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임식에서 집 걱정을 덜어 드리겠다는 약속을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 마음이 무겁고 송구하다고 했다. 그날 밤 악몽을 꾸었다. 김현미 장관이 약속을 매듭짓겠다며 장관으로 컴백하는 꿈이었다. 전문성은 제로지만 오기 하나만은 충만한 사람이 장관을 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김현미라는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다음 선수인 변창흠은 LH사장 출신이라 조금 나을 줄 알았다. 그는 취임식에서 이전 장관이 했던 일은 다 잘했다며 김현미의 이임사를 무색하게 하더니 수도권 127만 호를 이상 없이 공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날 밤 또 악몽에 시달렸다. 시간으로만 보면 이번 정권은 내년으로 끝난다. 127만 호 공급은 2028년까지 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2028년까지 현재 여당이 집권하겠다는 전제 하의 발언이니 식은땀이 안 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꼭 무시무시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냥 무책임한 얘기였다. 지르고 보자는 얘기였다. 게다가 활용하겠다는 역세권 부지는 대부분 민간 소유다. 민간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개발하겠다는 얘기를 태연하게 하고 있으니 이 분에게 개인의 권리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변창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먼 미래의 불확실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게 아니라 현실에서 답을 찾는 일이다. 가령 임대차 2법 같은 걸 손보겠다고 해야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한참 먼 날의, 게다가 현실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을 떠벌리고 있다. 이런 헐렁한 계획을 늘어놓는 장관 자리라면 옆집 할머니를 시켜도 된다. 아랫집 중학생을 앉혀 놓아도 충분하다. 중개업 하시는 윗집 아주머니에게 맡기면 더 잘 할지도 모른다. 시장 경제 정도는 알고 있는 펜앤드마이크 독자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해 시키면 100% 더 잘한다. 아무나, 누구나 해도 되는 자리가 현재 대한민국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이것은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악당, 바보 혹은 둘 다

죄 악당과 바보만 넘쳐나다 보니 과거의 준準 악당이 그리워진다. 청와대 수석이었던 김수현이다. 그는 적어도 다주택자를 ‘주택공급자’로는 봤다. 사실 이건 상식도 아니고 그냥 머리가 달린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국민 모두가 집을 가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집값이 싸도 모두가 집을 살 수는 없다. 그럼 누군가는 자기가 사는 집 외에 집을 더 가지고 이것을 임대로 돌려야 한다. 다주택자는 그런 의미에서 집을 가질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고마운 존재다. 물론 자선 사업 아니다. 시세 차익이이 기다리고 있으니 임대를 한다. 이때 다주택자를 때리겠다고 보유세를 인상하면 이는 전월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보유세에 시달린 끝에 다주택자가 집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양도세를 올리면 다주택자는 이를 증여라는 방법으로 돌파한다. 물론 피는 나지만 덜 억울하고 덜 분하기 때문이다. 이게 시장이다. 시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은 개인들이 가진 이기심의 총합이다. 파는 사람은 더 받고 싶고 사는 사람은 덜 주고 싶다. 그러나 모두가 다 이기심을 충족할 수는 없다. 이기심은 서로 충돌하고 그래서 누군가는 조금 덜 챙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주택 생태계 역시 그렇게 돌아가고 유지된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자꾸만 이 시장과 싸우려 든다. 아,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해 표현을 살짝 바꾸겠다. 이 정권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싸우려 든다. 인간의 본성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무지막지한 분들이다. 아무도 이겨본 적이 없는데 기필코 승리하겠다고 이 난리를 치니 나라가 멀쩡할 수가 없다.

소유권에 대한 침해는 인권 침해를 넘어 국체 부정

주택과 부동산에 대한 칼럼을 여러 번 썼다.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근대 사회의 기반이 되는 것이 법치와 사적 소유다.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그때부터 근대 사회다. 천부 인권이라는 것도 결국 핵심은 소유권이다. 재산이 없는 자유와 인권은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사지도, 팔지도, 가지고 있기도 어렵게 소유권을 훼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권 침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단순히 주택 문제가 아니라 인권 침탈에 대한 문제와 맞닥뜨린 상황인 것이다. 이는 주택을 가진 사람의 인권 문제만이 아니다. 현 정권은 공공 주택으로 이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재건축, 재개발을 관의 주도로 끌고 가겠다고 한다. 거주하던 임대 주택의 집값이 오르더라도 관에만 팔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종합해보면 정부는 주택 지주가 되고 거주자들은 모조리 주택 노예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해방 직후 북한은 토지개혁을 했다. 소유권은 안 주고 경작권만 주는 이상한 개혁이었다. 그 결과 농민들은 국가라는 새로운 지주를 모시는 소작농이 되었다. 현 정권의 임대 주택 관련 정책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반대로 남한은 땅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당장은 돈이 없더라도 큰 부담 없이 몇 년 동안 갚으면 자기 땅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대한민국이다.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순간 농민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권리에 대한 확신으로 우리는 6.25도 막아냈다. 그러니까 소유권은 대한민국 국체의 기원이 되는 셈이다. 정권의 주택정책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인권 침해이자 동시에 국체 부정이다. 멋대로 세금 올렸다가 망한 정권, 역사에서 많이 봤다. 세금 폭탄이 터지는 올해 6월 전 주택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정권은 낙관하는 모양인데 누가 터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버지 죽인 원수는 용서해도 내 돈 뺏어간 놈은 절대 용서 못하는 게 인간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