

애민, 곧 백성을 사랑한다는 말은 왕조 시대에 군주나 치자 계급이 즐겨 사용한 말이다. 백성은 하늘이다(民爲天).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民爲邦本). 임금은 백성의 부모로서(君爲民父母)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 원시 유학의 경전에서부터 확인되는 이 같은 민본주의는 왕조체제가 폐지되는 19세기 말까지 여러 나라의 역대 왕조가 받든 공통의 정치이념이었다.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민본주의의 변하지 않은 특질은 백성을 독립적 인격의 주체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백성은 보살펴져야 하고 가르쳐져야 하는 수동적 존재였다. 목민(牧民)이란 말이 그 같은 백성의 처지를 잘 대변하였다. 백성은 목자가 양을 치듯이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쓴 것은 바로 그 같은 애민정신에서였다. 

임금이 충효를 가르치는데도 끝내 교화되지 않는 질 나쁜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부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상한(常漢) 또는 천민(賤民)이란 신분을 씌워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것 역시 하늘이 허락한 애민정치의 다른 모습이다. 애민정치는 뒤집어 놓으면 신분정치였다. 『목민심서』 제7편 제5장의 변등(辨等)이 그 좋은 예이다. 거기서 정약용은 사람을 양반과 상한 또는 귀족과 천민의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변할 수 없는 큰 법이라고 하였다. 그 같은 관점에서 정약용은 1744년 영조가 아버지가 노이고 어머니가 양인일 경우 그 자식을 양인으로 해방한 종량법(從良法)을 크게 잘못된 법이라고 비판하였다. 그 법이 생긴 이래 노비제가 해체되어 사회의 기강이 무너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약용의 애민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의당 이 대목까지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종의 애민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세종은 그가 사랑할 백성과 사랑하지 않을 백성을 명확히 구분하였다. 한쪽을 차별하고 억압해야 다른 한쪽이 사랑받는 줄을 실감하는 법이다. 세종은 노비와 기생을 정상의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에 그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모든 사람을 노비로 잡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어느 한쪽이 노비면 그 자식은 모두 노비가 되는 법이 세종에 의해 만들어졌다. 춤추고 노래하고 성 접대의 역을 진 기생의 딸 역시 기생이어야 했다. 그렇게 생겨난 노비와 기생으로 이루어진 천민이 세종 이후 전체 인구의 30∼40%로 팽창하였다.

북한의 수령이 행하는 애민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주민은 그 출신 성분에 따라 대략 50여 개의 신분으로 구분된 가운데 그 주거와 직업이 차별되고 있다. 해방 이후 자본가와 지주 출신은 대부분 월남하였다.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은 가장 열악한 성분으로 분류되어 변경으로 내쳐졌다. 탈북자 이애란의 집이 그러하였다. 할아버지가 월남자였다. 그 사실이 드러난 어느 날 이애란의 가족은 평양에서 함경도로 추방되었다. 평양은 수령의 사랑받는 백성만이 사는 곳이었다.  

앞서 소개했듯이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애민정치를 계승하는 제3기 민주정부라고 자부하고 있다. 참람하기 그지없게도 공산세력과 투쟁하면서 자유민주의 정치제도를 세우고 자립적 국가경제를 일구어온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위시한 역대 정부의 업적과 그에 헌신한 다수 한국인을 ‘적폐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들의 인신을 함부로 구속하고 있다. 애민정치에 따를 수밖에 없는 차별과 억압의 정치를 문재인 정부는 자연스럽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단언컨대 그러한 분열과 반목의 정치로는 역대 정부의 가장 초라한 업적에라도 비견할만한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고작 집권 10개월인데, 벌써 그런 조짐이 완연하다. 

왕조시대의 애민이란 말이 지금도 즐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 백성이 민족이나 민중으로 탈바꿈하였기 때문이다. 애민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족과 민중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은 없다. 근대사회의 기초 요소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다. 그 개인에게 경제활동의 자유와 재산권이 보장되면, 그에 대한 침해를 처벌하고 보상케 하는 ‘정의의 법’이 관철되면, 사회와 경제는 최선의 복리를 성취한다는 믿음 위에 구축된 것이 근대문명이다. 여기선 정치가의 사랑을 받아야 할 백성은 없다. 그것의 변형으로서 민족이나 민중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주변 세력이 즐겨 애민을 입에 올리는 것은 그들의 인생 편력에서 이 같은 근대를 학습하거나 체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민 따위의 시대착오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그 발육지체의 저(低)지성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사랑받아야 할 백성이 아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다. 우리 모두 그렇다.

이영훈 객원 칼럼니스트(전 서울대교수/이승만학당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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