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패싱 논란’, ‘왕따 장관’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4년 동안 기용해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20일 경질했다.

문 대통령이 아끼고 사랑해온 최장수 장관인 강경화를 버린 것은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임기말 대북정책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직업 외교관’를 신임 장관으로 기용해야 조 바이든 미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에게 선물 못줘 ‘머저리’ 비난받던 문 대통령, 바이든 등판이 절호의 기회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핵포기를 하기 전까지는 모든 남북교류를 불허해온 도널드 트럼프와는 노선이 다르다.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과는 별도로 대북인도적 지원은 허용하겠다는 기류이다.

이러한 변화가 문 대통령으로서는 천우신조의 기회이다. 트럼프 시절에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추진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하기도 했지만, 강경화 장관의 무능도 일조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총비서와 판문점에서 만나는 그림을 연출했지만, 실질적인 선물을 주지 못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노동당 제1부부장이 남한을 겨냥해 ‘특등 머저리’ 등으로 비난한 것도 ‘말만 앞서고 실속이 없는’ 문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바이든 시대에는 가능성이 생겼다. 북한에 대북인도적 지원을 하거나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할 수도 있게 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 북핵 문제 해결과 별도로 대북인도적 지원은 허용 시사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는 19일(현지시간) 미국의 기존 대북 접근법과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남한의 대북인도적 지원은 북핵문제 해결 이전에도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블링컨 지명자는 이날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행정부마다 괴롭혔던 어려운 문제”라면서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 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나머지와 긴밀히 상의하고 모든 권유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에 관한 대화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정부와 북한과의 대화를 환영하고 인도주의적 교류는 허용하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북미통’ 정의용 신임 장관 내정자, 미국 설득해 대북지원하는 데 최적임자 고른듯

문 대통령은 20일 강경화 장관 후임에 정의용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내정했다. 학자 출신의 외교관에서 직업 외교관 중심으로 외교정책 추진 세력이 교체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정 내정자는 외교부 내에서도 북미 현안에 밝은 인사로 꼽힌다.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주제네바 특명전권대사를 지냈고,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3년간 재임했으며, 지난해 7월 물러난 뒤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내고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될 경우 남북, 한미간 의견 조율에서 상당한 역량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정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입안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부 출범 후에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북미 협상, 한반도 비핵화 등 주요 정책에도 가장 깊숙이 관여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3년간 재임하면서 한미 간 모든 현안을 협의·조율했다.

강경화 장관은 ‘왕따 외교’와 ‘패싱 논란’으로 4년 소모

그동안 강 장관에 대해서는 ‘왕따 외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최초의 여성 외교부장관이라는 수식어와 유엔(UN) 등 다자 외교 무대에서의 활동 덕분에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의 간판으로 발탁됐지만, 국제 외교가(街)에서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외교부 부처 장악에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와 청와대의 주요외교안보 조정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패싱논란’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1월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과 ‘한일관계 복원’ 구상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경화 장관은 제외됐다. 지난해 9월 북한의 우리 공무원 피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 긴급 장관회의에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관계부처 장관급 인사들과 협의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외교부 전직 고위 관리는 “강 장관은 우리 시절에 정상회담의 전문 통역사였다. 애초부터 외교 정책이나 협상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비판했다.

최근 외교력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케미호’ 사건이 있다. 자국의 자금 동결을 문제삼은 이란 혁명수비대에 한국 선박이 나포당하는 일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강 장관이 직접 나서지 않고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을 현지로 파견했다. 최 차관 역시 전문 외교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협상력을 의심받았고, 급기야 빈손으로 귀국하는 ‘헛탕 외교’를 보여주었다.

