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당초 목표인 오는 3월 15일부터 ‘공매도 재개’를 추진하고 있으나 ‘거대한 역풍’에 직면했다. 정부여당이 공매도를 다시 허용할 경우 4.7보궐선거에서 소위 ‘개미군단’의 표심의 심각한 이탈이 우려된다고 판단, ‘공매도 금지’를 유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일단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사서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기법이다. 정보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개인 투자자에게는 불리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력에 의한 ‘시장 타락’ 재연되나

반면에 공매도는 주식의 ‘적정가격 발견’이라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특히 개미투자자들의 ‘영끌투자’ 등으로 인해 코스피가 3000선을 넘어선 상황에서 공매도는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양론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진행중인 ‘공매도 금지를 유지하자’는 논의는 순전히 여당의 선거전략 일환으로 논의된다는 점이다. 금융시장 정책마저 득표전략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정치권력에 의한 ‘시장의 타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세균은 공매도 금지 ‘유지 가능성’ 시사, 은성수 금융위원장 물 먹인 셈

이와 관련 정세균 국무총리는 14일 공매도 재개와 관련, “정부 입장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아침 TBS 라디오에 출연해 공매도 금지 조치의 연장에 대한 견해를 묻자 “정부 입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밝힐 순 없다”고 답변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전날인 13일 공매도 금지 해제 방침을 재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정부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물먹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정총리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 정부 생각과 꼭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매도는) 개인적으로는 좋지 않은 제도라 생각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가 금융위가 재개를 추진하는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금융위는 정 총리 발언 재반박하며 공매도 관련 제도 손보는 중

금융위는 이 같은 정 총리의 발언을 사실상 반박했다. 이번에는 금융위가 총리를 물먹인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매도는 당초 계획대로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공지 문자에서 “공매도 재개와 관련해 지난 금요일(8일) 금융위원회 주간업무 회의 시 금융위원장 발언, 11일 발송된 문자메시지 내용(3월 공매도 재개 목표로 제도 개선을 마무리할 계획)이 금융당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는 코스피가 3,000선을 넘어서며 공매도 금지 연장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부풀자 서둘러 재개 방침을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3월 공매도 재개를 목표로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시장 조성자 제도 개선,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 개선 등의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고 있다. 코스피가 강세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공매도 금지를 연장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전문가들, ”가격발견 순기능 가진 공매도 재개해야“

시장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공매도를 재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공매도의 가격발견 순기능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이다. 공매도가 있어야 시장이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런 순기능은 체감이 어렵다 보니 일반 투자자 사이에서 공매도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매도 제도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며 “가장 중요한 순기능은 시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가격발견 기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쉽게 체감이 안 되는 부분이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외국인 투자자금의 안정적인 유입을 위해서라도 공매도 재개는 현실적으로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다. 한국 증시가 선진화되려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시장에 편입돼야 하는데, 공매도를 금지하면 선진시장에 편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정 팀장은 "공매도 제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며 "궁극적으로는 재개 방향이 맞지만 외국인에게 쏠린 공매도 시장을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자들, “한국은 공매도 폐해가 가장 큰 국가”

하지만 공매도를 반대하는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한국 주식시장에선 공매도의 순기능보다 폐해가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외국은 공매도가 다 있는데 왜 우리나라만 금지하냐고 얘기하는데,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만큼 공매도의 폐해가 심한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70% 이상을 외국인이 점유하고 있다"며 "공매도를 재개하려면 금융당국은 공매도 주체들의 수익을 조사한 통계부터 공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항자, 김병욱, 박용진 등 민주당 의원들, “개미군단은 애국자, 공매도 금지해야”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를 공식화한 이후 여당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동학개미를 '애국자'로 비유하며 "공매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해소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상태로 재개된다면 시장의 혼란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도 최근 잇달아 본인 계정의 페이스북과 방송 출연을 통해 공매도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고, 페이스북에서는 “현재의 공매도 제도는 불법 행위에 구멍이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공정과 제도적 부실함을 바로잡지 못한 채로 공매도를 재개하는 것은 금융 당국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를 압박하고 나선 민주당의 양향자·박용진 의원의 행보에 대해서는 증시 활황에 급격히 늘어난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반대 여론을 의식해 지지를 얻으려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4월 재보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공매도 금지 시한이 종료된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동학개미의 표심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제 국회 정무위 소속 여야 위원들은 지난달 2일 ‘공매도를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이 빚을 내면서까지 순매수하고 종합주가지수가 3,000을 넘어서자 돌변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지난 13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이 제도 개선이 미흡하다, 그러면 공매도 금지를 더 연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입장을 번복했다. 이어 “(개미들이 주장하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공정한 시장으로 될 것이냐, 아닐 것이냐는 판단은 금융당국과 국회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고유권한인 법안 심사와 표결을 통한 법 개정을 모두 마치고도 한 달 만에 다시 제도개선을 논의하자는 말이다.

일부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제도개선 내용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반영돼 통과됐지만 “제도개선이 충분하지 않다”며 공매도 재개를 반대하는 상황이다. 공매도 재개에 찬성했던 국민의힘에서도 “공매도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은성수는 공매도 재개 박차, 민주당이 판 뒤집으면 무용지물

하지만 공매도 재개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소신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현재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시장 조성자 제도 개선,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 높이기 등의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고 있다. 공매도가 지닌 '적정가격 형성'이라는 순기능이 있는 만큼, 공매도 재개를 무한정 미룰 수 없다는 판단도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을 통해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 공매도를 재개하겠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목표인 셈이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공매도 금지 기한이) 오는 3월 15일까지 연기됐는데, 그때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해서 (공매도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시장 조성자 제도 개선안,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 확대 방안 등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를 전제로 내놓을 제도 개선안이 동학개미들의 불안을 얼마만큼 덜어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해 민주당이 판을 뒤집어 버리면 이 같은 금융위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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