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역 최소 60여개 도시에서 일제히 일어난 러시아 시민들..."푸틴은 물러가라"
개헌 통해 '종신 집권'...권력욕 노골화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감 높아지며
반대 급부로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인기도 높아지는 중

23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나발니 석방 요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러시아 경찰관들이 진압하고 있다.(사진=로이터)
23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나발니 석방 요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러시아 경찰관들이 진압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지난해 8월 독극물 테러를 당해 독일에서 요양 치료를 받아오다가 러시아 귀국 때 공항에서 체포된 알렉세이 나발니(44)의 석방을 요구하는 물결이 온 러시아를 뒤덮었다. 러시아 전역 60개 도시에서 일어난 ‘나빌니 석방 요구’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 가운데 최소 3200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최소 4만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귀국과 동시에 체포당한 나발니를 석방하라는 요구를 러시아 정부에 전하기 위해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나발니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일어난 것은 러시아 전역 60개 도시.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으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러시아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모두 일어났다. 현지의 일부 독립 매체들은 110여 도시에서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일어났다는 주장하기도 했다. 반(反)정부 집회가 드문 러시아에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이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나선 것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32세였던 지난 2008년 인터넷상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저격’에 나서면서 ‘반(反) 푸틴’의 선봉에 나선 나발니. 금융 분석에 밝은 탓에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 측 부정부패 증거를 다수 포착해 냈고, 그 때문에 나발니는 푸틴의 가장 큰 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쓰러진 것은 지난해 8월20일. 서(西)시베리아에 위치한 도시 톰스크에서 수도 모스크바로 향하던 여객기 객실 안에서였다. 구(舊) 소련 시절 소련 정부가 개발한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노비촉’ 계열에 중독된 것이다. 사건 직후 나발니 측으로부터 러시아 정부 공작원에 의한 암살 기도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나발니의 신병을 인도 받아 치료를 지원한 독일 정부 역시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 암살 미수 사건에 개입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나발니는 독일에 체류하면서 러시아로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 왔으며, 마침내 그는 지난 17일 항공편을 통해 모스크바에 발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나발니를 공항에서 체포했다. 사유는 과거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형사 사건과 관련해 나발니가 일정 시기마다 거소(居所)를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러시아 시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분노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만 최소 4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했다. 푸쉬킨광장을 가득 매운 모스크바 시민들은 “푸틴을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집회는 최근 10년 사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집회 가운데 가장 큰규모의 집회였다고 한다.

지난 주말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난 ‘나발니 석방 요구 집회’에서 체포된 시민 수가 최소 3200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 석방 요구’와 관련된 집회를 모두 불허하고 이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무력 사용도 불사했다. 하지만 ‘나발니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잠재우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의 노골적인 권력욕에 러시아 시민들이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발니에 대한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푸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편법적인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푸틴 대통령 자신에게만 두 번의 대통령 출마 기회를 추가로 부여했다는 점에서 러시아 국내로부터 반발이 적지 않았다.

러시아뿐 아니라 이날 베를린을 비롯해 파리,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뮌헨 등 독일과 프랑스의 주요 도시에서도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앞으로도 계속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나발니 측은 오는 30일부터 31일에도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한편, 러시아 법원은 오는 29일 나발니에게 선고된 기존의 집행유예형을 취소하고 실형으로 전환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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