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후보를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구도가 시큰둥한 모양새다. 야권에서는 예비후보가 넘쳐나는데 반해, 여권에서는 현재까지 우상호 의원만 출마의사를 밝힌 상태다. 여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아직도 출마 여부를 놓고 망설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야권의 후보군을 두고는 “단일화가 될까요? 3자 구도로 갈까요?”라는 질문이 대세이다. 반면에 여권 후보에 대해서는 “박영선 장관은 왜 아직 출마 선언을 하지 않는 걸까요?”라는 질문이 뜨거운 이슈이다.

임종석이 불출마하면 선거 나온다는 박영선, 파벌 위세에 눌려 ‘종속변수’ 자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놀랍다. 여권 내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박 장관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출마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자신이 출마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종석 전 실장은 친문 그룹 내에서 서울시장 후보 혹은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지지율이 높은 정치인이 특정 파벌의 위세에 눌려 눈칫밥을 먹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뜻과는 달리 ‘종속변수’임을 자처하는 모습이다.

박 장관의 이런 고민은 언론 인터뷰에서도 묻어나고 있다. 박 장관은 새해 첫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이 좋다면 그냥 중기부 일을 계속하겠다고 하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제가 희생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희생한다’는 표현 자체가 너무나 이례적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애초 서울시장 출마보다 장관직 수행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며 정권재창출 위기감이 커지므로 출마를 선택하겠다는 논리이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장관이 친문을 겨냥해 ‘너희가 날 추대해야 나간다’고 어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이상스러운 표현이 실은 당내 친문 세력을 대상으로 자신을 낮추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이 가장 염려하는 인물은 ‘임 실장’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도 친한 지인에게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서울시장 나가면 나는 안 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경선방식은 50%인 권리당원이 좌우, 친문 등돌리면 필패

친문그룹이 밀어줄 가능성이 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오면, 자신은 친문이 절대 다수 세력인 당내 경선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안 나가겠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 룰은 '권리당원 50%, 일반유권자 50%'이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문의 지지를 못받으면 필패이다.

박 장관은 “이제 와서 안 나갈 수도 없는 거고, 결국은 등 떠밀려서 나갈 수밖에 없긴 한데, 이도저도 못 하게 돼서 고민이다”라는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정작 임종석은 ‘불출마’ 및 ‘우상호 지지’ 선언

하지만 임종석 전 실장이 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임 전 실장은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확산되자 지난 1월 4일 페이스북에 “제게도 시장 출마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때마다 ‘제 마음 실어서 우상호 의원을 지지한다’고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자신은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이미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당내 교통정리가 완료된 것”이라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전 실장의 출마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아직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민주당의 속사정과 내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 장관마저 국민보다는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 세력의 눈치를 봐야 살 길이 열리는 게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출마는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박 장관이 의원 시절을 함께했던 보좌진들이 현재 서울 시정의 청사진을 그릴 정책 실무진들을 충원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박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1월 중에는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조만간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임종석 눈치보기 해명하지 못하면 발목 잡힐 가능성 높아

이런 상황에서 박 장관이 지난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자신의 출마 결정 시기에 대해 약간이나마 진전된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 장관은 “(출마 시기는) 하늘에 뜻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라며 “(결정을 내릴) 시점은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기부 장관을 더 지속할 것이냐는 문제는 임면권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선거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에 (출마를) 매우 크게 비중을 두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진전된 출마의사라고 볼 수 있다. 당내 친문 세력의 교통정리가 끝나가는 중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친문에 휘둘리는 것은 박 장관만이 아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비슷하다. 연초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야심차게 던졌으나 당내 친문 강경파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 꼬리를 내렸다.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지지율이 하락 중인 이 대표가 문 대통령과 사전교감을 통해 내놓은 승부수로 보인다. 하지만 친문 강경파는 대통령의 의중마저도 무시하고 정국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으로 굳어지는 추세이다.

박 장관은 자신의 출마 결심 지연이 임종석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하지만 ‘부끄러운 문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해명하지 않을 경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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