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지난해 1월 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지난해 1월 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선고 및 재수감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축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재계는 물론 한국경제 전체에 초대형 악재다.

지난 18일 있었던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법원 주변에서는 ‘집행유예’를 예상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지난 1년여간 재판부가 이 부회장과 삼성에 대해 꾸준히 집행유예의 요건이 되는 사항들을 주문해왔기 때문이다.

삼성 준법위원회 탄생은 ‘시대와의 타협’

이것은 삼성이 지난해 초 노무현 대통령 전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임명했던 진보 성향의 김지형 변호사를 영입, 준법감시위원회를 발족시킨 이유이기도 했다. 시대와의 타협이었던 셈이다.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횡령·뇌물 혐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가 삼성 측에 준법경영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자, 삼성 7개 계열사가 협약을 맺어 출범시킨 독립 위원회다.

하지만 막상 준법감시위의 활동은 ‘준법’이 아니라 진보적 잣대에 따른 정치적 판단, '초법(超法)'적 행태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재용 부회장과 7개 삼성 관계사에 대국민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위원회는 지난해 3월,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회장이 대국민 반성·사과하라” 등의 내용이 담긴 권고문을 보내고 한달의 시한을 주었다.

준법감시위, 법적으로 하자없는 이재용 승계 사과요구

이 권고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과 삼성쪽에서는 시한을 연장해 가면서 고심을 거듭했는데 크게 두가지 이유였다고 한다.

첫째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좌파 시민단체 등에 의한 비판은 있었지만 법적인 하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5월29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의혹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에버랜드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그룹의 핵심이다. 이 판결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3세 총수자격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이슈와 관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사건이 터져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삼성은 단 한번도 이를 불법적인 승계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인정한 바 없다.

이번에 실형이 선고된 최순실 사건에서도 삼성과 변호인단은 기본적으로 경영권 승계과 뇌물을 분리해 접근했다. 강압적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났기에 더 이상 법리공방은 하지 않고 구속과 불구속, 형량 등 양형 문제만 다투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준법감시위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회장이 대국민 반성·사과하라”는 권고를 받아 들이면 이 부회장의 정통성은 물론 경영권 승계를 노리고 최순실에게 접근했다는 특검의 논리를 인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고심을 거듭하던 이 부회장과 변호인단은 결국 준법감시위의 요구를 수용했다. 지난해 5월 6일,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고 ‘4세승계 포기’까지 추가해서 대국민사과를 해야만 했다.

집행유예를 받아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판무가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이 부회장과 삼성은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지난 18일 법정에서 재판장의 판결선고 직후 이 부회장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재판을 두고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이 부회장과 삼성이 양보해서는 안되는 본질을 양보하고 실리를 얻으려다 둘 다 잃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준법감시위원회가 재판부에 피고인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주기 보다 불신을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선고와 이명박 박근헤 등 전직 대통령의 사면논의를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많다.

실제로 재판부가 실형에 대한 결론을 내릴 무렵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논의가 그것도 긍정적인 전망으로 절정인 상황이었다. 재판부가 집행유예에 대한 비난여론에서 빠져나가는 대신 정치권에 공을 넘겼다는 것이다.

결국 이 부회장과 삼성으로서는 재판부와 그 의중에 따라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준법감시위 양측 모두로부터 배신을 당한 격이 되고 말았다.

재판 직후 삼성은 “준법감시위의 활동을 계속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장 김지형 위원장의 자진사퇴 문제 등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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