지난 4년간 문 정부의 외교 실세 ‘연정라인’이 한미외교 관계 망쳐

이 일을 두고 학자 출신으로 구성된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라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연정라인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서 득세하고 있는 이른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을 일컫는 말이다. 연정라인의 수장으로 꼽혀온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최근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발탁돼, ‘연정라인’의 독식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작년 8월에 취임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역시 연정라인으로 분류된다. 외교가에선 ‘실세 차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 차관은 취임 이후 강경화 장관보다 언론에 더 비중 있게 노출되었다. 게다가 외교부 내에서도 최 차관을 기존 차관들보다 극진히 모시는 기류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최 차관이 지난해 9월 방미 때, 북미국장을 대동한 것이 화제였다. 일반적으로 외교부의 지역국장은 장관의 해외 출장을 수행하고, 차관의 출장에는 국장보다 한 계급 낮은 심의관이 따라가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실세 차관이라 그런지 의전도 ‘장관급’으로 격상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연정라인’으로 득세, 이란의 한국선박 억류 협상 실패

하지만 최 차관은 이란에 억류된 케미호 협상에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귀국했다. 심지어 ‘구급차 판매 제안 해프닝’으로 이란 정부의 분노만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케미’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 차관이 이끌었던 한국 대표단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이란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 대표단은 이란측에 ‘동결자산 대신 구급차 판매를 제안했다’며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이란시각) 밤 정부 홈페이지에 기사를 올려서 문제가 됐다. 이를 두고 외교부는 "이란이 먼저 제안했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바에지 비서실장은 이 기사에서 "몇 대의 구급차는 필요없다"며 "대신 우리는 한국에 묶여있는 돈을 원하며 (동결이) 해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세 차관인 최 차관의 방문에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외교부는 이란 정부로부터 제3의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회비를 못 내 투표권 박탈 위기에 몰린 이란 정부가 한국에 묶인 석유 수출 자금으로 회비를 내겠다고 지난 17일 제안한 것이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유엔 투표권 박탈 문제와 관련해 "이란은 미국의 금융 제재에도 제한적이지만 안전한 경로를 통해 유엔에 연회비를 내왔다"며 "우리가 최근 제안한 지불 방법은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산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 중앙은행의 승인, 협상, 협력을 통해 아직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떠나는 강 장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실세 차관이라는 최 차관마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신임 정 후보자는 당장 나포된 한국케미호와 동결된 이란의 자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직업 외교관을 ‘친미’로 몰고가는 운동권 86그룹이 정의용의 걸림돌

북미통인 정의용 신임장관이 등판한다해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외교 전문가들은 “단지 연정라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 자체의 비현실적인 외교정책에 문제가 있다. 전문가를 배제한 채 86그룹이 주도하는 듯하다”며 비판했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도 계속 저자세로 대응하는 점이나, 국제정세와 동떨어진 ‘왕따 외교’를 지속하는 배경에는 ‘86그룹’의 집단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과 함께 친북·반미 경험을 공유한 86그룹은 ‘전문성 있는 외교 관료들을 적폐로 낙인 찍어 배제’하고, 측근 위주의 집단 사고를 통해 정책을 주도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86그룹은 한미협상 자체를 ‘친미’로 몰고가고 일방적인 친북을 독립외교라고 우긴다는 게 정설이다.

문제의 뿌리는 문 대통령이다. 외교전문가들과 치열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외교·안보 전략을 짜고 있다는 비판이다. 18일 대통령의 신년 발언에서도 ‘북한을 상대로 하는 군사훈련을 북한과 협의 하에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이는 86그룹의 사고방식에 다름 아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생각을 근본 바탕에 두고 있다’며 우려했다.

강경화는 김여정에게 밉보여 짤려?....정의용, 문 대통령보다 김여정이 부담일 듯

김여정도 복병이다. 강경화 장관이 이번에 경질된 것도 김여정의 ‘데스노트’에 올랐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강 장관은 당초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 내에서 강 장관은 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대표적인 ‘순장조’로 거론돼 왔었다.

따라서 강 장관이 김여정에게 ‘미운털’이 박힌게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 장관이 지난달 5일 국제전략연구소(IISS) 초청으로 바레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고, 이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이 코로나 확진자가 없다면서도 코로나 비상방역 조치를 시행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여정은 발끈했다. 지난달 9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강 장관을 공개 지목하면서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김여정이 쓴 ‘계산’은 북한에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전임자가 김여정에게 밉보여서 경질됐다면 정의용 신임장관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정의용 장관이 바이든 시대에 남북 및 한미협상 과정에서 문 대통령보다 김여정 눈치를 더 보지 말란 법이 없다.

양준서 객원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